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레톤 새 강자, 정승기 떴다
‘아이언맨’ 윤성빈(29·은퇴)에 이어 한국 스켈레톤의 미래를 밝혀줄 차세대 에이스가 탄생했다. 정승기(24)가 그 주인공이다.
정승기는 지난 15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2023~24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3차 대회에서 1, 2차 시기 합계 1분44초99를 기록, 맷 웨스턴(1분44초84·영국)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웨스턴은 올해 세계선수권 챔피언이다. 스켈레톤은 썰매에 엎드려 얼음 트랙에서 레이스를 펼치는 종목이다. 최고 속도가 시속 150㎞에 이른다.
이로써 정승기는 올 시즌 2개 대회 연속 입상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8일 프랑스 라플라뉴에서 벌어진 월드컵 2차 대회에선 1, 2차 시기 합계 2분00초61로 웨스턴(2분00초69)을 제치고 우승했다. 2021∼22시즌부터 출전한 월드컵 시리즈에서 정승기가 따낸 첫 금메달이었다. 정승기는 올 시즌 IBSF 랭킹과 월드컵 랭킹에서 모두 선두로 올라섰다. 정승기는 “꿈에 그리던 월드컵에서 잇따라 좋은 성적을 내서 기쁘다. (레이스 내내 흔들리지 않고) 정신을 꽉 부여잡은 덕분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정승기는 20대 중반에 기량이 만개한 대기만성형이다. 그는 15세 때 스켈레톤에 입문했다. 타고난 힘과 탄력 덕분에 일찌감치 유망주로 꼽혔다. 한국 겨울스포츠의 차세대 스타로 주목을 받으면서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때는 오륜기를 들고 입장했다. 하지만 그는 ‘스켈레톤 전설’이자 대표팀 선배였던 윤성빈에 비해 성장이 더디다는 평가를 받았다.
18세 때 스켈레톤을 시작한 윤성빈은 월드컵 금메달을 목에 거는 데 4년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24세 때 출전한 평창올림픽에선 한국 최초로 썰매(스켈레톤·봅슬레이·루지)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정승기는 기대를 모았던 2022 베이징올림픽에서 10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정승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힘과 스피드 훈련에 집중하는 한편 강점인 스타트를 가다듬었다. 그 결과 윤성빈 못지않은 폭발적인 스타트 능력을 갖추며 올 시즌 ‘정승기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정승기는 스타트에서 최근 두 차례 월드컵 연속 1위에 올랐다. 은메달을 딴 3차 대회에서는 특히 1차 시기 4초79, 2차 시기 4초77을 기록했다.
정승기의 별명은 ‘스파이더맨’이다. 그는 “(윤)성빈이 형이 아이언맨이라면 나는 스파이더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은 처음엔 조연이었다. 영화 속에선 아이언맨이 스파이더맨의 우상이었다. 그러다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에 이어 수퍼 히어로가 된다. 영화 속 스파이더맨처럼 정승기는 윤성빈을 롤모델로 삼으면서 성장했다. 그 결과 아이언맨 윤성빈에 이어 스파이더맨 정승기가 한국 스켈레톤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정승기는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해서 기쁘다. 전반기 시즌을 마친 뒤 세계 1위를 차지해서 더욱 뜻깊다”며 “휴식 기간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른 뒤 남은 월드컵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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