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리+박지원, 쇼트트랙 월드컵 1500m 동반 금메달…혼성계주 실격하고도 '행운의 동메달' (종합)
(엑스포츠뉴스 목동, 유준상 기자)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에이스로 떠오른 김길리(성남시청)와 '지난 시즌 세계랭킹 1위' 박지원(서울시청)이 안방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란히 여자 1500m와 남자 15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길리는 16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23-202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1500m 1차 레이스 결승에 출전, 2분35초785의 기록으로 7명의 선수 중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에 통과했다. 함께 경기를 펼친 서휘민(고려대)과 박지윤(의정부시청)은 각각 4위와 5위로 레이스를 마감했다.
예선에서 2분36초749로 1위를 차지한 김길리는 준결승에서도 2분40초868로 조 1위에 오르며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그 흐름을 결승에서 그대로 이어가면서 2차 대회(1차 레이스), 3차 대회에 이어 세 대회 연속 1500m 정상에 등극했다.
레이스 초반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김길리는 천천히 움직였고, 11바퀴가 남은 시점에서 선수들이 조금씩 속도를 끌어올렸다. 박지윤과 서휘민이 치고 나왔고, 후미에 있던 김길리가 아웃코스를 활용해 단숨에 선두로 올라섰다.
2위권 선수들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서도 김길리는 선두를 내줄 생각이 없었고, 다른 선수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인코스, 아웃코스 모두 내주지 않으면서 그대로 경기를 마쳤다. 1위를 확정한 김길리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기쁨을 만끽했다.
경기 이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만난 김길리는 "메달을 딸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고 다행이다. 응원을 와주신 분들도 많고, 그분들을 위해 금메달을 목표로 경기를 펼쳤다"며 "(같은 소속팀의) 최민정 언니를 많이 만나진 못하지만, 항상 응원해주고 계셔서 고맙다"고 밝혔다.
시즌 세계랭킹 1위에게 주어지는 '크리스털 트로피'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김길리는 현재 세계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김길리는 "욕심이 나는 것 같은데, 계속 1위를 지킬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하겠다"며 "아직 에이스가 되기엔 한참 먼 것 같은데, 더 열심히 해서 에이스다운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뒤이어 열린 남자 1500m 1차 레이스 결승에서는 지난 시즌 이 종목 세계챔피언 박지원이 2분16초32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품었다. 함께 결승에 나선 장성우(고려대)는 6위(2분16초942)로 레이스를 마쳤다.
준결승 조 1위로 예열을 마친 박지원은 결승에서도 상승세를 유지했다. 레이스 중반 장성우와 선두권을 형성하더니 4바퀴 반을 남기고 선두로 자리잡았다. 윌리엄 단지누(2분16초482), 펠릭스 러셀(2분16초553·이상 캐나다)의 맹추격에도 1위로 경기를 끝냈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두 팔을 번쩍 들며 포효했다.
밝은 표정으로 믹스트존에 들어선 박지원은 "(서울에서 진행된) 지난 3월 세계선수권대회 때도 1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그 힘을 잃지 않고 싶어서 더 열심히 탔던 것 같다. 근데 그 결과가 같아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세리머니를 선보인 박지원은 "좀 오래 참았던 것 같다. 사실 지난 시즌에 비해 비교가 되는 성적일 수도 있고, 자신에게 좀 아쉬움이 있었다. 혼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많은 고민 끝에 첫 번째로 들어오게 돼 흥분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박지원은 이날 금메달로 남자 세계랭킹 1위 탈환에 성공하면서 2년 연속 크리스털 글로브를 정조준할 수 있게 됐다. 그는 "1위에 올라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이번 시즌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됐고, 사실 아직까진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은 대회가 있는 만큼 방심하지 않고 마지막 6차 대회까지 달려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지원과 함께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끄는 황대헌(강원도청)은 남자 1000m 결승에 출전, 1분27초113의 기록으로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올 시즌 남자 1000m에서 메달을 획득한 건 2차 대회(은메달)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황대헌은 준결승에서 옌스 판트바우트(네덜란드), 피에트로 시겔(이탈리아) 등 쟁쟁한 선수들의 견제를 따돌리고 조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결승에서도 자신의 경기력을 맘껏 뽐냈다.
