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체 이상으로 회항하는 비행기, 그 뒤에 숨은 이야기

[김성호의 씨네만세 610] <해피 플라이트>

[김성호 기자]

하나의 산업, 하나의 서비스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직역과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막상 무얼 누리려 할 때면 눈앞에 드러난 것이 전부인 양 여길 때가 얼마나 많던가. 지하철이며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탈 때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의 운행을 위해서는 차량을 정비하고, 지하철 순환체계를 감독하며, 지하철 실내며 역사를 청소하고, 또 역을 관리하고, 나아가 직접 지하철을 운행하는 이들의 노력이 필수불가결하다. 어디 그뿐인가. 선로 역시 꾸준히 관리가 필요하다. 매일 선로가 망가지진 않았는지 돌아보고 정비하는 이들 또한 지하철 운행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할 것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참사를 떠올린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대구 지하철이 불탔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과 이태원 어느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그 모든 참사 뒤에는 어느 하나가 아닌 수많은 문제들이 겹쳐 있었다. 연쇄되어 무너지는 어느 고리 하나라도 끊어냈다면 그처럼 많은 생명이 떠나가진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 해피 플라이트 포스터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비행 산업 전반을 이해하게 돕는

<해피 플라이트>는 그런 점에서 공익적인 작품이다. 대중이 흔히 이용하는 공항이라는 공간,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에도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집약돼 있음을 알게 한다. 흔히 비행기를 탄다 하면 사람들은 기장과 승무원부터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산업군이 그러하듯, 누군가의 편안하고 안전한 비행 뒤엔 수많은 노력들이 있는 것이다.

일본 영화감독 가운데 한국에도 명성이 있는 몇 안 되는 연출자가 야구치 시노부다. 남고생들이 수중발레팀을 결성해 활약하는 <워터보이즈>와 여고 스윙밴드 이야기인 <스윙걸즈>로 일본 청춘드라마의 기치를 높인 바로 그 감독이다. 그의 관심이 제 꿈에 다가서는 청춘을 넘어서 제 업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회인에게 향하니, 그 결과가 바로 <해피 플라이트>라 하겠다.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공항 이야기다. 기장 승격을 앞둔 부기장 스즈키(다나베 세이치 분)는 엄격하기 짝이 없는 기장 하라다(도키토 사부로 분)와 함께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하는 비행기 조종석에 오른다. 두근거리는 건 그만이 아니다. 같은 비행기에 탄 승무원 에츠코(아야세 하루카 분) 또한 한껏 긴장해 있다. 승무원으로의 첫 비행에 기대가 한가득이지만 마녀라고 불리는 사무장(테라지마 시노부 분)이 여간 깐깐한 것이 아니다.
 

▲ 해피 플라이트 스틸컷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한 대의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

영화는 한 대의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 관련된 여러 직역의 이야기를 말 그대로 총망라한다. 승객과 직접 대면하는 기장과 기내 승무원은 물론이요, 항공사의 육상직 승무원들과 관제탑, 또 정비팀까지 여러 직역이 등장한다. 비행기가 새와 충돌하지 않도록 공포탄으로 새를 쫓는 사람까지 등장하는 가운데, 이들이 하는 일이 어떠한 것인지를 관객에게 알기 쉽게 이해시킨다.

충분한 취재가 밑바탕이 된 듯, 한두 마디 대사와 짤막한 장면만으로 관객에게 이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또 그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알린다. 이를테면 관제탑에서 일하는 관제사 중 한 명이 비행기 모양의 초콜릿을 가져와 동료들에게 권한다. 그가 항공도 위에 비행기 모양 초콜릿을 늘어놓자, 한 직원이 그 모습이 불편하다며 하나씩 줄을 세워 늘어뜨린다. 직업병이라며 머쓱해하는 그녀 앞에서 그녀의 선배가 그녀가 늘어놓은 비행기가 너무 가깝다고 말한다. 5마일쯤은 떨어져야 한다며 조금 떨어뜨려 비행기를 다시 놓는 선배 곁에서 다른 동료가 비행기 머리 부분이 서로 15도씩 어긋나 있어야 한다며 초콜릿을 다시 틀어놓는 것이다.

관제사들만은 아니다. 비행기를 정비하는 이들 또한 제 일에 여념이 없다.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동안 정비팀 팀장은 기장에게 비행기의 정비상태를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한 신참 정비사가 아래에서 장비를 손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륙이 얼마 남지 않은 비행기를 정비한다는 이야기에 득달같이 내려간 그에게 신참은 더 완전한 상태로 이륙하도록 하기 위해 정비를 했노라고 말한다. 이륙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소소한 정비는 나중에 한꺼번에 하라는 지시에도, 어떻게든 더 나은 상태로 이륙하게 하려 최선을 다하는 이가 있는 것이다.
 

