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개의 화분, 올해의 식물상은 이 꽃입니다

유영숙 2023. 12. 1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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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해의 ○○] 지난 1년 나를 위로하고 기쁨을 준 반려식물들

'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 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유영숙 기자]

반려동물 대신 반려식물을 키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키우기 시작했으니 벌써 23년이 넘었다. 이사한 집은 베란다가 길고, 오전에 햇빛이 잘 들어와서 식물 키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환경이 좋다 보니 식물도 잘 자랐다. 사실 '반려식물'이란 용어도 최근에 나온 걸로 알지만, 나는 그냥 '식물도 우리 식구다' 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키워 왔다.

처음에는 산세베리아 몇 개와 행운목, 꽃기린 등 화분이 많지 않았다. 살다 보니 화분을 하나둘 구입하게 되어 화분이 많아졌다. 중간에 죽은 화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래 키운 식물이다. 산세베리아는 어느 해 추운 겨울에 얼어서 죽었고, 행운목도 이상하게 싱싱하게 자라지 않았다. 아까웠지만 보내주었다.

그러다가 2011년 9월부터 동양란을 키우게 되면서 화분을 조금 정리하였다. 지금은 동양란 화분 40여 개와 군자란, 알로카시아, 개운죽, 호야, 천냥금, 벤자민, 호주 삼나무인 아라우카리아 등을 키우고 있다. 그래도 양쪽 베란다에 화분이 가득하다.
▲ 우리 집 베란다 화분 동양란과 군자란, 알로카시아 등 베란다 두 곳에 식물이 가득하다.
ⓒ 유영숙
매년 연말이 되면 방송에서 여러 가지 시상식을 한다. 가요대상, 연예대상, 연기대상 등에서 수상자, 특히 대상 수상자가 궁금하다. 다사다난했던 2023년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식물에게 올해의 식물상을 주려고 한다. 우리 집 반려식물 중 으뜸은 어느 것일까.

기쁨상 : 봄에도 겨울에도 나를 위로한 군자란

모두 귀하고 사랑스러운 화분이지만, 올해 유독 나를 기쁘게 해 준 식물이 있다. 이름도 멋진 군자란이다. 지난 2월 말에 86세인 친정엄마가 천식으로 입원하셨다가 기관지 내시경을 받으시다 심정지로 돌아가셨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이별이라는 큰 슬픔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시기가 지나고 3월이 되었지만, 아직 내 마음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겨울처럼 칙칙하고 흐릿한 하늘이었다. 벚꽃이 거리를 덮을 때쯤엔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 3월 중순에 베란다 군자란 화분에서 꽃대가 쑤욱 올라왔다.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주말에 한두 개가 나팔처럼 꽃망울을 터트리더니 어느 날 화분 세 개에서 군자란이 활짝 피었다. 모두 다섯 개의 꽃대에서 꽃이 피니 베란다가 봄을 맞아 화사하다. 꽃 색깔도 주황이라 초록 잎과 대비되어 화려함의 극치였다. 마치 등불을 밝힌 듯 베란다가 환해졌다.
 
▲ 올봄에 핀 군자란꽃 3월 중순에 꽃대가 올라와서 화려하게 핀 군자란꽃이 베란다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 유영숙
   
환하게 베란다를 밝혀준 군자란꽃이 마치 친정엄마가 찾아온 듯 반가웠다. 활짝 핀 군자란꽃이 몇 주 동안은 우리 집에 행복을 안겨주었다. 군자란이 꽃을 피워 꽃나팔을 불면서, 내게 "이제 어두운 마음 내려놓고 봄을 느끼세요"라고 위로하는 듯하였다.

그런데 이 군자란은 신기하게도 올겨울 11월 다시 꽃이 피었다. 아마 더웠다 추었다 하는 요란스러운 날씨에 봄이 온 줄 알고 핀 것 같다. 남편과 내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조금 호전되었던 시기였다. 군자란은 봄에도 나를 위로해 주더니 초겨울에도 찾아와 기쁨을 주었다(관련 기사: 4개월 빨리 핀 꽃, 식물도 날씨가 헷갈리나 봅니다 https://omn.kr/26joo ).

우리 가족에게, 특히 마음이 힘들었던 나를 위로해 준 군자란에게 올해의 대상을 수여하노라. 꽃말처럼 고귀한 그대에게 '기쁨상'을 수여한다.
  
