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리,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2관왕 등극'…계주는 여자 은메달 '노골드' (종합)
(엑스포츠뉴스 목동, 유준상 기자) 한국 여자 쇼트트랙 에이스로 떠오른 김길리(성남시청)가 이틀 연속으로 금메달 사냥에 성공했다.
김길리는 17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23/2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여자 15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서 2분23초746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함께 출전한 심석희(서울시청)는 2분24초624를 기록, 5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김길리는 소속팀 성남시청에서 한솥밥을 먹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최민정이 재충전을 위해 이번 시즌 태극마크를 내려놓으면서 여자대표팀 에이스가 됐는데 그 무게를 잘 견디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 시즌 세계랭킹 1위 김길리는 여자 개인전 최장거리 종목인 1500m에서 2차 대회(1차 레이스)에 이어 3차 대회에서 우승하더니 안방서 열린 4차 대회에선 1~2차 레이스를 싹쓸이 우승했다. 쾌조의 컨디션을 뽐내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올림픽을 2년여 앞두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날 2차 레이스 준결승에서 2분29초889의 기록으로 무난하게 결승행 티켓을 거머쥔 김길리는 결승에서도 그 흐름을 그대로 이어갔다.
경기 초반 나머지 6명의 선수와 다른 전략을 갖고 나온 하너 데스멋(벨기에)이 초반부터 치고 나가며 2위권과의 격차를 벌렸다. 머지 않아 뒤에 있던 선수들이 추격에 나섰고, 6바퀴가 남은 시점에서 심석희가 선두로 올라섰다.
그 사이 기회를 엿보던 김길리가 속도를 냈다. 2바퀴을 남겨두고 아웃코스 추월로 커린 스토더드, 크리스틴 산토스-그리스월드(이상 미국)를 차례로 제치더니 선두로 등극하면서 경기를 마쳤다. 금메달을 확정한 김길리는 양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현했다.
경기 직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만난 김길리는 "월드컵 첫 개인전 다관왕이기도 하고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첫 개인전 다관왕이라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고 기쁘다"며 "체력적인 부담은 있지만,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길리는 이번 대회 1500m에선 두 번 모두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는 16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여자 1500m 1차 레이스 결승에선 2분35초785의 기록으로 7명의 선수 중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에 통과했다. 함께 경기를 펼친 서휘민(고려대)과 박지윤(의정부시청)은 각각 4위와 5위로 레이스를 마감해 메달을 놓쳤으나 '뉴 에이스' 김길리가 자존심을 살렸다.
이어 2차 레이스에서도 맨 먼저 들어왔다. 특히 2차 레이스에선 이번 시즌 상승세를 타고 있는 산토스-크리스월드, 데스멋과의 진검 승부를 통해 이겼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여자 쇼트트랙에서 한국과 쌍두마차를 달리고 있는 네덜란드는 입상권에도 들지 못했다.
김길리 우승 뒤 남자 15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선 전날 1차 레이스 금메달을 손에 넣은 박지원(서울시청)이 2분18초698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했다.
박지원은 레이스 초반 뒤에서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9바퀴 남기고 2위까지 올라왔다. 잠시 4위까지 내려오기도 했지만, 2바퀴를 남기고 다시 질주를 시작하면서 2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선두 윌리엄 단지누(캐나다)를 따돌리지 못하면서 은메달을 획득한 것에 만족했다. 박지원과 단지누가 결승선 앞두고 스케이트 날을 들이밀었으나 박지원이 살짝 뒤졌다. 단지누는 2분18초661을 기록했다.
박지원은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분명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게 금메달과 은메달을 결정한 것 같다"며 "(랭킹 포인트가 1위와 2점 차인 것에 대해) 아쉬워도 남은 대회가 더 있는 만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점수보다는 레이스를 먼저 생각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원은 지난 3월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 종목과 남자 1000m에서 정상에 올라 2관왕을 일궈낸 세계 챔피언이다. 이번 시즌 월드컵에선 그 때 만큼의 압도적인 실력을 드러내진 못하고 있으나 꾸준한 기량으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대헌이 들쭉날쭉한 남자 대표팀의 대들보가 되고 있다.
