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 113년 아르헨…‘화폐가치 54%↓’ 극약을 삼키다[송승섭의 금융라이트]
심각한 경제난에 고장난 아르헨티나
새정부 목표 1순위는 '재정적자 해소'
페소화 가치 떨어뜨려 수출확대 시도
연말에는 200% 물가 직격탄 가능성
고통스러워도 견디겠다 의지 드러내
아르헨티나가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극약처방을 내놨습니다. 바로 화폐가치 하락입니다. 정부는 한순간에 페소화 가치를 기존 대비 50% 넘게 떨어뜨렸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어떤 문제가 있었고 왜 이러한 대책을 내놓은 걸까요?
아르헨티나 시간으로 지난 12월 12일 외환시장이 마감하자 재무장관인 루이스 카푸토가 TV에 등장했습니다. 카푸토는 이틀 전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의 재무관료입니다. 카푸토는 아르헨티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파격적인 대책 10가지를 발표합니다. 그중 첫 번째가 달러당 366.5페소인 공식환율을 800페소로 조정하는 것이었죠.
재정악화에 물가상승, 빚까지…멀쩡한 게 없는 아르헨
왜 아르헨티나가 이러한 방안을 만들었는지 이해하려면 아르헨티나가 처한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져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5%에 육박합니다. 아르헨티나의 최근 역사 123년 중에서 113년이 재정적자일 정도죠. 중앙은행 역시 보유고가 적자 상태고, 인구 5분의 2는 빈곤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국민들은 초인플레이션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142.7%에 달합니다. 2022년 10월보다 물가가 2.5배가량 올랐다는 뜻입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수십퍼센트씩 올렸는데도, 진정은커녕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화폐가치가 형편없다 보니 상점 주인들은 자국 화폐인 페소화가 아니라 달러를 요구할 정도죠.
부채 문제도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1956년 국제통화기금(IMF) 가입 이후 구제금융을 22차례나 받은 나라입니다. IMF의 최대 부채국이죠. 2018년에는 금융위기로 440억달러(약 58조원)를 빌렸는데, 당장 내년 9월부터 이를 갚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재정, 물가, 부채의 삼중고는 과거 집권한 대통령들의 포퓰리즘 정치로 시작됐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고하면 좋습니다. (참고기사: [송승섭의 금융라이트]'기준금리 118%'…아르헨티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경제난 풀려면 재정적자 해결해야…페소화 가치하락으로 수출↑
페소화 가치하락(환율 인상)은 우선 재정적자부터 바로잡기 위해 실행됐습니다. 카푸토가 연설에서 한 작심발언에서 드러납니다.
“우리의 주요 문제는 재정적자입니다. 경제난에 대한 결과만 공격할 뿐 누구도 재정적자라는 원인에 대해서는 공격하지 않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처한 어려움을 풀려면 핵심 원인인 재정적자부터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죠.
페소화 가치는 실제로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화폐 가치가 낮아질수록(환율이 오를수록) 수출이 개선되고, 그만큼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거든요. 달러당 환율이 1000원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기업이 수출을 위해 1000원짜리 제품을 만들면 국제시장에서는 1달러에 책정됩니다. 하지만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도 환율이 달러당 2000원이라면 국제시장에서는 0.5달러가 되죠. 가격이 반값에 책정되니 수출에 훨씬 유리합니다. 아르헨티나의 환율이 달러당 366.5페소에서 달러당 800페소로 바뀌었으니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고 수출액도 늘어날 거라는 계산을 한 겁니다.
고통스러워도 체질개선 시도한다…200% 물가 견뎌야
그런데 왜 진즉에 페소화 평가절하를 하지 않았을까요? 좋은 정책이라면 빨리 평가절하를 단행해서 문제를 풀어도 됐을 텐데요. 사실 평가절하는 물가 인상을 유발합니다. 수출에는 유리하지만 수입으로 보면 불리해지죠. 예전에는 1000원에 1달러치 물건을 사 올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2000원을 내야 겨우 1달러 물건을 들여올 수 있으니까요. 아르헨티나의 세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평가절하 조치를 시행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따라서 재정적자를 풀기 위한 평가절하 조치가 단기간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JP모건은 아르헨티나의 12월 물가가 지난해 같은 월보다 210% 오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실제로 평가절하 발표 이후 아르헨티나항공은 국내 항공권 가격을 50~100% 올렸습니다. 국영 에너지 기업인 YPF도 주유소 연료 가격을 37%나 올렸죠.
고물가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 국민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용평가회사인 피치사는 보고서에서 “(아르헨티나의) 조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며, 앞으로의 길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분석했죠. 그런데도 필요한 조치인 만큼 시행해야 한다는 게 카푸토의 생각입니다. 연설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정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요.
“듣기 좋은 거짓말보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과감한 조치" 호평한 IMF, 페소화 앞날은 오리무중
IMF에서는 아르헨티나의 화폐가치 평가절하를 두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경제를 안정시키고 보다 지속가능한 민간 주도의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죠. 줄리 코작 IMF 대변인은 카푸토의 발표 직후 “과감한 시작 조치”라면서 “아르헨티나 정부의 결정적인 정책 시행은 경제 안정 및 민간 주도의 보다 지속가능한 성장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다만 의문점은 여전히 남습니다. 앞으로 화폐 정책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는 오리무중입니다. 밀레이 대통령은 대선 운동 당시 페소화의 평가절하가 아니라 페소화를 아예 폐지해버리자고 주장했던 인물이거든요. 대신 미국 달러를 공식 화폐로 도입하겠다고 주장했죠. 그런데 카푸토 장관은 달러화 도입에 반대하는 인물입니다. 페소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에 집중하는 걸 보니 달러 도입은 사실상 포기했거나 보류한 것으로 볼 수 있죠.
일각에서는 달러화 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단계로 보기도 합니다. 공약대로 달러화를 도입하려면 외환보유고를 어느 정도 채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수출을 많이 늘려야 하고, 페소화 평가절하가 이뤄진 거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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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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