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개의 화분, 올해의 식물상은 이 꽃입니다
'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 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유영숙 기자]
반려동물 대신 반려식물을 키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키우기 시작했으니 벌써 23년이 넘었다. 이사한 집은 베란다가 길고, 오전에 햇빛이 잘 들어와서 식물 키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환경이 좋다 보니 식물도 잘 자랐다. 사실 '반려식물'이란 용어도 최근에 나온 걸로 알지만, 나는 그냥 '식물도 우리 식구다' 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키워 왔다.
처음에는 산세베리아 몇 개와 행운목, 꽃기린 등 화분이 많지 않았다. 살다 보니 화분을 하나둘 구입하게 되어 화분이 많아졌다. 중간에 죽은 화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래 키운 식물이다. 산세베리아는 어느 해 추운 겨울에 얼어서 죽었고, 행운목도 이상하게 싱싱하게 자라지 않았다. 아까웠지만 보내주었다.
▲ 우리 집 베란다 화분 동양란과 군자란, 알로카시아 등 베란다 두 곳에 식물이 가득하다. |
ⓒ 유영숙 |
기쁨상 : 봄에도 겨울에도 나를 위로한 군자란
모두 귀하고 사랑스러운 화분이지만, 올해 유독 나를 기쁘게 해 준 식물이 있다. 이름도 멋진 군자란이다. 지난 2월 말에 86세인 친정엄마가 천식으로 입원하셨다가 기관지 내시경을 받으시다 심정지로 돌아가셨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이별이라는 큰 슬픔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시기가 지나고 3월이 되었지만, 아직 내 마음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겨울처럼 칙칙하고 흐릿한 하늘이었다. 벚꽃이 거리를 덮을 때쯤엔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 올봄에 핀 군자란꽃 3월 중순에 꽃대가 올라와서 화려하게 핀 군자란꽃이 베란다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
ⓒ 유영숙 |
환하게 베란다를 밝혀준 군자란꽃이 마치 친정엄마가 찾아온 듯 반가웠다. 활짝 핀 군자란꽃이 몇 주 동안은 우리 집에 행복을 안겨주었다. 군자란이 꽃을 피워 꽃나팔을 불면서, 내게 "이제 어두운 마음 내려놓고 봄을 느끼세요"라고 위로하는 듯하였다.
그런데 이 군자란은 신기하게도 올겨울 11월 다시 꽃이 피었다. 아마 더웠다 추었다 하는 요란스러운 날씨에 봄이 온 줄 알고 핀 것 같다. 남편과 내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조금 호전되었던 시기였다. 군자란은 봄에도 나를 위로해 주더니 초겨울에도 찾아와 기쁨을 주었다(관련 기사: 4개월 빨리 핀 꽃, 식물도 날씨가 헷갈리나 봅니다 https://omn.kr/26joo ).
▲ 11월에 핀 군자란꽃 3월에 피는 군자란이 올해는 11월에 또 한 번 피어 기쁨을 주었다. |
ⓒ 유영숙 |
희망상 : 죽은 줄 알았던 알로카시아
▲ 봄에 잘 자라던 알로카시아 잎 모양이 하트모양이라 쌍둥이 손자가 좋아한다. |
ⓒ 유영숙 |
잘 자라던 알로카시아가 올여름, 잎에 갈색 반점이 생기며 시들기 시작했다. 가만히 놔두면 다른 화분까지 병이 옮을 것 같아서 밑동을 싹둑 잘라주었다. 아예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뿌리에서 새로운 싹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햇빛을 피해 그늘진 옆 베란다로 옮기고 가끔 물을 주었다. 신기하게 가을에 새순이 올라왔다. 죽었을까 걱정했는데 새순이 나오는 것을 보며 제자리로 화분을 옮겼다. 정성을 다해 돌봐주었다. 줄기를 잘라준 다른 화분에서도 새순이 나와서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알로카시아 화분이 안 보이자 울먹이던 쌍둥이 손자. 손자는 새순이 나온 알로카시오 화분을 보자 "할머니, 알로카시아가 다시 왔어요"라면서 행복해했다.
▲ 다시 살아나서 희망을 준 알로카시아 죽을 것 같던 알로카시아가 새 순이 나서 다시 살아났다. |
ⓒ 유영숙 |
끈기상 : 별처럼 다시 꽃 피워낼 호야
▲ 별모양 호야꽃 마치 조화같이 예쁘게 핀 호야꽃 |
ⓒ 유영숙 |
그러던 호야가 올 해엔 조금씩 시들어 줄기와 잎이 몇 개 안 남았다. 햇볕을 쬐어주고 통풍을 해주면 살아날 것 같아서 베란다 문 쪽에 두었다. 하지만 이전의 모습은 살아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식 수술이 필요할 것 같았다. 조금 큰 다른 호야 화분에서 가지를 두 개 잘라서 물에 담가두었다.
▲ 물꽂이 한 호야 화분 호야 화분이 많이 시들어서 물꽂이 한 것을 다시 옮겨 심었다. |
ⓒ 유영숙 |
옮겨 심은 호야 화분은 가을 햇빛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잘 자랐다. 12월 초인데 꽃이 피었던 그 시절처럼 싱싱하게 자랐다. 세 번째 우수상은 올 한 해 죽다 살아난 호야. 호야에게 '끈기상'을 수여한다. 내년에는 예전처럼 자신만의 별꽃을 피워 주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 여름과 가을 지나며 싱싱하게 자란 호야 죽을 것만 같았던 호야가 물꽂이 후 잘 자라서 멋진 모습이 되었다. 12월 7일 모습이다. |
ⓒ 유영숙 |
반려식물도 키우다 보면 반려동물 못지않게 행복을 준다. 때론 힘들 때 위로해 주고, 외로울 땐 친구도 되어준다. 반려식물도 자식 키우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한다. 바쁘다 보면 바로 누런 잎도 생기고 아픈 아이도 생긴다. 아침마다 베란다에 나가서 아침 인사하고, 퇴근하면 하루 종일 잘 있었는지 안부를 묻는다. 우리 집 반려식물은 그 자체로 사랑이고 행복이다.
누구나 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상을 주는 나도 기쁘다. 상에서 밀리긴 했지만, 동양란도 키다리 개운죽도, 천양금도 사실은 모두 귀하다. 내년에는 그들에게도 멋진 상을 주리라 다짐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지나온 한 해를 마무리하며 1년 동안 고마웠던 분이나, 고마웠던 것(일)에게 멋진 상을 수여하고 행복하게 한 해를 마무리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2024년 새해는 또다시 밝은 태양이 두둥실 떠올라, 더 희망찬 한 해가 되리라 믿는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후붕괴 남은 시간 많아야 7년, 또 기회 날렸다
- "피 묻은 음식을 누가 먹고 싶겠어요?"
- 이스라엘군, 자국인 인질 오인 사살해... "비극적 실수"
-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
- '서울의 봄' 고등학생들 묵직한 소감, 단체관람 필요한 이유
- 최초의 동서식품 커피는 왜 '백해무익'하다는 소릴 들었나
- 손때 묻은 필카 들고 벌교 여행, 온통 갈색빛이네요
- 주말 한파에 정전·나무 쓰러짐 등 피해 속출…대설특보 확산
- 거리에 선 시인들, 기후 위기 심각성을 고발하다
- "거부권 남발, 군사독재정권이냐"... 한파 뚫은 '윤석열 거부' 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