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경제회복의 최대 걸림돌은 신용불량자들?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항공기티켓 구매·모바일앱 결제 등 다양한 경제활동 차단
소비 침체기에 민간소비 제한해 경제회복 걸림돌로 등장
개인 파산신청 제도 마련되지 않아 신용불량자 양산 구조
중국에서 성장 둔화세로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면서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신용불량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돼 쓸 돈은 줄어든 반면 빚 부담은 오히려 늘어난 탓이다. 가뜩이나 소비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중국 경제 위기에 또 다른 ‘뇌관’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중국 전역의 각 지방법원에 따르면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성인(18~59세)은 모두 854만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규모는 전체 중국 노동자의 1%에 해당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570만명)보다 49.8%나 급증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대만중앙통신사(中央通訊社·CNA) 등이 지난 3일 보도했다.
중국의 금융권 블랙리스트에 오른 신용불량자는 비행기 티켓 구매와 즈푸바오(支付寶·Ali pay·웨이신즈푸(微信支付·Wechat Pay)와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결제 등 다양한 경제 활동이 차단된다. 854만명의 소비자들이 경제 활동을 일절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글로벌 통계 플랫폼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는 중국인은 9억 4300만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14억 2500만명)의 67% 규모다.
더군다나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도 정부 관련 기관에 종사할 수 없고, 고속철도와 유료 국도 등 교통 인프라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제한된다. 경제 주체로서 사망선고를 받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개인파산 관련 법이 미비해 금융권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회생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일상 생활뿐 아니라 재기할 수 있는 길마저 막힌 셈이다.
중국 남동부 장시(江西)성에서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장(張)모는 은행대출을 연체한 이후 웨이신즈푸의 사용이 금지됐다. 블랙리스트에 오는 그는 지방정부와 일을 할 수 없는 탓에 결국 폐업을 해야 했다. 장은 “현금도 없고 결제수단이었던 웨이신즈푸마저 차단되는 바람에 아들이 굶어 죽을뻔 했다”며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제한은 풀었지만 다른 제재는 그대로다. 제약이 많아 (빚을 갚을) 돈을 벌 수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에서 신용불량자가 크게 증가한 것은 소비자들의 과도한 대출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강력한 봉쇄정책과 이에 따른 경제 활동 위축으로 가계소득이 급감했으나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가계 빚은 급증한 까닭에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중국 정부 산하 싱크탱크 국가금융발전실험실(NIFD)에 따르면 9월 기준 중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64%에 이른다. 지난 10년 간 2배가량 확대됐다.
고용 사정이 급격하게 악화한 점 역시 대형 악재로 작용했다. 중국의 지난 10월 실업률은 5%였다. 그렇지만 청년 실업률(16~24세)은 6월 역대 최고치인 21.3%를 기록한 이후 발표가 잠정 중단한 상태다. 중국은 매주 한시간만 일을 해도 취업으로 간주하는 나라다. 귀향한 농민공(농촌출신 노동자)들도 실업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실제 실업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용카드 연체·압류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 자오상(招商)은행은 지난해 90일 이상 신용카드 대금을 연체한 사람이 전년보다 26% 증가했다고 밝혔다. 빚을 갚지 못해 집과 차 등 담보를 압류한 건수도 대폭 증가했다. 부동산컨설팅 업체 중국지수연구원(China Index Academy)은 올해 9월까지 중국에서 58만 4000건이 압류돼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 집중됐던 경기 침체 문제가 가계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9월 기준 중국 GDP에서 차지하는 가계부채 비율은 64%에 달해 10년 사이 2배 가까이 치솟았다. 경기 침체 여파가 가계로 옮겨 붙어 중국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9%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내수 경기가 둔화될 경우 중국 경제에 위기를 불러 올 수밖에 없다. 왕단 (王丹) 항셍(恒生)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신용불량자의 급증은 중국의 경기 침체 뿐만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에는 개인파산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증가하더라도 이에 대응하기 어려운 악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에 살고 있는 천(陳)모는 2019년부터 두차례에 걸쳐 현지 법원에 파산신청을 냈지만 모두 기각됐다.
무역업에 종사하며 한 달에 1만 위안(약 182만원) 정도를 벌던 그는 투자를 실패하는 바람에 빚이 190만 위안(약 3억 4000만원)으로 불어나자 파산신청을 했지만 광저우 법원은 중국에 개인파산 법규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천은 병으로 숨졌고 그의 빚은 가족이 떠안게 됐다.
천의 변호사 뤄(羅)모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많은 지방 당국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관계없이 파산 신청의 증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며 "이는 지방 당국의 비즈니스 환경 악화를 뜻하기 떄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전통적 믿음이 여전히 강해 설사 파산으로 법적 책임을 면해도 개인 채권자 등으로부터의 사적 괴롭힘을 피할 방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광저우에서 파일링 공사 기업을 운영하는 정(鄭)모도 부동산 위기 심화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는 "현재 가장 원하는 것은 내 회사가 파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파산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법원이 내 신청을 기각했다"며 "파산이 불가능해지면 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하소연했다.
중국은 시장경제로 진입한 이후 2007년 빚더미에 앉은 기업회생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파산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나, 개인을 위한 파산법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중국에서 현재 개인 파산을 신청할 수 있는 도시는 2021년 3월 이 제도를 시범 도입하고 있는 광둥성 선전(深圳)시가 유일하다.
그러나 선전시 당국도 빚 탕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향이 짙은 만큼 실제로 파산 승인을 받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차이나 뉴스위크에 따르면 2021년 3월부터 올해 6월 초까지 선전시 중급인민법원에는 1600여건의 개인파산 신청이 접수됐다. 하지만 이중 70% 이상이 자격요건 미달이나 필수 자료제출 미비로 기각됐다.
선전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신청을 막기 위해 3년 이상 선전시에 거주하며 세금을 낸 이들만이 개인파산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기업파산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류쥔하이(劉俊海) 중국 인민대 법학원 교수는 “신용불량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SCMP는 "법률 전문가들은 부채 수렁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선전시의 개인파산 제도가 중국 전체로 확대돼야 한다고 촉구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는 현재의 경기둔화 국면에서 개인이나 가족이 운영하는 수백만 소상공업에 중요하며 중국 당국이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과 창의력을 키우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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