▲ 해피 플라이트 스틸컷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직역을 넘나들며 모두의 수고를 조명하다

활주로를 담당하는 팀 또한 분주하기 짝이 없다. 수많은 활주로 가운데서 비행기가 순조롭게 이착륙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이 팀은 시스템이 거듭 개발되어 배울 것이 한둘이 아니다. 오랜 기간 근무한 베테랑들이 하나둘 떠나는 가운데, 나이든 이는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만만찮은 상황이다. 한때는 믿음직했다는 어느 선배도 이제는 새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애를 먹는 모양, 후배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는 미덥지 않다.

화려하기만 해 보이는 승무원의 세계도 육상직으로 내려오면 여간 고단한 게 아닌 모양이다. 비행 없이 공항에서 고객들에 대응하는 이들의 임무는 이따금 진상 고객들과 마주하면 그야말로 심각한 감정노동이 되고는 한다. 수없는 연착과 비행취소 때마다 고객의 불만에 응대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 그 업무가 고되어 그만두려 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영화는 직역 하나하나를 건너가며 비행에 필요한 여러 노동의 가치를 내보인다. 그 모든 노동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이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비행기는 순조롭게 이륙한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회항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컴퓨터 시스템에 이상이 생기고 수동으로 조종해야 하는 상황이 온 탓이다. 휴가 일정이 망가진 고객들의 불만이 상당할 밖에 없지만 비행기는 회항을 위한 절차를 착착 밟아나간다.

그로부터 영화는 이륙한 비행기가 회항하기까지 일어나는 비행기와 공항에서의 이야기를 한 편의 유머러스한 소동극으로 그려낸다. 비행기의 이상을 파악하고 악천후 속에서 안전한 착륙을 돕는 육상 직원들의 노력부터, 비행기의 이상이 혹여 제 잘못은 아닐까 문제를 되짚어가는 정비팀, 또 손님들에게 응대하며 진땀을 빼는 승무원들의 모습이 인상 깊게 등장한다. 그 과정 모두에서 각 직역 노동자들의 책임감과 프로의식이 남달라서 실제보다 훨씬 미화된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할 정도다.
 

▲ 해피 플라이트 스틸컷 ⓒ 프리비젼엔터테인먼트

 
업을 경시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예기치 못한 사태에 잔뜩 겁을 먹은 부조종사 스즈키와 온갖 실수로 잔뜩 주눅이 든 에츠코 또한 짧은 비행 동안 성장을 거듭한다. 이들의 성장엔 위기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베테랑 조종사와 어떠한 진상 앞에서도 자긍심과 친절을 잃지 않는 사무장의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일은 관제탑과 공항 관리 직원들, 또 정비팀에서도 이뤄지고, 각자의 직역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도록 한다. 즉, 영화는 그저 돈을 벌어 생활을 꾸리는 일을 넘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업으로서의 일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여러모로 <해피 플라이트>는 공익적인 작품이다. 공공의 발이 되는 비행기의 운항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음을 알게 함으로써, 영화를 본 뒤 비행기를 전과는 달리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영화를 보자면 각 직역에서의 전문성이며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되고, 노동자가 제 일에 그만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를 알게 된다. 숙련된 노동자가 자부심을 가지고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후배들이 자연스레 선배를 보고 감화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의 기본임을 알게 된다.

영화를 보고서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게 되는 건 필연적인 일이다. 얼마 전 소개한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에선 비정규직화 된 지하철 정비 노동자들이 일용직처럼 쓰여 제 전문성을 갖지 못하는 모습을 비췄다. 불황을 겪고 다시 호황을 맞이한 조선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떠난 숙련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뉴스 또한 심심찮게 나온다. 간호법조차 없어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간호사들이 격무에 시달리며 현장을 등진다는 이야기도 수도 없이 터져 나온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판 <해피 플라이트> 같은 작품을 보고 싶다. 전 국민이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에 대해 이처럼 건강한 자세를 내보이는 영화를 나는 얼마 본 적이 없다. 제가 하는 일이 사회와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그로부터 제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아는 건 자긍심을 키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각자도생이며 누칼협('누가 칼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로 조롱의 의미로 쓰임) 같은 말이 횡행하는 요즈음 한국에서, 제 자리를 지키며 업에 충실하려는 이들이 얼마나 간절한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