이날 남자 500m에선 서이라(화성시청)가 41초205의 기록으로 깜짝 은메달을 따내는 일도 있었다.
1위 류 샤오앙(중국)과의 격차는 0.009초에 불과했다. 그 만큼 아슬아슬한 승부였디. 서이라가 국제무대에서 시상대에 오른 건 2018년 평창올림픽 이후 약 5년 만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서이라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우승을 확신한 듯 검지 하나를 치켜들며 1위 세리머니를 펼쳤으나 비디오 판독 결과 마지막에 스케이트날을 들이댄 류 샤오앙에 아깝게 진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헝가리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따냈던 류 샤오앙은 중국으로 귀화한 뒤 월드컵에서 맹위를 떨치더니 서울에서도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다만 서이라 입장에서도 평창 올림픽 뒤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낸 거라 부활이 반갑기만 하다. 평창 올림픽 남자 1000m에서 동메달을 따고 이후 2019/20 대표선발전을 끝으로 은퇴했던 서이라는 코치 생활을 하다가 이번 시즌 대표 선발전을 통해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대표팀 공백이 길어 주변의 걱정도 있었으나 훌륭하게 이겨내고 국제대회 개인전 메달까지 손에 쥐었다.
서이라는 "솔직히 (순위를) 예상하진 못했고, 누가 1등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일단 세리머니를 하고 봤다"며 웃은 뒤 "모처럼 국제대회여서 많이 긴장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운 좋게 좋은 성적을 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개인 종목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대표팀은 이날 단체 종목에선 은메달 1개을 추가하는 데 만족했다.
김길리(성남시청), 이소연(스포츠토토), 서휘민(고려대), 심석희(서울시청)로 팀을 꾸린 한국은 여자계주 3000m 결승에서 4분10초607의 기록으로 네덜란드(4분10초181)에 이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레이스 중반까지 가장 뒤에서 캐나다, 중국, 네덜란드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한국은 좀처럼 네덜란드와 중국의 견제를 뚫지 못했다. 레이스가 막바지로 향했지만, 한국으로선 금메달은 물론이고 입상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주자로 등장한 '에이스' 김길리가 저력을 발휘했다. 속도를 서서히 끌어올리더니 아웃코스 추월로 중국을 제치고 2위로 레이스를 마감, 값진 은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계주 5000m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고, 대표팀은 '노메달'로 경기를 마쳤다.
황대헌(강원도청), 장성우(고려대), 김건우(스포츠토토), 박지원(서울시청)으로 결승전에 임한 한국은 점점 속도를 끌어올리면서 중국, 네덜란드와 선두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코너를 돌던 김건우가 넘어지면서 전열에서 그대로 이탈했고, 레이스는 계속 진행됐다. 결국 한국은 7분13초805로 4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전날 열린 혼성 2000m 계주에선 김길리와 박지원, 심석희, 황대헌(강원도청) 등 남녀 '최정예 멤버'로 팀을 이뤄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마지막 주자 박지원이 결승선 앞두고 마지막 코너를 도는 과정에서 옌스 판트파우트(네덜란드)와 강하게 충돌, 실격 판정을 받으면서 재경기에서 역시 실격당한 미국과 함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국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계주 종목에서 금메달 없이 은1 동1에 그쳤다.
이로써 대한민국 대표팀은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하며 안방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를 마감했다.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안방에서 열린 대회임에도 예전과 같은 압도적인 실력은 아니었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대헌의 부진도 아쉽다.
황대헌은 16일 벌어진 남자 1000m 결승에서 1분27초113의 기록으로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올 시즌 남자 1000m에서 메달을 획득한 건 2차 대회(은메달)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황대헌은 준결승에서 옌스 판트바우트(네덜란드), 피에트로 시겔(이탈리아) 등 쟁쟁한 선수들의 견제를 따돌리고 조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결승에서도 순조롭게 달렸다.
경기 초반 4위를 유지하던 황대헌은 상위권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3바퀴를 남겨두고 속도를 끌어올렸다. 한 바퀴 반을 남기고 아웃코스 추월을 시도했고, 순식간에 중위권 선수들을 따돌리더니 날을 들이내밀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무려 네 명의 선수에 대한 사진 판독이 필요할 정도로 마지막까지 치열한 레이스였다.
