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나를 유목하는 예술가로 만들었다"
[이안수 기자]
▲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의 한 호스텔에서 만난 예술가, Oliver Martinez |
ⓒ 이안수 |
나는 그동안 '바하 디바이드(Baja Divide)'라는 트레일에 매혹되어 있었다. 미국-멕시코 국경 근처의 테카테(Tecate)에서 시작하여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남쪽 끝의 산호세 델 카보(San Jose del Cabo)까지 종단하는 오프로드 자전거 트레일이다. 산과 사막, 해안지대까지 다양한 지형을 통과하는 약 2700킬로미터(1700마일)를 관통하는 도전적인 사이클린 경험을 가질 수 있는 루트이다.
그동안 자전거 여행자와 조우하면 그가 바하 디바이드를 달리는 사이클리스트인지가 궁금했다. 나는 당연히 그 더벅머리 남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바하 디바이드 트레일을 종주하고 있나?"
"아니다. 나는 노마드 예술가이다. 지금은 12월 15일 '라파스 미술관(La Paz Art Museum)에서의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 창문전'을 앞두고 이 반도 남쪽의 풍경과 소리를 여행중이다."
나는 스스로를 노마드예술가로 정의하는 올리버 마르티네스(Oliver Martinez, 40세)라는 그 남자가 궁금해졌다.
해변의 일부가 돼 작품을 만드는 사람
"전시준비는 모두 마쳤다. 나는 이번 전시를 위해 이 반도의 남쪽 토도스 산토스(Todos Santos)해변의 캠핑트레일러를 나의 작업실로 삼고 작년부터 이번 여행을 떠나오기 전까지 작업을 해왔다. 그곳 해변의 일부가 되어 바다와 해변의 질감과 소리와 색을 그림과 조각, 대지의 설치로 진행해왔다. 미술관에 작품을 넘기고 20여 일간 자전거와 버스로 이곳의 풍경과 소리를 쫓고 있다. 그 느낌을 내 스케치북 혹은 대지에 남기고 있다. 나는 내일 아침 8시, 라 파스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
▲ 토도스 산토스 해변의 그의 임시작업실 |
ⓒ Oliver Martinez |
▲ Oliver Martinez의 임시 작업실 내부 |
ⓒ Oliver Martinez |
"내 창조의 뿌리는 자연이다. 내가 이동하면서 작업하는 이유는 그 뿌리의 가닥을 찾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완성된 내 작업은 다시 그 자연 속에 남겨진 한 인간의 존재 흔적이 된다. 자연과 나는 무한 도형이 되는 셈이다."
-움직임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죽음 같다.
"그렇다. 길을 달리다 보면 혹은 낯선 곳에 도착하고 보면 내 여행의 일부였던 마법과 감성으로 가득 찬 순간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또한 그곳에서의 우정은 또다시 내 추억 속 대가족에 추가된다. 그것은 다시 어느 순간 꿈이었던 것처럼 내게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할 것이다. 여행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유목 예술가로 만든다. 내가 다시 여행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문득 의식의 창문 너머로 나를 환영하는 새로운 지평선이 펼쳐지면 나는 배낭에 자유, 열정, 젊음, 평화를 꾸린다.
-당신은 건축을 전공했다고 했다. 현재는 회화와 조각에 전념하고 있다. 그럼 건축과는 고별한 것인가?
"아니다. 나의 가장 기본 정체성에는 여전히 건축가이다."
- 건축가들중에도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과 결을 같이하는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그런데 조각과 회화에 전념하는 경우는 드문 경우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건축가라 하는 것을 보면 당신의 입체와 평면작업이 건축적 베이스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인가?
"건축계에서 몇 년간 일을 하다가 내 감정을 더 충실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건축을 넘어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 시나리오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로 회화를 택했다. 그 작업을 하면서 내 머릿속에 일어나는 생각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열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씩 조각으로 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내 전공이 건축이었기 때문에 건축적 공간개념이 내가 조각을 하는 데 통로가 되었다."
▲ Oliver Martinez의 조각작업 |
ⓒ Oliver Martinez |
▲ Oliver Martinez 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작업하기를 원한다. |
ⓒ Oliver Martinez |
- 건축과 그림, 조각으로 가는 벽을 어떻게 쉽게 넘을 수 있었나?
"나는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건축을 전공하기 전에 내 인생의 베이스는 글쓰기와 그림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것을 통합한 것이 현재의 평면과 입체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것이 어떤 매체이든 간에 그것을 통해 매일 내 삶과 내가 알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런 표현 매체를 넘나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내게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항해처럼... 배는 끊임없이 장소를 바꾸지 않는가. 항해해서 나를 다른 장소에 가져다 놓으면 그곳에서 마치 그곳 사람이었던 것 처럼된다. 어릴 때부터 내 안에 원동력을 발견할 때마다 앞으로 더 나아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원동력이 생겨나면 그 순간 나를 더 멀리 데려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마치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은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발견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나 자신에게 잠재된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소, 혹은 영역으로의 항해를 즐긴다."
- 그것을 '노매드 예술가'로 표현한 것인가?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 여느 사람들은 여전히 장르 바꾸기를 어려워한다. 그것은 장르를 바꿀 때 부딪히는 테크니컬 한 것에 너무 주목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과 도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또한 하다 보면 도구는 제어방법과 정밀도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또한 상통하는 점이 있다. 나는 5개월 전에 직물 분야의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새로운 언어를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이다. 이미 나는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여러 언어가 있기 때문에 그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 Oliver Martinez의 직조작업 |
ⓒ Oliver Martinez |
▲ 바닷가의 임시적업실에서 작업중인 Oliver Martinez |
ⓒ Oliver Martinez |
- 왜 건축계를 떠났나?
"졸업 후 6년간 건축 사무실에서 설계 작업을 했다. 건축의 기술적인 부분과 회화의 표현적인 부분에 함께 의문이 생겼을 때 나는 건축계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회화 작업을 해온 것은 병행한 시간을 종합하면 25년간이다."
- 건축계를 떠난 후 바로 유목민이 되었나?
"아니다. 건축을 그만두자마자 멕시코시티로 가서 5년 동안 그곳에 정착해서 회화 작업을 했다. 집에 가구까지 갖추어두고 살았다. 그 이후에는 과나후아토 주 산 미겔 데 아옌데(San Miguel de Allende)로 갔다. 그곳에서도 작업실을 두고 3년 동안 정주했다. 물론 집도 있었다. 요약하면 모든 것이 평범했다. 하지만 팬데믹이 덮쳤고 나는 작업실에 갇힌 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숨어있는 대신 배낭을 꾸렸다. 그렇게 2020년부터 유목민이 되었다. 첫해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세 도시에서 살았고 다시 여러 도시를 거처 이곳 바하 칼리포르니아 수르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완벽한 유목민이 될 수 있는 곳임을 알아버렸다. 사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지금'이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이제는 여행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여행자가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가 오히려 나를 정체에서 구출한 셈이 되었다."
▲ 12월 15일 전시개막을 앞두고 전시장에서 설치작업에 열중인 Oliver Martinez |
ⓒ Oliver Martinez |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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