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도 166m 새 순양함급 만든다…바다 위는 '거함거포' 시대 [이철재의 밀담]

이철재 2023. 12. 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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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독일 볼가스트의 피네 조선소에서 독일 해군의 프리깃 F126의 강재 절단식이 열렸다. 강재를 자르는 것(steel cutting)은 선박 건조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F126은 네덜란드의 조선회사인 다멘이 주 계약자다. 볼가스트 이외 킬과 함부르크도 F126 건조를 맡는다. 볼가스트와 킬에서 만들어진 선체는 함부르크에서 최종 조립될 계획이다.

지난 5일 독일 볼가스트의 피네 조선소에셔 열린 F126 프리깃 강재 절단식. Damen


독일 언론은 F126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해군에서 가장 큰 배라고 표현한다. 2027년부터 취역하는 F126은 호위함이라고도 불리는 프리깃(1500~4000t)이란 분류와 어울리지 않는다. 길이 166m에 배수량 1만 1000t이니 구축함(4000~1만t)을 넘어 순양함(1만t 이상)이다.

미국의 주력 이지스 구축함인 알레이버크급 최신형인 Flight Ⅲ(155mㆍ9900t)보다 크다. 지금까지 독일 해군서 가장 큰 배는 바덴-뷔르템베르크급 프리깃 F125(150mㆍ7200t)이다.

독일 해군의 F126. Damen


F126은 신(新) 거함거포(巨艦巨砲) 시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거함거포 시대를 연 드레드노트

1906년 당시 세계 최강인 영국 해군은 HMS 드레드노트(161mㆍ1만 8000t)를 선보였다. 드레드노트함을 기준으로 전함은 비포(Before) 드레드노트와 애프터(After) 드레드노트로 나눈다.

영국 해군의 HMS 드레드노트. 위키피디아


드레드노트함은 올빅건(All-big-gun)이라고 5문의 2연장 12인치(305㎜) 구경 주포를 쏠 수 있다. 이 주포들은 전투함교의 명령에 따라 협차사격(목표가 서로 다른 포의 일제사격 탄착군 안에 들어가도록 쏘는 사격)을 수행했다.

이전의 전함은 주포 외 현측에 중구경 속사포를 주렁주렁 달았다. 그리고 각 포는 제각각 조준했다. 그러다 보니 명중률이 형편 없었다. 드레드노트함을 상대하려면 기존 전함 2척 이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드레드노트함은 21노트 고속으로 항해했고, 현측 최대 280㎜ 장갑을 둘렀고, 어뢰 공격을 견딜 수 있도록 선체를 방수구획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드레드노트함은 공격과 방어 모두 뛰어나 비포 드레드노트 전함을 한순간에 퇴물로 만들었다. 이후 강대국 사이에서 건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거대하고 강력한 전함들이 속속 나왔다. 가히 거함거포의 시대라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의 야마토함(263mㆍ6만 8000t)은 그 절정이었다.

그러나 항공모함이 해전의 주역이 되면서 거함거포의 전함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핵무기가 등장하자 전함의 쓸모는 더 적어졌다. 미사일과 잠수함은 전함을 멸종으로 몰아넣었다.

전함의 빈자리는 구축함이 채웠다. 구축함은 대잠전ㆍ대공전 담당, 항모 호위라는 역할을 맡으며 주력 수상함이 됐다.


항모만큼 덩치가 커진 구축함

그런데 최근 구축함이 점점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급(166mㆍ7600t)의 만재배수량(승조원 탑승, 식수ㆍ연료ㆍ무장 탑재)이 1만t 이상이다. 신형 이지스 구축함인 정조대왕급(170mㆍ8200t)의 만재배수량도 1만t을 훌쩍 넘는다.

해군의 정조대왕함. 방위사업청


미국의 최신형 구축함인 줌월트급(183mㆍ1만 4000t)과 중국의 방공 구축함인 055형 난창(南昌)급(180mㆍ1만 2000t)은 태국의 항공모함인 짜끄리 나루에벳(183mㆍ1만 1000t)과 엇비슷한 크기다.

