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 교수의 고백 "나도 탈모인…샴푸 믿다간 돌이킬수 없다"
[탈모인 1000만, 겨울이 더 시린 사람들] 허창훈 대한모발협회 이사 진단·조언
궁금했다. 내 머리 상태는 어떤가 하고. 탈모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전문의의 진단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탈모가 심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허창훈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대한모발학회 총무이사)는 “관리가 필요해요”라고 이어 말했다. 촬영하던 사진기자도 ‘3단계’ 판정을 받았다. 허 교수는 “나도 사실 1단계 직전의 탈모인”이라고 털어놨다. 지난달 22일 허 교수의 5평(16.5㎡) 작은 연구실에 모인 세 명 모두 탈모였던 것. 탈모는 그만큼 흔한 질환이다. 흔한 만큼 머리로는 고민의 골이 깊지만, 몸은 ‘내일’을 기약하며 치료에 소홀하다. 머리 시리도록 찬바람 부는 겨울, 중앙SUNDAY는 허 교수와 함께 탈모의 현주소를 찾았다. 한 해 중 이즈음이 탈모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겨울에 비니를 쓰고 다닐 수밖에 없어요. 머리가 사라지면 얼마나 시린지, 머리가 풍성한 사람은 모를 겁니다.”
김병민(55)씨는 그러면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허 교수가 “남성형 탈모 진행을 7단계로 나눈다”고 했는데, 김씨는 “막바지로 향하는 6~7단계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먹는 약 부작용? 98~99%는 증상 없어
지난 11일 김병민씨가 전한 집안이 이랬다. ①아내의 머리에서 이탈한 머리카락이 뭉쳐 서부영화에 나오는 회전초(回轉草)처럼 마루에 굴러다닌다. ②출산 후 친정에 온 딸이 샤워를 끝낸 뒤, 욕조 배수구 거름망에는 모발이 한 움큼 모여 물을 틀어막고 있다. ③아들은 취업이 잘 안 되면서 스트레스에 치였는데, 동전만한 공터가 머리 두세 곳에 생겨 우울하다고 했다. 이러다가 취업도 못 하는 것 아닌가 싶단다. 그리고 김씨는? ④‘포기’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탈모 인구 1000만 명’ 중 일부다. 허 교수는 1000만 명이 ‘추산’이라고 말했다.
Q : 탈모인이 1000만 명이나 되나.
A : “정확한 통계는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출처로 한 통계가 있는데, 신빙성이 없다. 건강보험공단은 병원 치료를 받은 환자를 공개할 뿐이다. 그게 2020년 기준 23만여 명이다. 그 밖의 노화나 유전적 요인에 의한 탈모인은 빠진 것이다. 다만 2019년 한국갤럽에서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2%가 자신을 탈모라고 대답했는데, 우리나라 성인 4000만 명을 대입하면 880만 명이고, 탈모 위험군까지 합하면 1000만 명이라고 추산한 것이다.”
탈모는 사전적 의미로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상’이다. 하지만 탈모는 ‘빠지는 것’과 ‘가늘어지는 것’ 등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빠지는 탈모로는 동물의 털갈이 같은 ‘휴지기(休止期) 탈모’가 있다. 가을과 요즘 같은 초겨울에 휴지기 탈모가 온다.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가장 유력한 가설의 하나가, 여름 이후의 일조량 감소다. ①번 김병민씨의 아내 경우, 계절적인 휴지기 탈모일 가능성이 높다. 출산으로 인한 탈모(②번 딸)도, 병원 입원 후 탈모도 휴지기 탈모다. 별다른 치료 없이 대부분 3~4개월 뒤 회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또 다른 빠지는 형태인 ‘원형탈모(③번 아들)’와 가늘어지는 형태인 ‘남성형 탈모(안드로겐 탈모·④번 김씨)’다.
“소리 없이 다가온 원형탈모로 2년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회사원 신인섭(54)씨는 “내가 설마 걸릴 거라고 생각 못 했고, 어디든지 숨고 싶었다”고 했다. 신씨는 현재 회복된 상태다. 허 교수는 “원형탈모는 심각한 질환”이라고 했다.
Q : 원형탈모가 얼마나 심각한가.
A : “원형탈모는 자가면역질환이다. 호르몬과 관련된 안드로겐 탈모와 다르다. 원인은 불분명하다. 스트레스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병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하지만 충격은 막대하다. 원형탈모는 두피뿐만 아니라 눈썹·속눈썹·수염에도 생기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 수 있다.”
원형탈모는 자존감 저하, 우울증 등을 수반하기도 한다.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원형탈모증 환자의 평생 정신과 장애 유병률은 66~74%,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38~39%로 확인됐다. 또 다른 연구는 원형탈모증 환자의 13~38.5%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위험이 있다고 보고했다. 원형탈모 치료제로는 과거 스테로이드를 많이 썼는데, 지난 2월 면역질환을 치료하는 잭(JAK·야누스키나)억제제가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성인에 한해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 비용이 60만원에 이른다. 허 교수는 “신씨의 경우 불행 중 다행으로 치료 기간이 짧았고, 그만큼 심리적인 위축도, 치료비용도 덜했다”고 전했다.
