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행복한 디바, 스스로 증명한 퀸…그는 ‘엄정화’
서울 공연 이어 연말 대구·부산서 열려
“여러분 즐거우세요? 저는 진짜 너무 행복해요. 오늘 여기서 내려가고 싶지 않아요.”
비로소 완전하게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는 “꿈을 이뤘다”고 표현했다. 이따금 뭉클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위태롭게 울먹이던 공연 초반의 모습은 이내 사라졌다. 잃었던 목소리를 되찾고, 무려 24년 만의 단독 콘서트 무대에 선 가수 엄정화 이야기다.
엄정화가 콘서트 계획을 처음 공개한 건 지난 10월 중순쯤이었다. 후배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에 출연해 영화 ‘화사한 그녀’ 관련 이야기를 나누던 중 넌지시 던져진 ‘가수는 안 하냐’는 물음에 근심 가득한 얼굴로 털어놨다. “시경아, 나 콘서트 해.” 예전 같지 않은 목 상태 때문에 걱정이 컸지만 그는 도전했다. 기어코 “해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엄정화는 해냈다. 지난 9~10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자신의 히트곡과 동명인 ‘초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무려 150분 동안 20곡가량을 선보였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곡이 히트곡이었다. 30년 전 발표한 데뷔곡 ‘눈동자’를 시작으로 ‘몰라’ ‘배반의 장미’ ‘컴투미(Come 2 Me)’ ‘포이즌’ ‘크로스’ ‘디스코’ 등이 관객 떼창과 함께 이어졌다.
댄스곡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늘만 허락한 사랑’ ‘겨울부터 겨울까지’ 등 발라드도 훌륭히 소화했다. 눈을 감은 채 손짓으로 음정을 맞춰가며 한 음 한 음을 정성스럽게 불러냈다. 음이탈 한번 나지 않은 건 엄정화가 이 무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 지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정화 본인조차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이었을 테다.
엄정화는 2008년 ‘디스코’ 활동 이후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이후 한쪽 성대가 마비돼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다신 노래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엄정화는 “말을 하게 되고 나서 노래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힘든 시간들을 지나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콘서트를 하게 된 지금, 그때 포기하지 않았던 내게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다.
돌아보면 엄정화는 늘 도전하고 이뤄냈다.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남들이 안 될 것이라 여겼던 일들을 매번 해내고야 말았다. ‘여자 나이 서른이면 끝’이라는 식의 전근대적 인식이 팽배했던 시절에도 그는 보란 듯 더 과감하게 진취적으로 나아갔다. 가수와 배우로 모두 정상에 섰고 여전히 현역으로 건재한 그의 성취는 유일무이하다. 한국 연예계에서 엄정화라는 상징은 강력하다. 이제는 누구도 엄정화에게 ‘여자 나이’ 따위를 운운하지 않는다.
많은 선후배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엄정화 콘서트 소식에 지누션이 한달음에 달려와 ‘말해줘’를 함께 불렀고 김완선 이효리 산다라박 현아 화사 등은 게스트 무대를 꾸몄다. ‘컴투미’를 작곡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을 비롯해 배우 김혜수 송혜교 박소담, 가수 백지영 수영 조권 효민, 방송인 최화정, 모델 이소라 등이 객석에서 응원을 보냈다.
따뜻한 그의 심성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이효리는 “엄마 아빠보다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주는 사람”이라며 “엄정화는 여왕이고 퀸이며 그 자체가 빛이자 사랑”이라고 전했다. 엄정화 특유의 다정함은 관객을 향한 멘트에서도 묻어났다. ‘페스티벌’을 부를 때 그는 “축복을 드릴게요. 항상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페스티벌 같은 매일을 보내세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2023년은 엄정화에게 잊지 못할 해다. 그는 “올해 드라마 ‘닥터 차정숙’(JTBC)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영화 ‘화사한 그녀’도 개봉했고 예능 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tvN)을 하면서 어린 친구들에게 제 예전 노래들을 들려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며 “유랑단 활동을 계기로 이 콘서트도 열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제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 순간을 만날 수 있었던 데 대해 저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싶은 오늘입니다. (가끔은) 인생이 끝날 거 같지만, 이게 끝인가 싶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어려운 시간을 잘 견디고 지나면 ‘그 시간도 필요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간절히 원하는 만큼 그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하고 있어요.”
천생 연예인인 엄정화는 “저의 초대에 응해주신, 객석을 꽉 메워주신 관객 여러분 감사하다. 너무나도 꿈같은 시간이었다”면서 “초인적인 힘이 난다. 역시 응원과 사랑을 받으면 못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저를 바라봐주셔서 너무 행복하다”며 미소지었다. 반갑게도 연말 내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오는 23일 대구 엑스코, 31일 부산 벡스코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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