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은 어떤 일요일을 보낼까
[박준영 기자]
▲ 지난 10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모습(자료사진). |
ⓒ 남소연 |
이어서 올해 초 조정훈 국회의원은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제안자인 조정훈 의원은 '100만원'을 자주 언급했다. 서울의 평균 신혼 가정에서 외국인 가사 노동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적절한 금액으로 100만원을 제시했다. 이는 최저임금의 약 절반 수준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에 한해 최저임금제 적용을 예외적으로 제외하자는 주장이었다.
이어서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등 관련 부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도입을 위한 시범 사업까지 준비했다. 시범 사업의 골자는 필리핀에서 100명의 가사노동자에게 비전문취업(E9) 비자를 적용하여 서울 지역 희망 가정에 중개 업체를 통해 취직시키는 방식이었다.
조 의원이 제안한 법안과 정부의 시범 사업 계획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논란에도 고용노동부는 시범 사업을 추진했다. 다행히(?)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했고 한국의 두 중개 업체를 통해 입주 가사노동자가 아닌 출퇴근 형식의 가사노동자를 들여오는 방식이었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필리핀 출신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면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고 가사 노동과 육아까지 맡길 수 있을 것이라 홍보했다.
그러나 연내 실시하기로했던 시범사업은 현재(12월 중순)까지 실시되지 못했으며, 연내 실시는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이 무산된 원인은 '송출국'인 필리핀이 한국이 제안한 조건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있다.
한국 정부는 지속적인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출퇴근 형식의 가사노동에 지정된 숙소의 월세를 급여에서 제하는 조건에 동의하고 표준 영어를 원활하게 구사하는 가사노동자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필리핀 당국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까다롭고 불공정한 조건이었다는 얘기다.
가사노동자들이 가시화될 때
서울시와 당국이 제시한 '희망찬 미래'인 홍콩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 홍콩의 가사노동자들을 만났다. 2020년 기준으로 홍콩에는 약 37만 명의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있으며, 이는 홍콩 전체 인구의 약 5%에 달한다고 알려져있다. 이처럼 홍콩에는 많은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존재하지만, 평일에 이들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가끔 산책하는 노인과 동행하는 외국인 돌봄 노동자를 볼 수 있지만, '그림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들의 존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들은 일요일 오후의 주요 공공장소에서 마침내 가시화된다. 홍콩의 주요 가사노동자 집단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의 가사노동자이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고된 일주일의 노동을 마치고 휴식이 주어진다. 이는 홍콩의 고용인 가정이 '외부인'인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내보내고 '가족'들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노동자는 홍콩 시내의 주요 공공공간에 모여 하루를 보낸다.
▲ HSBC 건물 1층에 모여 있는 필리핀 가사노동자들 |
ⓒ 박준영 |
▲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 시간을 보내는 필리핀 가사노동자들 |
ⓒ 박준영 |
이들은 박스나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한다. 어떤 모임에서는 피크닉을 나온 것처럼 음식을 나눠 먹고 작은 마이크와 스피커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거나 K-POP 댄스를 함께 추기도 한다.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의 주말 휴식처의 중심인 HSBC 건물 1층은 벼룩시장이 된다. 이들은 옷이나 악세서리, 음식, 전자제품 등을 사고 판다.
▲ HSBC 건물 1층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필리핀 가사노동자들 |
ⓒ 박준영 |
▲ 빅토리아파크에 모인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 |
ⓒ 박준영 |
▲ 빅토리아파크에서 햇빛을 피하기 위해 텐트에 모인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 |
ⓒ 박준영 |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이 모여있는 빅토리아 공원의 중심에서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 권리보장운동 단체인 IMWU(Indonesian Migrant Workers Union)를 만날 수 있었다. 약 20명의 활동가들이 단체옷을 맞춰 입고 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IMWU는 홍콩의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의 권리보장과 홍콩에서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단체이며, 홍콩에서 시민 단체로 인정받은 유일한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 단체이다. 이들은 해외의 인도네시아 대사관 혹은 영사관이 자국의 가사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는 법안의 통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영어 회화, 돌봄 노동 기술, 화장법 등을 가르치는 소규모 교육 모임을 무료로 제공하며 인도네시아 가사노동자들의 홍콩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다.
▲ IMWU가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들고 나온 현수막 |
ⓒ 박준영 |
한편 홍콩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일요일 오후의 홍콩의 대표적인 공공 공간을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을 위해 비워주는 셈이다. 홍콩 시민들, 특히 이들을 고용하는 고용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볼 수 없었지만, 일주일에서 하루의 시간을 가사노동자들의 해방구로 존중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그들은 공존하고 있었다.
한국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가 정말 필요하다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표준 영어를 구사하고 가사노동과 육아를 모두 맡겨도 묵묵히 일하는, '준비된' 노동자를 요구하면 이 제도가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을까.
한국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이주한 상황을 상상해보자. 매주 일요일 반나절을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서, 혹은 강남대로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즐기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을 한국인들은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일주일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단 하루의 휴식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관용은 준비되어 있을까. 한국 정부가 '준비된'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을 요구하는만큼, 한국 사회는 준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오세훈 시장과 조정훈 의원은 홍콩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에만 주목할 뿐 선주민과 이주민의 공존 방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듯하다. 홍콩의 출산율은 1980년대에 이미 1명 대로 진입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1명 이하로 감소했다(세계은행, 2020년 기준 0.87명).
한국 당국이 벤치마킹하려는 홍콩에서조차,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의 도입만으로 인구 문제는 바로 해결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구 위기와 돌봄 위기는 오랜 시간 누적된 문제인만큼 간단히 해결할 수 없다. 한국 당국 측의 보다 진지한 고민이 요구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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