[박권의 미래를 묻다] 또다시 연말,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고 싶다면
매년 12월이 되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빨리 흘렀나 흠칫 놀라게 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빨리 흐르게 되는 것 같다. 당연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열역학 제2 법칙이라는, 결코 깰 수 없는 물리법칙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간이 사는 거시세계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은 있다. 아니, 단지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은 근본적으로 언제나 상대적이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시간 팽창이라는 현상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정지해 있는 관측자의 관점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른다. 이른바 ‘시간 팽창’(time dilation)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그럼 이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냥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고 빠르게 움직이면 지상에 있는 사람들보다 자신의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할 수 있다. 황당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 있다. 1971년 미국 물리학자 조지프 하펠레와 천문학자 리처드 키팅은 비행기에 원자시계를 태우고 처음에는 동쪽으로, 다음에는 서쪽으로 지구를 각각 2번씩 도는 비행을 했다. 이렇게 동쪽과 서쪽으로 비행한 이유는, 지구의 자전 속도로 움직이는 지상 사람들에 비해 동쪽으로 비행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반면, 서쪽으로 비행하면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동쪽과 서쪽으로 비행하는 사람과 지상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시간을 비교해 봄으로써 상대성 이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결과는 상대성 이론이 예측한 그대로였다. 동쪽으로 비행하는 경우는 지상에 있는 사람에 비해 대략 수십 나노초 정도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반대로 서쪽으로 비행하는 경우는 대략 100 나노초 정도 시간이 빨리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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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상대적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 느려져
중력 강한 곳도 시간 늦게 흘러
GPS, 시간 흐름 차이 실제 증거
」
좋다. 그런데 여기 묘한 반전이 하나 숨어 있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비행기와 같이 높은 고도에 있는 사람에 비해 기본적으로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그 이유는 바로 중력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하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지상은 높은 고도보다 중력이 강하다. 앞선 하펠레-키팅 실험은 속도와 중력에 의한 2가지 시간 팽창 효과를 모두 고려한 이론적 예측과 완벽히 일치한 것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블랙홀
그렇다면 이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력이 강한 곳으로 가는 것이다. 우주에서 중력이 가장 강한 곳은 다름 아니라 블랙홀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는 ‘가르강튀아’라고 불리는 초대질량 블랙홀의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 이른바 밀러 행성을 탐사하게 된다. 가르강튀아의 강한 중력은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을 지구에서의 7년에 맞먹도록 시간을 극단적으로 천천히 흐르게 하고 있었다. 쿠퍼는 우여곡절 끝에 실패로 끝난 밀러 행성의 탐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귀중한 3시간 남짓을 낭비하게 된다. 이것은 지구 시간으로 대략 23년이었다. 그 사이, 지구에 놓고 온 쿠퍼의 어린 딸 머피는 이제 쿠퍼와 같은 나이의 어른이 되었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향해 원망하는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자, 우리가 쿠퍼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가만히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은 그대로인데 우리의 자식이 우리만큼 늙어 버린다면 우리는 오히려 시간이 빨리 흘렀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이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다 함께 블랙홀 주변으로 가는 것이다. 아니 아예 블랙홀로 뛰어들어도 좋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블랙홀의 질량이 충분히 크다면 우리는 빛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블랙홀의 경계, 즉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이때 누군가 멀리서 우리를 본다면 우리의 시간은 아예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농담이다. 블랙홀로 뛰어드는 것까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현대 물리학으로는 그다음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다음을 알기 위해 우리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양자 중력을 이해해야 한다.
중력효과 보정해야 하는 GPS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내용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느낀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하펠레-키팅 실험을 기억하는가. 지상과 높은 고도 사이에는 중력의 차이로 인해 시간이 엄연히 다른 속도로 흐른다. 이 속도의 차이는 GPS 내비게이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단히 말해, GPS는 3개 이상의 인공위성에서 나오는 전파 신호를 이용해 지상 물체의 위치를 결정하는 기술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인공위성과 지상 물체 사이의 거리인데 그것은 전파 신호를 주고받을 때 소요되는 시간을 통해 결정된다. 그 시간을 정확히 결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력의 효과를 보정해 주어야 한다. 어딘가 잘 모르는 곳을 GPS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간 경험이 단 한 번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앞선 뜬구름 잡는 이야기의 덕을 본 것이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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