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가 주는 교훈
인간에게는 편을 가르는 DNA가 흐르고 있다. 저 옛날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에게 내 편과 네 편을 구분 짓는 능력은 생존을 위해 필요했다. 그들보다 앞서 존재했던 여러 유인원과 인간종뿐 아니라, 사냥터에서 만난 짐승은 모두 내 편이 아니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전쟁의 시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피아 구별이었다. 피아가 모호하면 일단 적으로 간주해야 생존에 유리했다. 지구상의 수많은 네 편을 제압하고 난 다음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 된 인간은 결국 내 편 안에서 네 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 간의 편 가르기가 시작된 후 인간은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사냥만으로 배를 채우던 시절에는 몰랐던 축적의 탐욕은 인간끼리 서로 뺏고 뺏기는 싸움을 하게 했다.
물리적 전쟁이 잠잠해지자 인간은 본격적으로 이념 전쟁을 시작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고, 진보와 보수로 나뉜 인간은 여전히 피아 구별에 촉수를 곤두세웠다. 이것이 때론 물리적 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고,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사 이래 가장 고도화된 편 가르기의 장터가 바로 선거이다. 22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채 4개월도 남지 않았으니 언론과 방송에서 선거 이슈가 빠지질 않는다. 그에 따라 유권자의 관심과 열기도 따라갈 터이다. 흔히 여행 일정을 잡을 때가 가장 흥분되듯이, 사람의 마음은 예정된 이벤트에 선행해 들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이전보다 유독 심해진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일부 그룹에서 나타나는 희망 과잉이다. 여러 군소정당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실질적으로 거대 양당이 이끌어가는 체제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여야를 막론하고 두 양당 속에 안주해 있던 사람들 중에 삐죽삐죽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세간에 떠도는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그 중심에는 반등의 여지가 없는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선거제도 개편이 있다. 난파선에서 먼저 빠져나오려는 사람들과 선거제도 개편에서 기회를 탐하는 사람들, 거기에 더해 공천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이 그 신기루 같은 희망 주위로 몰려들고 있다.
1차로 공천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2차로 선거에서 승리해야 배지를 달 수 있는 그들의 셈법에는 기존 정당에 머무는 것보다 뛰쳐나오는 게 더 확률이 높아보이겠지만, 소탐대실과 아전인수식 셈법이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게 또 역사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들의 셈법에 ‘진정성’과 ‘책임’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다산 정약용의 입을 빌면, 공렴(公廉)과 애민(愛民)이다. 공렴이란 사적 욕구가 아닌 공적 가치(공정, 공평, 공익)를 위해 일하고, 청렴해야 한다는 말이다. 진정성이 있어야 실현 가능한 일이다. 애민이란 국민, 그중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이런 고민도 없이 난파선에서 뛰어내리거나 자신이 탄 배를 난파시키는 데 급급하다면, 그 말이 아무리 현란하더라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고, 한솥밥 먹다가 송사하는 격일 뿐이다. 무릇 진정성과 책임은 그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에 저절로 길이 난다(桃李不言 下自成蹊)’는 말이 있다. ‘사기’에 등장하는 말로, 사마천이 존경하는 장수 이광을 추모하며 묘사한 표현이다. 침이 고이게 만드는 맛있는 열매가 열리면 그것을 따 먹으러 사람들이 찾아오기에, 그런 나무 아래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품과 실력을 갖추고 유머와 여유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진정성과 책임을 갖춘다면, 사람들은 저절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선거는 편을 가를 때보다 내 편을 모을 때 이길 확률이 더 높아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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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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