▲ 11월에 핀 군자란꽃 3월에 피는 군자란이 올해는 11월에 또 한 번 피어 기쁨을 주었다.
ⓒ 유영숙
 
희망상 : 죽은 줄 알았던 알로카시아
두 번째 수상자는 알로카시아다. 알로카시아가 우리 집에 온 지는 2년 정도 된다. 처음에 올 때는 작은 모종으로 왔는데 쑥쑥 자라서 큰 화초로 자랐다. 알로카시아는 쌍둥이 손자 중 둘째가 좋아하는 화분이다. 좋아하는 이유는 잎이 하트 모양이기 때문이다.
 
▲ 봄에 잘 자라던 알로카시아 잎 모양이 하트모양이라 쌍둥이 손자가 좋아한다.
ⓒ 유영숙
   
잘 자라던 알로카시아가 올여름, 잎에 갈색 반점이 생기며 시들기 시작했다. 가만히 놔두면 다른 화분까지 병이 옮을 것 같아서 밑동을 싹둑 잘라주었다. 아예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뿌리에서 새로운 싹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햇빛을 피해 그늘진 옆 베란다로 옮기고 가끔 물을 주었다. 신기하게 가을에 새순이 올라왔다. 죽었을까 걱정했는데 새순이 나오는 것을 보며 제자리로 화분을 옮겼다. 정성을 다해 돌봐주었다. 줄기를 잘라준 다른 화분에서도 새순이 나와서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알로카시아 화분이 안 보이자 울먹이던 쌍둥이 손자. 손자는 새순이 나온 알로카시오 화분을 보자 "할머니, 알로카시아가 다시 왔어요"라면서 행복해했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식물이 새 삶을 살게 되었다. 다시 태어난 삶은 더 튼튼하게 오래 살길 기원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대에게 '희망상'을 수여한다.
  
▲ 다시 살아나서 희망을 준 알로카시아 죽을 것 같던 알로카시아가 새 순이 나서 다시 살아났다.
ⓒ 유영숙
 
끈기상 : 별처럼 다시 꽃 피워낼 호야
세 번째 수상자는 호야다. 몇 년 전에 호야꽃이 피었다. 꽃이 별 모양이라 별처럼 빛났다. 마치 가짜 꽃(조화) 같았다. 보는 사람마다 진짜 꽃이 맞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꽃도 오래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 별모양 호야꽃 마치 조화같이 예쁘게 핀 호야꽃
ⓒ 유영숙
   
그러던 호야가 올 해엔 조금씩 시들어 줄기와 잎이 몇 개 안 남았다. 햇볕을 쬐어주고 통풍을 해주면 살아날 것 같아서 베란다 문 쪽에 두었다. 하지만 이전의 모습은 살아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식 수술이 필요할 것 같았다. 조금 큰 다른 호야 화분에서 가지를 두 개 잘라서 물에 담가두었다.
시간이 지나자 줄기에서 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두 달 정도 두었다가 뿌리가 길게 나와서 호야 화분에 심어주었다. 잘 살아서 무럭무럭 자라길 기도했다. 신이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이식 수술은 성공이었다.
 
▲ 물꽂이 한 호야 화분 호야 화분이 많이 시들어서 물꽂이 한 것을 다시 옮겨 심었다.
ⓒ 유영숙
   
옮겨 심은 호야 화분은 가을 햇빛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잘 자랐다. 12월 초인데 꽃이 피었던 그 시절처럼 싱싱하게 자랐다. 세 번째 우수상은 올 한 해 죽다 살아난 호야. 호야에게 '끈기상'을 수여한다. 내년에는 예전처럼 자신만의 별꽃을 피워 주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 여름과 가을 지나며 싱싱하게 자란 호야 죽을 것만 같았던 호야가 물꽂이 후 잘 자라서 멋진 모습이 되었다. 12월 7일 모습이다.
ⓒ 유영숙
   
반려식물도 키우다 보면 반려동물 못지않게 행복을 준다. 때론 힘들 때 위로해 주고, 외로울 땐 친구도 되어준다. 반려식물도 자식 키우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한다. 바쁘다 보면 바로 누런 잎도 생기고 아픈 아이도 생긴다. 아침마다 베란다에 나가서 아침 인사하고, 퇴근하면 하루 종일 잘 있었는지 안부를 묻는다. 우리 집 반려식물은 그 자체로 사랑이고 행복이다.

누구나 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상을 주는 나도 기쁘다. 상에서 밀리긴 했지만, 동양란도 키다리 개운죽도, 천양금도 사실은 모두 귀하다. 내년에는 그들에게도 멋진 상을 주리라 다짐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지나온 한 해를 마무리하며 1년 동안 고마웠던 분이나, 고마웠던 것(일)에게 멋진 상을 수여하고 행복하게 한 해를 마무리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2024년 새해는 또다시 밝은 태양이 두둥실 떠올라, 더 희망찬 한 해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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