판독 결과 선두로 달리던 스티븐 뒤부아가 0.014초 차로 황대헌보다 먼저 결승선에 도달했다. 마지막에 충돌이 일어나긴 했지만, 뒤부아와 황대헌 모두 페널티 판정을 받지 않으면서 그대로 뒤부아와 황대헌이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황대헌은 17일엔 남자 500m에 출전했으나 파이널B로 밀렸다.
이번 대회에선 최근 들어 쇼트트랙에서도 한국을 뛰어넘고 있는 네덜란드가 금메달 4개를 따내며 종합우승했다. 네덜란드는 여자 500m 결승에서 크산드라 펠제부르와 셀마 파우츠마가 1000분의 1초까지 똑같은 43초128을 기록, 공동 금메달을 획득해 시선을 끌었다. 여자 3000m 계주와 혼성 2000m 계주에서도 우승했다. 펠제부르와 파우츠마는 나란히 3관왕이 됐다.
캐나다가 남자 1000m(스티븐 뒤부아), 남자 1500m 2차 레이스(단지누)에서 금메달 2개를 챙겼다. 네덜란드가 여자부에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면 캐나다가 남자부에서 한국의 맞수로 점점 떠오르고 있다. 중국도 남자 500m(류 샤오앙), 남자 5000m 계주에서 금메달 2개를 따냈다. 이번 대회엔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이후 추문에 휩쓸린 뒤 중국으로 귀화한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부상으로 불참했다.
한국, 네덜란드, 캐나다, 중국 외엔 벨기에가 데스멋이 여자 1000m에서 정상에 오르며 금메달을 딴 나라가 됐다.
서울 대회를 마친 쇼트트랙 월드컵은 이제 한달간의 휴식 뒤 유럽에서 마지막 5~6차 대회를 치른다. 2월9일부터 11일까지 독일 드레스덴에서 5차 대회가 열리며 2월16일부터 18일까진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6차 대회가 벌어진다. 6차 대회가 끝나면 남녀부 최고의 성적을 올린 선수에게 ISU가 제정한 크리스털 글로브가 수여된다. 지난해 박지원이 남자부 초대 수상자가 된 적이 있다.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세계선수권대회는 내년 3월15일부터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다.
◆2023-2024 월드컵 4차 대회 2일 차(16일) 종목별 결승 결과
*1000m
-여자: 금메달 하너 데스멋(벨기에) / 은메달 크리스틴 산토스-그리스월드(미국) /동메달 크산드라 펠제부르(네덜란드)
-남자: 금메달 스티븐 뒤부아(캐나다) / 은메달 황대헌(한국) / 동메달 파스칼 디온(캐나다)
*1500m(1차 레이스)
-여자: 금메달 김길리(한국) / 은메달 커린 스토더드(미국) / 동메달 공리(중국)
-남자: 금메달 박지원(한국) / 은메달 윌리엄 단지누(캐나다) / 동메달 펠릭스 루셀(캐나다)
*혼성 계주 2000m: 금메달 네덜란드 / 은메달 이탈리아 /
동메달 한국, 미국
◆2023-2024 월드컵 4차 대회 3일 차(17일) 종목별 결승 결과
*1500m(2차 레이스)
-여자: 금메달 김길리(한국) / 은메달 크리스틴 산토스-그리스월드(미국) / 동메달 하너 데스멋(벨기에)
-남자: 금메달 윌리엄 단지누(캐나다) / 은메달 박지원(한국) / 동메달 스티븐 뒤부아(캐나다)
*500m
-여자: 공동 금메달 크산드라 펠제부르, 셀마 파우츠마(이상 네덜란드) / 동메달 왕예(중국)
-남자: 금메달 리우 샤오앙(중국) / 은메달 서이라(한국) / 동메달 데니스 니키샤(카자흐스탄)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 네덜란드 / 은메달 한국 / 동메달 중국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 중국 / 은메달 네덜란드 / 동메달 벨기에
사진=목동, 김한준 기자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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