이들 구축함만 본다면 일시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나올 구축함의 떡대도 만만찮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 방위성


미 해군이 이지스 순양함 타이콘데로가급(173mㆍ9600t)과 알레이버크급 초기형인 Flight IㆍⅡ를 대체하려고 개발 중인 DDG(X)는 1만 3500t이다. 일본이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ㆍ지상 배치형 이지스 시스템) 대신 건조하려는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ASEV)은 길이 210m에 배수량 2만t으로 지어진다. 영국의 83형(Type 83) 구축함은 길이 160~170m에 배수량 1만t 언저리가 될 전망이다.


더 빨리 보고, 더 많이 싣고, 더 멀리 가고

그렇다면 왜 구축함이 소형 항공모함만큼 커졌을까. 김진형 전 해군 1함대 사령관은 “고성능의 대잠ㆍ대공 센서를 운용하려면 구축함이 커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난창함. 바이두


해군의 정조대왕급 구축함이 세종대왕급 구축함보다 크기를 키운 이유 중 하나가 대잠수함 바우(함수) 소나다. 정조대왕급의 바우 소나는 신형 저주파 선체고정소니(HMS)인데 세종대왕급 바우 소나보다 더 크다. 그래서 HD현대중공업은 건조 도크의 바닥을 더 파고난 뒤 정조대왕급 1번함 정조대왕함을 건조했다.

중국의 055형 난창급은 저궤도 인공위성까지 추적할 수 있는 346B형 능동 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사거리 300㎞의 HHQ(海紅旗)-9B 함대공 미사일을 탑재하려고 톤수가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ASEV는 승조원이 오랫동안 작전하고, 해상에서의 흔들림을 줄이려고 대형화를 선택했다.

21세기 거함거포에서 거포는 미사일이다. 가급적 무장을, 특히 미사일을 많이 실을 수 있도록 구축함을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사일 캐리어(Missile Carrier)다. 대함 미사일 8발과 수직발사관(VSL) 128셀의 한국의 세종대왕급이 대표적이다. 군 관계자는 “미 해군은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재래식 스마트 미사일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DDG(X)는 가급적 다수의 미사일을 무장하도록 설계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미국 해군의 DDG(X). 위키피디아


장거리 작전 능력도 한 요소다. 독일의 F126은 태평양 등 먼바다까지 오래 항해할 수 있도록 만들다 보니 만재배수량 1만t을 넘게 됐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최근 함선의 대형화는 나라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다목적 함선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레이저를 쏘려면 큰 배가 필요

배가 커져도 승조원 수는 크게 늘지 않는다. 자동화 덕분이다. 독일의 F126의 경우 114명이고, 일본의 ASEV는 110명 안팎이다. 정조대왕급(200명)이 세종대왕급(300명)보다 크지만, 승조원은 적다.

미국 해군의 줌월트함. AP=연합


큰 구축함은 앞으로 레이저나 레일건 등 지향성 에너지 무기(DEW)가 나온다면 유리하다. DEW는 전기로 쏘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수적이다. 고출력 대용량 발전기는 대형함에 태울 수 있다.

크다고 쉽게 발각되는 건 아니다. 스텔스 설계 때문이다. 적외선(IR) 센서에 덜 걸리도록 배기열도 줄이는 게 최신 함선 설계 경향이다. 미국의 줌월트급 구축함은 최신 스텔스 설계로 레이더 탐지가 어렵고, 소음도 적어 잠수함이 소나로 찾기 힘들다. 김진형 전 사령관은 “일부 스텔스가 적용된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4400t)은 레이더에서 울산급 호위함(2200t)보다 적게 나온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미래 해전은 큰 배끼리 벌이지 않을 전망이다. 무인함(USV)과 무인잠수함(UUV)이 나오면서 판세가 달라졌다. 한쪽에선 배를 키우고, 다른 한쪽에선 배를 작게 만드는 상황이다. 소형화 추세는 다음 밀담에서 다루겠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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