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농사 이야기' 읽어주셨던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가족이지만 아주 다른 사람들, 농사 짓는 부모님 vs. 마케터 딸이 함께 농사일 하는 이야기. <기자말>
[최새롬 기자]
"하기사, 나도 참깨와 들깨를 구분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지."
밭에서 나를 보고 던진 어머니 말씀. 이어진 말씀은 '그 둘을 구분도 못하면서 무슨 농사 이야기를 쓰냐'는 것이다. 이 말에 속상하지는 않았다. 속상함이나 서운함은 없고, 그냥 '이젠 정말 들켰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는 내가 가짜인 것을 눈치챈 걸까?'
▲ 녹두를 따는 어머니 가격이 비싸다고 하지만 얼마인지는 알려주시지 않았다. |
ⓒ 최새롬 |
그동안 부모님은 농사 이야기를 누구보다 읽어주시며, 여러 가지 농사 소재를 전해주시며, 일의 디테일을 알려주시고, 글을 감수해 주셨다. 부모님은 언제부터 기쁨을 넘어서는 의구심이 올라온 걸까.
자식을 통해서 농사 이야기가 알려지는 기쁨이 조금은 있었지만, 그 반대편에는 농사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이가 이런 글을 계속 써도 될까 싶은 마음의 소리가 있으셨던 것 같다.
깨를 키우는 사람, 깨를 소비하는 사람
'참깨와 들깨' 편을 쓰면서 특히 대화가 많았다. 처음 쓴 내용이 다 틀렸기 때문이다. 나는 기사 초고에는 참깨 자리에 들깨를 써놓고, 들깻모에 참깨라고 설명을 달아놓았던 것이다. 어머니의 깨 강의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 후에도 계속 참깨 들깨 구분을 헷갈렸을 것이 분명했다(관련 기사: 여기 1mm 들깨를 숲처럼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https://omn.kr/2663g).
참깨는 희고 들깨는 검고 동그랗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채는 것은 농사에 대단히 중요한 속성이지만, 깨를 그냥 소비하는, 그것도 다른 것의 구매에 곁드는 -김밥을 사 먹으며 그 위의 참깨를 소비하는- 정도의 나에게 깨는 그냥, 다 깨였다. 깨를 키우는 사람으로부터 깨를 먹는 사람이기까지, 나는 대체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일까?
올해 부모님의 농사를 '잠깐' 도왔다. 겨우 며칠의 경험으로 글을 쓰고 연재를 하다니, 뭘 몰라서 할 수 있었다.
진짜로 농사일을 하시는 분들이 농사일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내 글쓰기는 조금 우스운 일이다. 우리가 언젠가 '그것'에 대해서 쓸 수 있다면, 비로소 내가 그것과 멀어져서 거리와 시간을 확보하고 나서일텐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에 대해 거리와 시간을 가졌단 이유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변명해 보자면, 내가 겪은 농사일에는 꼭 하루 이상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자 캐는 일에는 정말 딱 감자를 캐는 일만 들어 있지는 않았다.
감자를 담으면서 분류하기 때문에 상처 나거나 썩은 것이 없는지 모든 감자를 직접 만지고 관찰해야 한다. 해를 보면 파랗게 되는 감자의 사정 때문에, 가리개로 덮어주며 담아야 하는 줄도 나는 몰랐다. 사람 쓰기 어려운 농사일에 '어디서부터 담으면 되냐'고 묻는 사람이 갑자기 밭에 나타났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이지 거짓말 같다(관련 기사: 양파 밭에 출몰한 귀인의 정체, 알수록 모르겠다 https://omn.kr/254t3).
▲ 녹두 '녹두가 나를 괴롭히네' 콧노래를 흥얼거리시며 어머니가 따신 녹두. |
ⓒ 최새롬 |
서울에서 마케터 일을 하는 딸이 가끔 와서 보는 이 느린 노동은 바꿔야 할 것 투성이었다. 기계를 사용하고, 작업대를 마련하고, 필요한 농기계나 일을 고안하고, 효율적인 동선을 연구하면 농사의 어려움을 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런 효율성을 잘 찾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고민이 적었기에 이렇게 농사가 힘든 것이라 의심했었다. 그러나 실제 일을 해보고 알게 됐다, 믿기 어렵게도 이 이해가 선뜻 가지 않는 일과가 실은 가장 빠른 길이었다는 걸. 지금보다 더 빠르게, 인력을 아끼면서 일하는 방법은 없었다.
