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 ‘옥석 가리기’ 본격화…사업장 재평가‧충당금 확대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일부 사업장에 대한 사업성 재평가에 나섰다.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커지며 금융시장에 위기감이 번지자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를 통해 일부 사업장의 부실이 시장 전체로 번지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관리 사각지대’로 꼽히는 새마을금고에 대해서도 상시 감시 체계를 마련할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17일 “부동산 PF 관련 시장 상황을 긴장감 있게 모니터링하며 PF 사업장에 대한 재평가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부동산 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만큼 정확한 평가를 통해 사업장에 대한 건전성을 재분류하고 충당금을 쌓도록 유도하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그간 ‘인공호흡기 달기’란 비판에도 대주단 협약을 통해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상당수 부동산 PF 부실을 이연해왔다. 9월 말 기준 증권사(13.85%)와 저축은행(5.56%) 연체율이 높은 수준이지만 다른 금융권 대비 대출 규모가 작아 관리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재차 번지자 금융당국은 ‘자기 책임 원칙’을 강조하며 달라진 입장을 나타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2일 “사업성이 미비한 사업장이나 재무적 영속성에 문제가 있는 건설사ㆍ금융사의 경우에는 시장 원칙에 따라 적절한 조정ㆍ정리, 자구 노력, 손실부담 등을 전제로 한 자기 책임 원칙의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특히 일부 사업장의 부실이 전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부실 도미노’ 차단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금융권에서도 부실 PF에 대한 정리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9월 말 기준 사업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돼 경ㆍ공매가 진행 중인 사업장은 120개다. 지난해 말 70개, 올해 6월 말 100개에서 점차 늘고 있다.
금융당국은 역시 PF 부실 우려가 있는 새마을금고에 대한 관리 감독도 강화한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행정안전부, 새마을금고중앙회 등과 공동검사권 및 자료요청권을 핵심으로 하는 업무협약(MOU)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새마을금고의 예수금, 여신 현황 등 주요 지표와 통계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위험 요인을 선제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는 고금리에 부동산 PF 리스크가 심화하면서 새마을금고를 포함한 상호금융권의 부실 우려도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상호금융권(새마을금고 제외) PF 대출 연체율이 4.18%로 전 분기 말(1.12%) 대비 3.05%포인트 올랐다. 전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 9월 말 기준 2.42%로 6월 말(2.17%) 대비 0.24%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말(1.19%) 대비로는 1.23%포인트 뛰었다.
PF 대출 통계로 분류되지 않는 각종 부동산 개발 사업 관련 대출 연체율도 심상찮다. 농협중앙회가 연체율이 높은 지역 농ㆍ축협 약 50곳을 조사한 결과 미분양 담보 공동대출 연체액은 올해 6월 말 3128억원으로 지난해 말(932억원)의 3배로 급증했다. 연체율도 지난해 말 6.55%에서 6월 말 20.3%로 치솟았다. 이에 농협중앙회는 오는 20일부터 미분양 담보 신규 공동대출을 중단하는 등 건전성 관리 강화에 나섰다. 새마을금고가 부동산 담보 등으로 내준 기업대출 연체율도 6월 말 기준 8.34%로 지난해 말(5.61%) 대비 2.73%포인트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PF 중에서도 특히 브릿지론 리스크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짚고 있다. 브릿지론은 부동산 개발 사업 과정에서 토지 매입 등 초기 단계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지난 9월 기준 대출 만기 연장으로 버틴 브릿지론 규모는 30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지금과 같은 고금리가 계속 이어지면, 해당 사업장 브릿지론에 대출을 내어 준 금융회사의 손실이 불가피하며 전체 브릿지론의 30∼50%는 최종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PF 부실이 한꺼번에 터지며 경제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단계적 정리 작업을 늦추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시장이 어렵다고 해서 구조조정을 미루면 그만큼 부동산 경기 회복 시점도 늦어진다”며 “지금은 일부 부실 사업장을 정리해도 시장을 교란할 만큼 불안 요소가 크지 않기 때문에 조정할 여력이 있는 건데, 이대로 가다가 부실이 한 번에 터지면 더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리에 종기가 하나 났다고 하면, 괜찮을 때 떼버려야지 곪아 터질 때까지 둘 경우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2기 경제팀도 부동산 PF 관리를 최대 현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이날 국회에 보낸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부동산 PF 부실은 금융시장과 건설사ㆍ부동산 등 실물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어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과제”라며 “부동산 PF 연착륙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철저히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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