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살아있는 중세도시의 빛, 베른
스위스는 4개 언어를 쓰는 26개 자치 칸톤의 연방 공화국이다. 공식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으나 연방정부가 소재한 인구 13만의 도시 베른이 수도 역할을 한다. 베른은 중세기 첨단의 도시계획으로 탄생한 신도시였다. 10~13세기 남부 독일의 대영주였던 채링겐 가문은 스위스까지 영지를 넓혀, 프리부르크와 부르그도르프 등 신도시 개척에 이어 1191년 베른을 건설하게 된다.
아레강이 U자형으로 굽이치는 반도형 구릉에 좁고 긴 도시를 건설하고 육지 쪽에 단단한 성벽을 세워 견고한 요새로 만들었다. 지형에 맞추어 굽이치는 3개의 긴 도로를 개설하고 도로에 연립한 주택들과 교회·관청들을 건설했다. 시가지 중앙에 시계탑을 세워 선진 도시로서 면모도 갖추었다.
대부분 목조건물이었던 시가지는 1405년 대화재로 불타 폐허가 되었고 곧이어 재건에 착수했다. 4~5개 층의 밀집된 건물들을 모두 석조로 건축하고 붉은 기와지붕을 얹어 도시의 통일된 경관을 이루었다. 도로 양쪽 인도 위에 건물을 올려 지상층을 지붕 덮인 보행로로 만들었다. 도로 쪽에 아치를 줄지어 세운 이 보행로는 도시 전역에 이어져 베른을 ‘아케이드’의 도시로 이미지화했다. 아케이드에 연속된 상가들은 베른을 더욱 부강하게 해 16세기에 시민들의 상수도용 분수가 곳곳에 100여 개나 존재했다. 그중 11개소는 예술적으로 조각한 여러 인물상을 세워 베른의 또 다른 명소가 되었다.
건물의 높이와 재료·형태를 통일한 7세기 전의 도시계획은 지금까지 유지되어 중세적 도시경관을 가장 잘 보존한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동시에 베른은 유럽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현대 도시로, 스위스 연방의 수도로 훌륭하게 기능한다. 관광이란 ‘관국지광(觀國之光)’의 줄임말이며 고대의 국가는 곧 도시여서 ‘도시의 풍광을 본다’는 뜻이다. 쾌적한 아케이드 보행로를 따라 중세도시의 아름다운 경관과 시민들의 행복한 일상을 감상하면 진정한 관광의 의미를 체험하게 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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