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년간 비어 있던 자리에 김대건 신부가 걸어 들어간 듯"
'돌 조각가' 한진섭 가나아트 전시
60cm 김대건 상과 다양한 성상들
"내 삶이 이 일을 위해 준비된 듯"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 높이 3.7m의 김대건(1821∼1846) 신부 조각상을 세우고 돌아온 조각가 한진섭(67)씨가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바티칸에 설치된 것과 같은 형태의 60cm 높이의 김대건 신부 상을 비롯해 바티칸에 제출했던 모형과 더불어 다양한 성상(聖像) 등 30여 점을 내년 1월 14일까지 선보인다.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각상은 지난 9월 16일 바티칸에서 축복식을 마치고 일반에 정식 공개됐다. 가톨릭 세계의 중심인 로마 바티칸에 동아시아 성인 상(像)이 세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수도회 창립자가 아닌 성인 상이 성 베드로 대성당 벽에 설치된 것도 처음이다.
성상 조각을 맡고 지난해 10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 인생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소감을 밝혔던 한씨는 지난 15일 전시장에서 인터뷰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전시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성상 축복식 날 추기경님도 울고 저도 울었다"면서 "최근 몇 년간 신기한 일들이 줄줄이 일어났다. 모든 게 기적 같다"고 말했다.
조각상이 설치된 곳은 대성당 오른쪽 외벽의 벽감으로, 건물이 지어진 이래 550년간 줄곧 비어있던 자리다. 한씨는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외부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라며 "안쪽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있고 바로 그 옆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조각상을 설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기적' 이었다. 그는 "4m에 가까운 대형 조각상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렸는데, 거짓말처럼 한 번에 설치가 끝났다"며 "너무 밀어 넣으면 빼지도 못하는데 한 번에 수평도 딱 맞았다. 마치 김대건 신부님이 '여긴 내 자리야' 하며 뒷걸음질해서 들어간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Q : "모든 게 기적 같다"고 했다.
A : 500년 이상 비어 있던 자리에 김대건 신부 조각상이 놓인 것, 제작을 한국 조각가가 맡게 된 것, 제가 오래전 카라라에서 유학한 것, 돌 조각을 평생 해온 것, 이 일을 맡기에 앞서 우연히 구상 조각을 연이어 한 것 등이 돌아보니 모두 계획된 일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그는 "나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아내(고종희 한양여대 명예교수)가 곁을 지키며 제가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왔다"며 "제겐 이 역시 모두 사전에 준비된 일처럼 여겨졌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국립피사대 미술사학과에서 공부한 고 교수는 지난 8월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한길사)을 출간한 미술사학자다.
김대건 조각상이 설치된 데에는 2021년 로마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취임한 유흥식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유 추기경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성상 봉헌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 이후 바티칸은 이탈리아 조각가에게 제작을 맡기기로 하고 후보를 물색했으나 유 추기경이 "한국 성인이니 한국 조각가가 더 잘 표현할 것"이라고 바티칸을 설득해 계획이 수정됐다.
한씨가 조각가로 선정되는 과정에도 여러 상황이 맞아 들어갔다. 그가 가톨릭 신자이고, 카라라에서 돌 작업을 할 수 있는 등의 조건 등을 고려한 끝에 그가 낙점됐다. 그는 "돌 작업을 48년간 했지만, 사실적인 조각을 하지는 않았다"며 "그러다 신기하게도 2년 반 전부터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과 김대건 신부 조각상, 정하상 바오로 성상 작업을 했다. 그때 바티칸에서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모형 제작부터 대리석을 찾고, 조각 기간을 모두 합쳐 제작엔 2년 정도 걸렸다.
Q : 돌 찾는 데 5개월이 걸렸다고.
A : 금이 없고, 무늬도 없고, 외부에 있어야 하니 단단하고, 또 보기에 따뜻한 느낌이어야 했다. 거기에 높이 4.5m 폭이 2m가 돼야 했고. 미켈란젤로도 좋은 돌을 찾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린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 속보다 더 알 수 없는 게 돌 속'인 데 속까지 깨끗한 돌을 찾았으니 이 역시 기적이었다.
한씨는 "김대건 신부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굉장히 용기가 있으면서도 포용할 줄 아는 분이었다"며 "젊으면서도 담대하고 포용력 있는 얼굴로 표현하는 작업이 부담스러워 잠도 안 왔다"고 말했다.
성상은 보이지 않는 뒷모습까지 정교하게 조각했다. 그와 함께 작업한 이탈리아 장인은 "뒤는 안보이니 대리석 그대로 두자"고 했으나 그는 "그것은 성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도포 자락 주름과 매듭 디테일까지 조각했다.
전시는 김대건 성상이 만들어진 과정을 영상과 사진, 연표 등으로 자세히 보여준다. 60cm 높이의 대리석 조각은 전시를 위해 다시 제작했다. 나머지 성상은 '착한 목자와 착한 양들' '십자가-은총의 빛' 등 극도로 단순한 형태에 부드럽고 따뜻함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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