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김대건 성상 조각한 한진섭 “550년 비워둔 곳, 그의 자리 같았다”

이은주 2023. 12. 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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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제작한 한진섭 조각가가 14일 개인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 기자간담회에서 주요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9월 16일 바티칸 베드로 성당서 열린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 모습. 550년 간 비어 있던 자리에 김대건 신부 조각상이 들어섰다. [사진 가톨릭신문]

로마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 김대건(1821~46) 신부 조각상(높이 3.77m)을 세운 조각가 한진섭(67)씨가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바티칸에 설치된 것과 같은 형태의 60cm 높이 김 신부 조각상을 비롯해 바티칸에 제출했던 모형과 다양한 성상(聖像) 등 30여 점을 내년 1월 14일까지 선보인다.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각상은 지난 9월 16일 바티칸에서 축복식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됐다. 가톨릭 세계의 중심에 동아시아 성인 상(像)이 세워진 것은 처음이다. 지난 15일 기자들을 만난 한씨는 “성상 축복식 날 추기경님도 울고 저도 울었다. 최근 몇 년간 신기한 일들이 줄줄이 일어났다. 모든 게 기적 같다”며 인터뷰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조각상이 설치된 곳은 대성당 오른쪽 외벽의 벽감으로, 건물이 지어진 이래 550년간 줄곧 비어있던 자리다. 한씨는 “베드로 대성당 외부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라며 “안쪽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있고 바로 그 옆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조각상을 설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적’ 이었다. 그는 “4m에 가까운 대형 조각상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렸는데, 거짓말처럼 한 번에 설치가 끝났다”며 “너무 밀어 넣으면 빼지도 못하는데 한 번에 수평도 딱 맞았다. 마치 김 신부님이 ‘여긴 내 자리야’ 하며 뒷걸음질해서 들어간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모형 제작부터 완성까지 2년가량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Q : ‘모든 게 기적 같다’고 했다.
A : “500년 이상 비어 있던 자리에 김 신부 조각상이 놓인 것, 제작을 한국 조각가가 맡게 된 것, 제가 오래전 (이탈리아) 카라라에서 유학한 것, 돌 조각을 평생 해온 것, 이 일을 맡기에 앞서 우연히 구상 조각을 연이어 한 것 등이 돌아보니 모두 계획된 일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그는 “나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아내(고종희 한양여대 명예교수)가 곁을 지키며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왔다”며 “제겐 이 역시 모두 사전에 준비된 일처럼 여겨졌다”고 덧붙였다. 국립 피사대 미술사학과에서 수학한 고 교수는 지난 8월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한길사)를 출간한 미술사학자다.

김 신부 조각상이 설치된 데에는 2021년 로마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취임한 유흥식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유 추기경이 김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성상 봉헌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Q : 돌 찾는 데만 5개월이 걸렸다고.
A : “금이 없고, 무늬도 없고, 외부에 있어야 하니 단단하고, 또 보기에 따뜻한 느낌이어야 했다. 거기에 높이 4.5m 폭이 2m가 돼야 했고, 미켈란젤로도 좋은 돌을 찾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린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 속보다 더 알 수 없는 게 돌 속’인데 속까지 깨끗한 돌을 찾았으니 이 역시 기적이었다.”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에 쓰인 대리석은 카라라에서 찾았다.[사진 가나아트]
이탈리아 카라라 현지 작업장에서 김대건 신부 성상을 살펴보고 있는 한진섭 조각가. [사진 가나아트]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전시장 전경. 한진섭 조각가가 제작한 성모자상이 보인다..[뉴시스]

한씨는 “김 신부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굉장히 용기가 있으면서도 포용할 줄 아는 분이었다”며 “젊으면서도 담대하고 포용력 있는 얼굴로 표현하는 작업이 부담스러워 잠도 안 왔다”고 말했다. 전시는 김대건 성상이 만들어진 과정을 영상과 사진, 연표 등으로 자세히 보여준다. 나머지 성상은 ‘착한 목자와 착한 양들’ ‘십자가-은총의 빛’ 등 극도로 단순한 형태에 부드럽고 따뜻함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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