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김준곤 목사님의 미소 (2-2)
김준곤 목사님은 증도 섬에서 문준경 전도사님의 전도를 받은 분이다. 문준경 전도사님으로부터 전도를 받아 우리나라를 세계의 선교 대국으로 성장시킨 귀한 종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김준곤 목사님은 문준경 전도사님이 개척한 교회 교인들의 모금으로 신학 공부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목사님도 섬에서 태어나 나와 같은 정서를 안고 살아온 때문일까. 유난히 나를 아껴주셨다. 내가 자라온 환경 때문일까. 나는 누구든지 신앙심보다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을 더 존경한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주님의 기쁨과 찬송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 당연한 일일 테니까.
요한복음 14장 21절 말씀이 증명하듯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인정하신다는 말씀이리라. 그러나 애국자들은 소극적인 크리스천이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을 벗어나 전 세계의 민족을 사랑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이 땅과 세계 속에 예수님의 사랑을 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초개같이 내 던지려 결단한 분들이다. 범민족적인 순교의 삶을 결단한 분들 앞에 서면 괜스레 눈물이 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내 이름이 이를 증명한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앉혀놓고 태극기를 그리시며 이 땅에 만연했던 공산주의 사상으로 우리 가족이 겪었던 수난과 큰 아픔과 상처를 얘기해 주셨다. 6·25 한국전쟁 당시 나의 외삼촌은 큰 누님인 내 어머니를 찾아 섬으로 피신하면 안전할 줄 알고 왔었단다. 공무원이셨는데 땅굴 속에 숨어 지내다가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은 누님을 만나려고 육지에 잠시 나갔다가 빨치산 무리의 덫에 걸려들었다. 외삼촌은 공산당들에 의해 50여명과 함께 사살되어 산에 묻히셨다. 그와 같은 처참한 모습으로 김준곤 목사님 사모님도 순교 당하셨다. 목사님은 양친 부모를 처참하게 살해한 공산당들의 만행을 직접 목격하셨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무고한 사람을 살해할 때 떼를 지어 몽둥이로 죽창으로 무장한 악마가 됐다.
사모님을 잃고 얼마나 울분을 참기 어려우셨을까. 목사님은 사모님에 대한 사랑을 늘 품에 안고 살았다. 사모님과의 추억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고 했다. 신학교 다닐 때 가난한 살림이라 목사님 두루마기 동정도 사모님은 자신이 입고 있던 하얀 옥양목 치마를 오려서 깨끗하게 해줄 정도로 야무진 살림꾼이었다고 추억하셨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현모양처와 부모님을 잃은 목사님은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셨다.
나는 그런 김준곤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신앙을 지켜왔다. 목사님과 추억이 많지만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내 나이 만 21세 때다. 어느 날 정동 중국 대사관 옆에 자리한 CCC 건물에서 목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퇴근 후 목사님을 찾았을 때 그날도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목사님께서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지금도 동생들과 함께 지내느냐? 방세는 얼마냐?”고 물으셨다.
나는 7만원 단칸방에서 형제들과 산다고 말했다. 어딘데 그렇게 싼 집이 있느냐고 해서 미아리 산동네라 수돗물은 안 나오지만 전기가 들어온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물지게 아주머니에게 물을 사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에 목사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국애야, 먼저 기도하자.” 하시면서 기도 중에 CCC의 심각한 현실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계셨다. 며칠 금식하며 나를 위해 기도를 하셨다고 했다. 현재 CCC가 위기에 봉착했지만 이 어려움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당시 대학가마다 한총련과 전교조, 성공회의 이념의 물결이 학원마다 만연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미국에서는 한국의 학원 선교를 확장하기 위해 의료선교의 슬로건을 걸고 전국 낙도 섬 지방을 순회하며 의료선교를 기획했다.
나는 여의도 74엑스폴로의 현장을 기억한다.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은 동서로 지구촌 곳곳으로, 공기로 바람으로 빛으로 퍼져나갔다.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지칭할 만큼 우리 민족을 사랑하심을 절절히 드러내셨다. 그 거대한 집회는 CCC를 확장하는 집회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3년여 공생애를 마치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영원한 나라로 입성하셨다.
하나님이 영원한 세계의 주인 되심을 만천하에 입증한 부활 사건처럼 엑스폴로 74에 모인 사람들도 불같은 성령의 체험을 했다. 그곳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한 역사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방송으로 문서로 퍼져나갔다. CCC의 사생아 같은 나는 CCC의 동계 성서대학에 간하베 선교사와 쎈디 아줌마의 주옥같은 강의를 들었고, 입석 수양회 때마다 함께해 주시던 조용기 목사님과 옥한흠 목사님께서도 메시지를 전하셨다.
우리 사회 문제인 범죄, 빈곤, 이혼, 음주, 마약 등은 교회 안에서 다루기 역부족일 때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신앙으로 계몽했던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외침과 엑스폴로 74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운동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끌어낸 회개운동과 같은 맥락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 그리스도인들의 회개 운동이었다. 나는 내가 가는 앞길을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늘 함께해주심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나날이 벅차고 감사하다. 묵묵히 걸어가는 이 길이 늘 기쁨으로 충만하다.
<낙엽의 소리>
한 방울의 물기조차 없다
바싹 말라버린 빈 몸
굴러다녀도 상처 날 일이 없다
순정의 꽃잎도
열매의 영광도 떠났다
뽐내던 붉은 맵시
떠나야 할 시간
떨어져 바스러진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숨겨진 고요한 비밀
새봄이 되면 알게 된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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