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도 9개월만에 퇴장…'용꿈'의 무덤이 된 보수당 대표

김준영 2023. 12.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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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중도 하차하면서 ‘임기 못 채우는 보수당 대표’ 흑역사가 또다시 반복됐다.

3·8 전당대회에서 당선한 김 전 대표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당의 안정과 총선 승리를 위해 이바지하고자 한다”며 전격 사퇴했다. 내년 4·10 총선 지휘는커녕 2년 임기의 절반도 수행하지 못한 9개월 만의 퇴장이었다.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 뉴스1


거대 양당 체제의 한 축인 보수당 대표는 보수 진영 정치인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말로가 좋지 않았다. 치열한 전당대회를 뚫으면 당의 의사 결정과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만큼 당 안팎의 정치적 표적이 돼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의 정서상 선거 패배 등 정치적 위기를 겪으면 대표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한나라당부터 역대 대표 16명…완주는 2명뿐


1997년 창당한 한나라당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임기를 모두 채운 대표를 찾기는 쉽지 않다. 26년간 16명의 역대 대표 중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2006년 7월~2008년 7월)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2012년 5월~2014년 5월) 두 명을 제외하곤 모두 중도 하차했다. 황 전 대표를 끝으로 불명예 퇴임 기록이 근 10년째 이어지는 셈이다.

대체로 사퇴 사유는 선거 패배였다. 2015년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28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가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016년 4월 20대 총선 참패 책임으로 사퇴한 게 대표적이다. 김 전 대표는 친박계와의 공천 갈등으로 ‘옥새 파동’까지 벌였는데, 총선 결과 122석에 그쳐 민주당(123석)에 한 석 차이로 1당 자리를 내주자 스스로 물러났다. 이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정치 가도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2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영도구 선거사무실 도착한 후 둘러본 후 영도대교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송봉근 기자


앞서 ‘친박계 좌장’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도 2002년 12월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당시 후보가 패하자 임기 8개월 만에 물러났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11년 4·2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임기 10개월 만에 퇴장했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임기 11개월 만에 직을 던졌다.

정국 악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우도 많았다.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물러난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총재직 폐지 후 최초의 단일 지도 체제 대표로 당선된 그는 9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2016년 8월 당선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그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임기 3개월 만에 사임했다. 이 밖에 이회창·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은 대선 출마 등의 이유로 스스로 자리를 내놨다.


尹 정부에서도 이준석·김기현 2연속 중도 하차


현 정부 들어서도 두 명의 국민의힘 대표가 중도 사퇴하며 기록을 이어갔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과거 사례와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1년 6월 당선한 이준석 전 대표는 임기 중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지난해 당 중앙윤리위에서 당원권 정지 중징계를 받으며 쫓겨났다. 김기현 전 대표도 공식 일정을 중단하고 잠행하던 중 페이스북을 통해 사의를 표하면서 ‘원하지 않은 사퇴’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지난 13일 사의 표명 당일 이 전 대표와 회동한 사실이 공개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2일 “선출된 대표 두 명이 등 떠밀려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것이 대표들이 별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같이 일하는 대통령이 별나서 그런 건지 되짚어 봐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왼쪽) 전 대표와 김기현 전 대표. 김상선 기자


김성수(정치외교학) 한양대 교수는 “정당 대표는 막강한 권한이 있기에 그에 따른 책임도 지는 것”이라며 “다만,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는 특별한 권력도 받지 못한 채 분란의 책임자로 지목됐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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