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흔들며 도와달라 했는데…" 이스라엘 인질 오인 사살 후폭풍

박소영 2023. 12. 17. 14: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붙잡힌 자국 인질 세 명을 오인 사격으로 사살한 것을 시인했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6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혀 국내·외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이스라엘에선 인질 석방을 위해 즉각 휴전하라는 시위를 벌어졌고, 우방국인 영국·독일에서는 2차 휴전을 촉구했다.

이스라엘군이 지난 15일 가자지구 북부에서 교전 중 오인 사격으로 사망한 3명의 이스라엘 인질들. AP=연합뉴스


로이터통신·BBC방송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날 가자지구에서 자국의 남성 인질 세 명이 이스라엘군에 사살된 것을 언급하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며 이들의 사망을 애도했다. 이어 "인질의 귀환과 승리를 위해서는 군사적 압박이 필요하다. 승리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면서 전쟁 강행에 대한 굳건한 입장을 되풀이했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얻은 교훈으로 인질들을 데려오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며 하마스와의 협상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니아 국장이 지난 15일 유럽에서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와 만나 인질 석방을 논의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카타르의 고위 관리가 회동한 것은 지난달 말 7일간의 휴전 이후 처음이다.

앞서 네타냐후 총리는 짧은 휴전 이후 이달 초부터 가자지구 남부 지역에 공격을 재개하고, 인질 협상단 파견을 부결하는 등 한층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지난 15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세자이야에서 교전 중, 자국인 인질을 오인사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질 석방 협상을 재개했다.

당시 인질들은 흰색 상의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 백기처럼 보이게 흔들고 히브리어로 "도와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유인작전으로 오해해 총격을 가했다.

이에 대해 찰리 허버트 전 영국군 장군은 BBC에 "이스라엘군의 지상 작전 중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이렇게 사망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면서 "이스라엘군의 전술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무장 모녀 사살"주장 제기…교황 애도

이런 가운데 이날 이스라엘 저격수가 가자지구 교회에서 비무장 모녀를 사살했다는 로마 가톨릭교회 예루살렘 총대주교청 주장도 제기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예루살렘 로마 가톨릭 라틴 총대주교청은 성명을 내고 "이날 정오 무렵 기독교 가정이 피신해 있는 가자지구 교회 안에서 이스라엘 저격수가 기독교인 여성 2명을 살해했다"면서 "사전 경고가 내려지지 않았고, 교전자가 없는 본당 경내에서 냉혹하게 총살당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두 모녀의 사망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교황은 17일 삼종기도 끝 무렵 "가자지구에서 매우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소식들을 계속 받고 있다"며 "한 어머니와 그의 딸이 죽었고, 다른 사람들은 저격수가 쏜 총에 다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은 테러리스트는 없고 가족과 어린이, 환자, 장애인만 있는 성가정 본당에서 일어났다"며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들이 총격과 포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스라엘군은 성당에서 비무장 모녀가 저격수에게 살해됐다는 주장의 사실관계와 경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국민 수천명이 1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오인사격 사건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를 올리는 네타냐후 총리의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스라엘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 국민 수천 명이 텔아비브에 모여 "집으로 모두 데려오라. 지옥에서 구출하라"고 외치며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했다.

동맹국인 영국·독일 외교 수장은 지속 가능한 휴전을 촉구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과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이날 영국 선데이타임스 기고문에 "우리는 지속 가능한 평화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휴전으로 가는 길을 닦는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2일엔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은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한 입장을 비판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대화의 물꼬는 다시 텄지만 2차 인질·휴전 협상이 실제로 이뤄지기까지는 매우 길고 어려운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 국민에 대한 공격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는 한 포로 교환 협상을 시작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이스라엘과 미국이 지난 2018년 5억 달러(약 6500억원) 상당의 하마스 해외 자산을 찾고도 4년이 지나서야 늑장 제재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매체는 해당 자금의 일부가 하마스의 지난 10월 7일 새벽 기습 공격 준비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면서 "당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금융 활동에 대한 감시와 제재 유지가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하마스에 대한 조치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