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축하한다"... 제자들에게 이 말을 해보려고 합니다
[김국현 기자]
▲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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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다정하지 않다. 특히 장애를 겪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의 맨얼굴에서 장애인을 여전히 세상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있는 현실을 읽을 수 있다.
40년 전에, 나는 공업고등학교 전자과를 졸업했다.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졸업하면, 취직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친구들은 자신의 여건과 희망에 따라 취업을 하거나 대학에 갔다. 나는 취업을 바랐지만 6개월이 지나도 이력서를 낸 회사에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아침 일찍, 버스정류장 가판대에 놓인 구인 광고지를 종류별로 다 챙겨오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구인란에 밑줄을 그어가며 전화기 다이얼을 수없이 돌렸다. 운 좋게, 고맙게(도) 나는 손톱깎이 만드는 가내공업 회사에 취업했다. 조그마한 방에서 테이블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톱깎이에 장식용 플라스틱을 붙이는 일이었다. 일한 지 보름쯤 됐을 때, 사장은 나를 해고했다. 일하는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는 것이 해고 이유의 전부였다.
4살 때, 홍역과 소아마비를 함께 앓았다. 그 후유증으로 나는 목발을 짚었다. 두 다리와 허리가 허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앉아서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두라니, 세상의 판단은 내 생각과 달랐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내 어머니는 내가 금은세공 일을 배워 살아가기를 바라셨다. 사회가 나를 받아 주지 않아 내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나를 해고한 사장도, 숙명론에 고개 숙인 어머니도, 해고된 나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 통념에 저항하지 못한 패자였다. 나는 늦은 나이에 삶을 살아내기 위해 특수교육 교사를 선택했다. 훗날, 어머니는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아무 걱정도 안 했을 것이다. 아이고, 내 아들!" 사실은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릴 때는, 내가 교사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내 삶은 누군가에게 빚진 삶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축하 인사를 건넨다
연말이다. 특수학교에 졸업 철이 다가온다. 교육부의 2023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고등학교 및 전공과 졸업생은 총 8899명이다. 취업률은 34.5%다. 특수학교의 고등학교 과정 졸업생만 놓고 보면 취업률은 5.1%다. 예나 지금이나 중증 장애를 겪는 사람이 발 디딜 사회 공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소심한 내가 졸업식 때,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을 학부모에게 차마 건네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다.
마사 누스바움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희망은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희망과 절망은 상황 그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제 나는, 누스바움의 성찰에 기대어,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축하의 인사말을 하려고 한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어설픈 변론은 이렇다.
돈이, 능력우선주의가, 완벽한 몸에 대한 환상이 지배하는 세상은 세월이 더 흐르더라도 중증 장애를 겪는 사람을 대놓고 사회에서 밀어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조건 없이 환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절박한 우리의 처지는 사회에 존재하는 배제의 그물망을 볼 수 있는 시선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희망의 이야기는 "세상은 원래 그래"를 용인하고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숙명론을 거부하고, 손에 손을 맞잡고 사회의 변화를 이끈 사람들이 써왔다.
이제, 우리도 우리 삶의 언어로 낙담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단어의 사용법을 익힐 때다. 그 희망은 배제의 그물망을 찾아서 풀어 헤치고, 새로운 참여의 그물망을 엮는 실천을 선택할 때 우리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졸업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 이야기를 쓸 기회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 내리지 마라. 그런 태도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꽁꽁 옭아매게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을 항상 존귀한 사람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라."
특수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길게는 14년 동안 학생과 학부모가 동행한 성장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그 아름다운 동행은 말로 풀 수 없는 혼돈을 겪음이고, 함께 존재하기 위한 지난한 인내의 시간이며, 온몸이 귀가 되고 입이 되어 소통한 겸손한 존재의 이야기다. 해서 진정으로 위로받고, 존중받고, 축하받아야 할 자격이 그 존재 자체에 있다. 진정으로 고개 숙여 졸업을 축하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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