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채권형 랩·신탁 불법 운용 적발…제3자 이익 도모·사후 이익 제공 등
금융감독원이 채권형 랩어카운트·특정금전신탁 업무실태를 조사한 결과 고객 계좌의 손실을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다른 고객의 계좌로 전가하거나 고객의 투자손실을 증권사 고유자산을 통해 보전하는 등 중대 위법 사실이 발견됐다.
금감원은 수탁고, 증감 추이, 시장정보 등을 고려해 총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신탁 업무실태에 대한 집중 점검을 실시한 결과 제3자 이익 도모·사후 이익 제공 등이 적발됐다고 17일 밝혔다.
앞서 지난해 하반기 자금시장 경색으로 인해 다수의 법인고객이 가입 중이던 채권형 랩·신탁의 환매를 요청하였으나, 기업어음(CP) 등 편입자산의 시장 매도가 어려워지며 환매 중단 또는 지연 사태가 나타났다. 또 일부 증권사가 고객의 투자손실을 회사의 고유자산으로 보전해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시장 불신이 확산됐다. 이에 금감원은 올해 검사계획 중 하나로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 관행에 대한 테마 검사를 선정·발표한 바 있다.
채권형 랩과 신탁은 증권사가 고객과의 일대 일 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대표적인 금융상품이다. 다수의 고객자산을 집합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개별 고객의 투자목적과 자금 수요를 감안한 단독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법인고객의 단기자금 운용 수단으로 선호된다.
주요 검사 내용으로 특정 고객의 랩·신탁 계좌로 CP 등을 고가 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손실을 전가하는 행태가 적발됐다. 랩·신탁 운용 시 특정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금지된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 만기도래 계좌의 목표수익률 달성을 위해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고개계좌 간 손익을 이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증권사는 2022년 7월 이후 다른 증권사와 총 6000여회의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 계좌의 CP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해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 전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비정상적인 가격의 거래를 통해 고객에게 손해를 전가한 행위가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는 중대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 주요 혐의사실을 수사당국에 제공할 방침이다.
아울러 일부 증권사는 시장 상황 변동으로 랩·신탁 만기 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의 결정 하에 고객 계좌의 CP를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사후 이익 제공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B증권사는 다른 증권사에 가입한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2022년 11월부터 12월 사이 고객 랩·신탁의 CP 등을 고가매수하는 방식으로 총 1100억원 규모의 이익을 제공했다. C증권사는 자사에 설정한 펀드를 통해 2022년 11월부터 올해 5월 사이 고객 랩·신탁의 CP 등을 고가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총 700억원 규모의 이익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 외에도 기타 위법행위로 계약 조건 위배, 동일 투자자 계좌 간 자전거래, OEM펀드 운용 등이 나타났다. OEM편드는 자산운용사가 은행·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에서 명령·지시·요청 등을 받아 만든 펀드를 의미하는데 자본시장법상 금지돼 있다.
금감원은 "고객자산 운용 시에도 고유자산 운용에 준하는 충실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라며 "거래가격 등에 대한 내부통제가 강화돼야 하며 랩·신탁 계약체결·운용·환매 과정에서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이 준수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랩·신탁은 실적배당상품이므로 증권사에 과도한 목표수익률 제시를 요구하거나 이를 신뢰해서는 안 된다"라며 "투자자는 운용보고서 및 계좌 조회 등을 통해 자산의 내역, 만기 등을 수시로 확인함으로써, 적정하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고 투자손실 보전 또는 목표수익률 보장을 요구하는 행위는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에 반해 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확인된 위법행위를 신속히 조치해 랩·신탁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운용상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서는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업계가 협의해 객관적인 가격 산정 및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 등을 통해 환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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