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서 300m… 헤엄쳐 5명 살린 ‘그의 사투’ [아살세]
총 5명 구조한 이형태씨 “당연히 해야 할 일”
찜통더위가 이어지던 지난여름 강원도 곳곳의 바닷가에서 물놀이 사고 소식이 잇따랐습니다. 지난 8월 13일에는 유독 강원도 삼척과 동해 등지에서 물놀이를 하던 피서객만 4명이 사망했습니다.
바다의 높은 너울 때문이었습니다. 강원도 고성 바닷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곳은 군사 철책이 철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해변보다 찾아오는 피서객이 적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높은 너울만 빼면 바닷가는 한산하고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사고는 한순간 발생했습니다.
바다가 손쓸 새도 없이 일가족 4명을 집어삼켰습니다. 바다 저 멀리 파도에 떠밀려 가는 이들을 목격한 한 남성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이 남성마저 높은 파도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바다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주민 이형태(42)씨가 해변가 주변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씨는 바닷가에서 “사람이 떠내려가요”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위태롭게 고무 튜브에 매달려 있었고, 아이들 이모는 서서히 물에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파도에 떠밀려 해변가에서 200~300m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동해 앞바다에는 최고 1.5m의 높은 너울이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자칫 이씨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그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보니 곧바로 구조해야겠다는 마음밖에 안 들었다”고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구조 당시 상황을 기억했습니다.
이씨는 백사장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곧장 이 여성에게 달려간 이씨는 구명조끼를 빌려 입고 119에 신고를 부탁했습니다.
이씨는 “아이들 이모를 보니까 숨이 넘어가려는 상황인 것 같았다”며 “그분부터 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습니다.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든 그는 200m가량을 헤엄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이모에게 입혀줬습니다. 그리고 구조에 뛰어들었다가 표류한 남성과 아이들의 이모를 바다에서 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남은 구조 대상은 아이 엄마와 두 아이였습니다. 아이 엄마는 고무 튜브 두 개를 붙잡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 2개의 튜브에 아이들이 한 명씩 타고 있었습니다.
이씨는 파도를 뚫고 다시 300m 정도 되는 거리를 수영해 갔습니다. 그때가 이씨에게도 한계를 느꼈던 순간이라고 합니다. 이씨는 “가다가 숨이 차고 힘이 달렸다”며 “튜브에 매달려서 겨우 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고무 튜브만 잡아끌고 백사장으로 나오면 되는 상황. 하지만 여전히 파도는 성나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이씨는 당시 바다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습니다.
“육지에 가까워질수록 말리는 파도였어요. 앞에서 파도가 치면 사람이 감당을 못하는 파도거든요.”
그는 남자아이를, 아이 엄마는 여자아이를 이끌고 백사장을 향해 헤엄쳤습니다. 그때 앞서 언급한 ‘말리는 파도’가 그들을 강타했다고 합니다. 아이 엄마와 여자아이는 그대로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남자아이는 물속으로 튕겨져 나갔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씨는 급히 남자아이를 찾았습니다. 순간이었지만 길게만 느껴졌다고 합니다. 물속에서 가까스로 남자아이를 건져올린 그는 남자아이를 품에 안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영화 같았던 구조 작업이 무사히 마무리됐습니다.
이씨는 한동안 백사장에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긴장이 풀린 나머지 다리에는 경련이 왔고, 걸을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5명을 구할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그는 소박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서 기본적인 수영은 저희가 다 하죠.”
이씨는 인터뷰 내내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구조 당시 상황 설명을 끝내고 “이게 전부예요”라며 자신을 낮췄습니다.
이씨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5명을 구조한 공로를 인정받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주관하는 ‘2023 생명존중대상’ 일반 시민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그는 15일 열린 시상식에서 생명존중대상을 받았습니다.
“이게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이런 상까지 주시니까 되게 감사합니다. 제가 없었더라도 분명 다른 분이 들어가서 구조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쑥스럽고 민망합니다.”
박종혁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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