경기 초반 4위를 유지하던 황대헌은 상위권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3바퀴를 남겨두고 속도를 끌어올렸다. 한 바퀴 반을 남기고 아웃코스 추월을 시도했고, 순식간에 중위권 선수들을 따돌리더니 날을 들이내밀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무려 네 명의 선수에 대한 사진 판독이 필요할 정도로 마지막까지 치열한 레이스였다.
판독 결과 선두로 달리던 스티븐 뒤부아가 0.014초 차로 황대헌보다 먼저 결승선에 도달했다. 마지막에 충돌이 일어나긴 했지만, 뒤부아와 황대헌 모두 페널티 판정을 받지 않으면서 그대로 뒤부아와 황대헌이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여자 1000m에는 한국 선수 모두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이소연(스포츠토토), 심석희(서울시청)는 준결승 무대조차 밟지 못했고, 유일하게 준결승 무대를 밟은 박지원(전북도청)은 4위에 그쳤다.
대표팀은 계주 종목에서 기대만큼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최정예 멤버' 김길리-심석희-박지원-황대헌으로 구성된 한국은 혼성계주 2000m 결승에서 실격 판정을 받고도 미국과 함께 공동 3위로 동메달을 수상했다.
경기 내내 기대 이상의 레이스를 펼친 한국은 마지막 코너를 돌던 박지원과 옌스 판트파우트(네덜란드)의 충돌로 아찔한 상황을 맞이했다. 두 선수는 펜스와 부딪히며 그대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후 해당 상황을 여러 차례 살핀 심판진은 재경기를 선언했지만, 한국 선수들은 모습을 감췄다. 심판진이 한국을 제외하고 나머지 3개국만 재경기에 참가하는 것으로 판정을 내렸다. 판트파우트의 인코스 추월 과정에서 박지원이 무리하게 막았다는 게 심판진의 판단이었다. 한국 선수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3개국의 재경기에서 미국이 실격 판정을 받으면서 결승에 오른 4개 팀 중에서 2개 팀이 실격 처리됐다. 원래대로라면 파이널B(순위 결정전) 1위 팀이 3위로 올라와야 하지만, 지난해 바뀐 규정이 한국을 살렸다.
시상식 종료 이후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네 팀 중에서 두 팀이 실격되면 1위와 2위 팀이 결정되고, 다섯 팀이 올라왔을 때 세 팀이 실격될 경우에는 실격 판정을 받은 세 팀이 공동 3위가 된다"라며 "이전까지만 해도 오늘과 같은 상황이 나왔을 땐 파이널B에서 1위에 오른 선수 또는 팀이 3위를 수상했는데, 지난해부터 규정이 바뀌었다. 결승에 올라온 선수들을 모두 인정해줬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행운의 동메달로 한숨을 돌린 대표팀은 여자 3000m와 남자 5000m 준결승에서 각각 조 1위, 2위로 결승행을 확정하며 2일 차 일정을 마감했다.
대회 2일 차에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품은 한국은 대회 3일 차인 17일 남녀 1500m 2차 레이스, 여자 3000m 및 남자 5000m 계주 등에서 메달을 노린다.
◆2023-2024 월드컵 4차 대회 2일 차(16일) 종목별 결승 결과
*1000m
-여자: 금메달 하너 데스멋(벨기에) / 은메달 크리스틴 산토스-그리스월드(미국) /동메달 잔드라 벨제부르(네덜란드)
-남자: 금메달 스티븐 뒤부아(캐나다) / 은메달 황대헌(한국) / 동메달 파스칼 디온(캐나다)
*1500m(1차 레이스)
-여자: 금메달 김길리(한국) / 은메달 커린 스토더드(미국) / 동메달 공리(중국)
-남자: 금메달 박지원(한국) / 은메달 윌리엄 단지누(캐나다) / 동메달 펠릭스 루셀(캐나다)
*혼성 계주 2000m: 금메달 네덜란드 / 은메달 이탈리아 / 동메달 한국, 미국
◆2023-2024 월드컵 4차 대회 3일 차(17일) 주요 일정
-남녀 500m 준준결승~결승
-남녀 1500m 2차 레이스 준결승~결승
-여자 3000m 계주 결승
-남자 5000m 계주 결승
사진=목동, 김한준 기자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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