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언제까지 연비 타령?" 독해진 프리우스의 도발
하이브리드차 원조의 여유… 막 밟아도 27m/L
젊어진 외관·경쾌해진 드라이빙, 준수한 가격까지
해치백 충분히 매력있지만… '큰 차 인기' 국내선 애매한 2열
바야흐로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성시대다. 가솔린 모델과 가격 차이가 500만원씩 벌어져도, 계약하고 6개월은 족히 기다려야 한대도 하이브리드차의 인기는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모른다. 손 닿는 주유소에서 순식간에 기름을 넣을 수 있는 데다 연비까지 훌륭하니 '빨리빨리의 민족'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선택지일 터다.
그런데, 지금 흥행하기 딱 좋을 수식어를 갖고도 토요타 프리우스는 신형 5세대 모델로 모험을 하고 나섰다. '26년 전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차 시대를 연 모델', '대중교통과 맞먹을 수준의 연비'…라는 훌륭한 홍보 문구 대신 '디자인'과 '드라이빙'을 앞세우면서다.
프리우스의 과감한 도발이 과연 훌륭한 연비보다 더 많은 주목을 끌 수 있을까. 토요타의 올해 마지막 신차이면서, 이름 빼고 모두 바뀌었다는 5세대 신형 프리우스를 지난 15일 직접 시승해봤다.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번갈아가며 약 80km를 시승했고, 도심부터 고속도로, 와인딩 구간을 두루 달려봤다.
"진짜였네."
소문으로만 들었던 환골탈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성격 하나는 끝내주지만 얼굴은 매니아층의 영역이었던 탓에 편하게만 생각했던 친구가 갑자기 이상형 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 기분이다.기존의 분위기는 분명히 남아있는데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몰라보게 젊어졌다.
얼굴에 유독 눈이 가는 건 인상을 좌우하는 헤드램프의 변화 덕이다. 기존 사선으로 치켜뜬 날렵한 눈 모양은 유지하면서도, 끝부분을 더욱 뾰족하게 처리하면서 세련된 인상으로 바뀌었다. 지난 5월 출시됐던 크라운과 언뜻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헤드램프의 기울기가 더 가팔라 프리우스 쪽의 이미지가 훨씬 젊다.
찢어진 눈에 비해 다소 옹졸했던 라디에이터 그릴은 헤드램프와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이어졌다. 덕분에 본닛 앞 테두리가 매끄러운 곡선처럼 마무리되면서 자칫 눈매 덕에 공격적일 뻔 했던 인상이 부드러워졌다.
옆으로 돌아서면 프리우스의 회춘 비결이 명확히 드러난다. 기존 삼각형 모양의 프리우스 특유의 실루엣은 그대로지만, 루프의 최고점이 전작보다 더 뒤쪽으로 이동하면서다. 루프 고점이 B필러 뒤쪽까지 밀리면서 A필러는 기존보다 더 낮아졌고, 전방 글래스의 경사도 가팔라졌다.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것 같다.
후면도 요즘차 다운 변화를 감행했다. 전작의 넓적한 엉덩이 모양은 그대로 두면서 토요타 엠블럼을 검은색으로 처리해 숨기고, 프리우스의 이름을 당당히 드러냈다. 전면에서 헤드램프와 그릴을 직선으로 연결한 것과 같이 후면에서도 양쪽으로 분리됐던 리어램프를 일자로 길게 이어붙여 통일성까지 챙겼다.
변화에 보수적이던 토요타에서 이 정도의 파격 변신이라니. 젊은이는 잘생겨서 좋고, 중장년층도 세련된 이미지에 눈이 휘둥그레해질 법 하다. 프리우스에 대해 아빠차, 할아버지차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젊은 세대라면 이번 신형 모델에선 한번쯤 마음을 돌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토요타 답지 않은 외관에 눈이 멀어 내부까지 화려해졌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신형 프리우스는 동승객 또는 후석 탑승객을 위한 기능이나 디자인보다는 차의 본질인 운전자의 '운전'에 집중하자는 토요타의 철학이 그 어떤 모델보다도 잘 드러나는 차다.
