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不念舊惡(불념구악)
2023. 12. 18. 00:29
공자는 은나라의 작은 제후국이었던 고죽국의 두 왕자 백이·숙제에 대해 “용서를 빈 옛 잘못을 되씹지 않았기에 원망하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평하였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왕은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향락에 빠져 잔혹한 정치를 했다. 마침내 서백(西伯)의 아들 희발(喜發)이 주(紂)왕을 몰아내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바로 무왕이다.
이때 백이·숙제는 무왕이 주왕을 징벌한 뜻은 옳지만 신하로서 왕을 몰아내는 것은 잘못이라고 간했으나 무왕은 듣지 않았다. 이에 주(周) 땅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면서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꺾어 먹다가 죽었다. 훗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인물로 추앙되었다. 이처럼 맑고 강직한 백이·숙제였지만 아무리 악한 짓을 한 사람이라도 일단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고, 용서를 빌면 옛 잘못을 되씹어 탓하는 일이 드물었다.
대단한 정의를 실천하는 양 용서를 빈 옛 과오를 들먹이며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이 있다. 그건 결코 정의가 아니라 잔인한 만행이다.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남 공격만 일삼는 정치인, 지난 일을 탓하는 치열한 부부싸움, 다 원망만 낳는 만행이다. 일본, 용서를 빌어라! 그때 우리는 ‘불념구악(不念舊惡)’ 하리니.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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