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올리브영 과징금 18억 두고 갑론을박 지속되는 이유
쿠팡·네이버·올리브영의 관계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 7일 CJ 올리브영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이 18억9600만원에 그쳤습니다. 업계에서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예상했던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적은 수준이었죠. 올리브영이 ‘한숨’ 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요. 공정위는 왜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요. 해당 판단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쟁점이 있습니다만 과징금이 18억원대에 그친 주요한 이유는 공정위가 해당 사안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갑질을 했다고 하더라도,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가 적용되면 기업은 더 큰 과징금을 부과받는 등 무거운 수준의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업계나 언론에서 올리브영이 3000억원대의 과징금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고 본 배경이었죠. 공정위는 시장의 경쟁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고, 공정거래법은 시장의 경쟁을 저해한 기업의 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법입니다. 때문에 쎈 기업. 즉 시장을 지배할 만한 힘이 있는 기업이 일으킨 각종 불공정행위들(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해 더 무거운 제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정위는 왜 올리브영에 대해서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을까요. 공정위 내 검사의 역할을 하는 심사관들은 판사의 역할을 하는 전원위원들에게 올리브영의 ‘EB정책(Exclusive Brand, 랄라블라와 롭스 등 경쟁사와 거래하지 않는 조건으로 납품업체에게 광고비 인하와 행사 참여 보장 등 경제적 혜택을 제공)’을 콕 집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위원들은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갑질 행위들(▲행사독점 강요 ▲판촉행사 기간 중 인하된 납품가격을 행사 후 정상 납품가격으로 환원해 주지 않은 행위 ▲정보처리비 부당 수취행위)은 과징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규모유통거래법이 적용됐고 위원들은 설득됐습니다. 과징금이 18억원에 그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대규모유통업법'만 적용된 올리브영...'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보기 어렵다'는 공정위
위원들은 왜 올리브영의 EB 정책을 공정거래법으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올리브영을 관련시장의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보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특정 기업의 나쁜 행동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를 적용하려면, 우선 해당 기업이 활동하는 시장이 어디까지인지가 가장 먼저 판단되어야 합니다. 이걸 ‘시장획정’이라고 하는데요. 시장을 넓게 볼 수록 지배력은 과소평가되고, 시장을 좁게 볼수록 지배력은 과대평가됩니다. 그런데 위원들은 올리브영이 속한 시장을 ‘어디까지’ 봐야 할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쿠팡’이나 ‘네이버’ 등 온라인 채널에서도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으로도 언제든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 도래했기 때문에, 시장을 오프라인에 기반한 ‘헬스앤 뷰티 시장’으로 좁게 보고서 올리브영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봐야 한다고 했던 심사관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본 것이었죠.
이같은 판단을 두고 여러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시장을 좁게 획정하고 판단을 구한 심사관들이 무리수를 뒀다는 의견 ▲ 공정위가 유통시장의 시장을 ‘온-오프라인’으로 넓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앞으로는 주요 기업들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규제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우려 ▲위원들이 화장품 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프라인 판매 공간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의견 등이 있습니다.
"색조 시장은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없다"
올리브영의 주요 이용자이자 화장품 소비자인 2030 여성들은 위원들의 시장 획정에 대한 의문이 큽니다. ‘쿠팡과 네이버에서도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로 화장품 관련 시장을 '온+오프라인'을 합쳐 본 점이 이해가지 않는다는 반응인데요. 뷰티 시장의 특수성에 비춰볼 때, 상품을 직접 테스트해볼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화장품 판매에 미치는 영향을 위원들이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핵심입니다.유명 색조 브랜드인 롬앤의 디렉터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색조제품 시장은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뷰티 업계의 특수성에 비춰볼 때 오프라인 공간이 화장품 선택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점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색조 뷰티 시장은 매우 빠르게 유행이 변화합니다. 하나의 색조 상품을 사용해 만족한 소비자가 또다시 온라인으로 같은 상품을 꾸준히 재구매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하나의 립스틱을 모두 다 쓸 때 쯤. 새로운 재질의 상품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시장이기 때문이죠. 또 최근 뷰티 업계에서 절대 빼놓기 어려운 키워드가 ‘퍼스널’(개인화)입니다. 이른바 '봄웜톤'에게는 그에 맞는 립제품이 있고, '여름쿨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섀도우가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즉 배우 전지현과 송혜교가 쓴 립스틱인것은 더이상 중요치 않다는 것이죠.
소비자들은 이제 ‘절대적’으로 예쁜 상품을 찾지 않습니다. 각자의 ‘퍼스널’한 얼굴톤에 맞는 화장품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더욱더 여러 제품들을 직접 보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수많은 2030 여성들이 올리브영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내는 까닭입니다. 올리브영은 항상 제품을 보고 즐기는 여성들로 가득하죠. 실물을 ‘확인’해보고 ‘테스트’ 해보는 경험이 주는 고유한 경험이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뚜렷하다는 뜻입니다. 온라인으로 대체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죠. 물론 오프라인으로 확인하고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경우를 아예 배제하기는 어렵겠지만요.
때문에 여러 브랜드들 중에서는 올리브영에 상품이 진열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업체도 많다고 합니다. 화장품을 구경하고 곧바로 구매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오프라인 공간인 올리브영은 그 자체로 엄청난 홍보와 마케팅 공간입니다. 전국 수천개의 점포까지 거느리고 있는 올리브영에 입점하는 것이 인디 뷰티 브랜드들로서는 성공의 척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브랜드들로서는 올리브영의 독특한 영향력을 감안하면 시장에서 '절대갑'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거의 유일한 오프라인 채널을 가지고서 막강한 유통력과 광고의 힘을 가진 공간을 온라인 공간과 함께 본 것에 당장 의문이 나온 배경입니다.
또 올리브영은 단순히 화장품만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뷰티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다양한 것들을 판매합니다. 각종 영양제들이나 소도구들. 다이어트 보조제 등을 구경하고 구매하기 위해 올리브영을 향하는 발걸음도 일상화됐습니다. 유튜브를 켜서 ‘올리브영 추천템’을 검색해보면, 올리브영템이라는 특별한 카테고리가 형성된듯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유튜버들은 올리브영에서 사야하는 것으로 화장품만을 꼽지 않습니다. 비타민을 사기 위해 올리브영을 가라는 제안이 많습니다. 소비자들이 쿠팡과 네이버에서 섀도우를 살 수 있다고 해서 둘을 같은 시장으로 판단한 공정위의 판단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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