날씨와 작물의 컨디션과 변화를 먼저 살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게다가 농가 대부분 농사를 둘 아니면 혼자서 꾸린다는 점을 나는 자주 잊었다. 씨앗은 작지만 종내는 부피와 무게가 산처럼 쌓이는 작물과 일을 두고서 도망가지 않는다는 게 굉장한 일이다. 여기서 나는 어떤 '효율'을 상상한 것일까. '효율'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과거 내 생각이야말로 낙후된 것이었다.
자녀가 스스로 자라듯 작물도 그렇다
자식 키우는 것을 '농사'에 비유하는 것은 작물이 그 비슷한 돌봄을 통해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이 돌봄만으로 자라지 않고, 여러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라고 성장할 수 있듯 결국 작물이 커가는 일은 작물에게 달린 일이기도 하다. 그 시간을 인간이 좌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토록 허리를 수그리고 흙을 만지고 고된 시간을 보낸 것이다.
▲ 양파와 마늘 양파와 마늘의 오후 |
ⓒ 최새롬 |
이런 노동의 동기화는 부모님과 나, 우리에게 침묵을 가져다주었다. 같은 노동을 하고 같이 땀을 흘리느라 말수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이 없다고 유대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낮잠을 잤다.
어느 동네 마트에서 만나는 모든 야채와 과일이 어떤 손을 거쳐 왔다는 사실은, 스스로 만 개가 넘는 양파를 담아본 지금에서도 잘 믿기지 않는다. 오늘날 어떤 것은 사람을 통하지 않고 내 앞에 오는 것만 같지만, 사람을 통하지 않고 도착하는 것이 실은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면 어떤 경외감이 들 정도다.
다른 이의 노동으로 우리가 살아간다는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을,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이 우선 그렇다는 새삼스러움을 다시 본다. 이 흔한 밥을 먹기까지, 허리를 논에 가까게 수없이 구부렸던 사람들이 있었는지를.
실제 삶보다 글이 더 멋있기를 바랄 때
쓰지 못한 농사 이야기도 있다. 농기계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다. 농기계의 제일 트랙터, 콤바인이 없다면 포기해야 하는 논농사, 작물을 이해하는 동시에 기계도 이해해야 하는 농부의 어려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자료조사 등이 부족해 쓸 수 없었다.
또 '농산물 유통과 도매 가격은 왜 그런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역량이 부족해 쓰지 못했다.
도매 경매는 수수료는 몇몇 기업의 독점 구조로 매해 이들만 이익을 보고 있다. 생산자가 가격에 개입하지 못하는 폐쇄적 구조에 대한 비판이 여러 해 나오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독점 도매 구조는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그런데 또 이해할 수 없게도, 도매-경매 수수료가 농업과 관련없는 대기업의 주주에게까지 현금배당이 되고 있다는 관련 기사(링크)를 최근 접했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내가 가짜인 것을 알아챘을까. 실제 행동보다도 그걸 옮겨놓은 글이 더 아름다워지기를 원하는 순간에였다. 농사일로 온몸이 시큰해서 하루를 복기하면, 몰랐던 것을 알아차리고 알았던 것이 뒤집어지는 순간을 사방에서 만났다. 그때에는 부러 글을 '잘' 써야겠다는 의도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일을 조금이라도 덜 하면, 글이 아름다워지려고 했다. 그건 대번에 보이는 사실. 노동이 비어있는 틈은 노동이 아닌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는 없었다. 상상으로 꾸며쓸 수가 없는 일이 있었다.
연재는 이것으로 마치려 한다. 앞으로도 부모님의 은퇴 전에 농사를 더 돕고, 그 과정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기쁨과 이전엔 몰랐던 고통에 대해서 계속 써나가 보는 기회가 있기를. 그동안 가짜 농사 이야기를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앞으로 부모님의 은퇴 전에 농사를 더 돕고, 그 과정을 계속 써나가 보는 기회가 또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알아차리는 기쁨, 이전엔 몰랐던 고통에 대해서 알게 되는 기회가 있기를.
'마케터이고 농사는 모르지만' 연재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가짜 농사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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