내부로 들어서면 휑하다 싶을 정도로 투박한 내부가 운전자를 반긴다.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12.3인치 중앙 디스플레이 아래에는 공조장치와 열선 및 통풍시트 등을 조절할 수 있는 물리버튼이 위치한다. 센터콘솔에도 기어변속기와 드라이브 모드 변경 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경우엔 EV모드와 하이브리드모드를 오갈 수 있는 버튼 등 '꼭 필요한' 기능이 심플하게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특히 토요타의 '운전자 중심'에 대한 고집은 계기판 디자인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4세대 프리우스의 경우 중앙 디스플레이 상단 대시보드에 계기판이 배치된 형태였지만, 5세대에는 절반 수준으로 작아진 계기판이 스티어링휠 앞으로 한참 멀찍이 떨어져 배치됐다.
운전자의 시인성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오히려 계기판은 4세대보다 5세대에서 더욱 옛것(?)의 느낌이 나는 듯 하다. 기존 토요타의 감성을 아는 이들이라면 익숙한 내부가 반갑겠지만, 젊은이들을 대거 끌어들이기에는 다소 밋밋할 수도 있겠다.
경쟁사 신차들의 화려한 내부를 이길만한 무기가 하나쯤은 더 있어야 할텐데. 이런 고민도 잠시, 시동을 걸고 가속페달을 밟았을 땐 우려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기존 묵직하고 탄탄한 하체와 부드러운 움직임이 주된 장기였던 토요타 모델 특유의 주행감이 아니었다. 반전의 연속이다.
프리우스는 가속페달을 밟는 즉시 힘있고 민첩하게 뻗어나간다. 천천히 힘을 올려내며 정중하게 엔진음을 키우던 토요타의 여타 모델들과 달리, 밟는 족족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튀어나가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성격급한 한국 젊은이들도 프리우스에서만큼은 답답함을 느끼기 어려울 듯 하다.
하이브리드 모델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모두 경쾌한 가속감을 가졌지만, 드라이빙의 즐거움은 일반 하이브리드 모델 쪽이 더 크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조금 더 전기차에 가까운 모델인 만큼 엔진음도 하이브리드 모델보다 작은 편이다.
토요타 특유의 탄탄한 기본기는 방지턱이나 고르지 못한 노면을 지날 때 충격을 훌륭하게 흡수해준다. 또 운전자 탑승 위치가 전작 대비 낮게 설계된 덕에 회전 시 땅에 붙어 부드럽게 돌아나가는 느낌도 매우 안정적이다.
드라이빙 모드를 스포츠모드로 전환했을 때는 토요타가 신형 프리우스에 '연비'가 아닌 '드라이빙'을 앞세운 이유를 확실히 알게됐다. 안그래도 시원한 가속감이 더 경쾌해지면서 좁은 땅덩이에서도 원하는 순간마다 얼마든지 짜릿한 펀드라이빙이 가능해진다. 스포츠카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시승을 마쳤을 때 이미 프리우스에 한껏 매료된 상태였음에도 프리우스에겐 또 한장의 카드가 남아있었다. 중간 기착지를 지나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40km 구간에서 내내 스포츠모드로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계기판에 표시된 연비는 무려 27km/ℓ. 이날 시승행사에 참여한 기자들 중 30km/ℓ를 넘긴 기자도 수두룩했다.
이쯤 되니 프리우스가 굳이 연비를 내세우지 않은건 이제 자랑할 필요조차 없는 기본기가 돼버렸기 때문인 듯 하다. 원조는 호들갑 따위 떨지 않는 법이다.
주유소 보다 전기차 충전소가 더 많아질 날이 머지 않았다고 하지만, 적어도 하이브리드라는 선택지가 각광받는 동안 프리우스를 이길 차량을 마주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국내에서 생산하는 차도 얼굴이 바뀐 대가로 500만원씩 훅훅 오르는 시대에 4000만원대에 외관까지 잘생겨진 원조 하이브리드를 마다할 이유는 크지 않아보인다.
▲타깃
- 외관, 드라이빙, 연비 무엇하나 포기 못하는 욕심쟁이 당신
- 어딜 가도 주목받는 인생 첫 차 찾고 있다면
▲주의할 점
- 차 자랑하려 친구들 태우기엔 다소 좁은 컴팩트한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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