“저 같은 6~7단계 탈모인은 치료를 해도 소용없겠죠?”
김병민씨는 안드로겐 탈모를 겪고 있다. 단계, 단계마다 늦었다고 생각했고 치료를 미루고 미뤘다. “탈모 방지 샴푸를 쓰고, 머리에 좋다는 음식도 먹는데 도무지….” 김씨처럼 본인의 탈모 심각성을 알면서도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국갤럽의 2019년 조사에서 ‘자신이 탈모’라고 여긴 22%(1500명 중 329명) 중 ‘심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에 가까웠다(46%). 그런데, 대안(복수응답)으로는 ‘아무것도 안 한다(47%)’가 1위였다. 이어 ‘샴푸 등 모발 관리제품 사용(41%)’, ‘민간치료요법·건강기능식품 시도(12%)’가 뒤를 이었다. 허 교수는 “샴푸는 지루피부염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탈모에 효과가 없다”며 “탈모 초기라고 샴푸만 사용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래픽 ‘탈모, 진실 혹은 거짓’ 참조〉
Q : (김병민씨 같은) 탈모 7단계도 거슬러 갈 수 있나.
A : “가능하다. 35세에 처음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 당시 7단계였다. 그도 치료를 포기하고 모발이식을 하러 왔다가 일단 약을 먹고 보자고 했다. 이후 모발이식 등을 병행해 5단계로 되돌렸다. 그렇다고 누가 약이 잘 듣는지, 안 듣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40대 이전에 탈모가 있을 경우 99% 현 상태 유지가 가능하고, 40대 이후라도 90% 정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은 70%로 줄어든다.”
건보 적용, 증상·단계 설정 쉽지 않아
Q : 역시 비용이 문제인데.
A : “과거 먹는 탈모약이 비싸다고 두피 영양제에 의존한 사람이 많았는데, 휴지기 탈모에 다소 도움이 되지만 탈모 환자의 90%가 겪는 안드로겐 탈모에는 효과가 전혀 없다. 탈모약은 제너릭(generic·특허가 풀린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은 주성분, 복용법, 효능·효과를 가진 의약품)이 나오면서 값이 급격하게 내려갔다. 치료법은 크게 네 가지다. 치료 효과 순서대로 모발이식, 먹는 약, 레이저, 바르는 약이다. 최근에는 먹는 약인 피나스테라이드·두타스테라이드 등 두 가지 계열의 약제를 주사제로 바꾸려고 실험하고 있다. 결과가 좋게 나와 현재 3상 임상연구 중이다. 또 유전자 수준에서 탈모를 막아주는 si-RNA 방법도 호주에서 임상시험 중이다.”
Q : 먹는 탈모약의 부작용으로 성기능 감퇴 등에 대한 우려가 있다.
A : “어떤 약이든 부작용이 있다. 먹는 탈모약의 부작용은 1~2%로 나타난다. 바꿔 말하면, 98~99%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탈모로 인한 자존감 저하, 우울증을 겪는 것보다 치료가 낫다는 수치다. 탈모이고, 탈모에 대한 고민이 크다면, 탈모약을 먹어야 (머리카락을) 지킬 수 있다. 왕도(王道)는 없다.”
“약값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여기를 성지(聖地)라고 하지요. 탈모 성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에서 만난 이모(32)씨는 한 병원에서 나와 약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탈모로 고민하는 2030세대 일부는 이런 ‘성지 순례’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진료비와 처방약 가격이 합리적이면서도 약 효능이 우수한 곳’을 탈모 성지라고 부른다. 이곳과 함께 충북 청주시, 울산광역시 등의 병원도 성지로 꼽히지만, ‘일산 탈모성지’ ‘광명 탈모성지’ 등 웬만한 도시에서는 검색으로 뜬다. 한 인터넷 카페에는 ‘요새 ○○ 탈모 성지 다녀온 분 계신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지난달 다녀왔고 3개월 진료비 5000, 약값 90알이 5만 얼마였어요’ ‘지지난달에 6개월 처방전 5000원, 약값 6만3000원 나왔네요’ ‘동지여, 힘내세요 ㅜㅜ’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탈모 성지가 떠오른 건 2030세대의 탈모가 증가했기 때문일까. 허 교수는 “숫자가 늘어나는 건 맞지만 실제로 늘어나는 건지, 병원 찾는 이가 늘어나는 건 지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엠브레인이 지난 3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30.3%가 탈모를 경험했고, 이 중 연령별로는 20대 14.1%, 30대 23.4%, 40대 29.0%, 50대 33.3%였다.
탈모 성지를 찾는 이들 중 일부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비대면 진료와 대리처방을 받고, 미리 정한 약품으로 택배 배달을 받기도 한다. 모두 불법이다. 이씨와 함께 온 박모(33)씨는 “얼마나 절실하면 그러겠느냐”고 옹호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탈모 게시물이 60만개에 육박한다. 대부분 절박과 절실을 이용한 광고다. 허 교수는 “법 테두리 안에서 진료를 받는 게 가장 빠르고 안전하다”고 정리했다.
Q : 가발에 의지하는 탈모인도 많다.
A : “가발은 탈모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숨어 지내는 탈모인도 꽤 있는데, 이들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데, 가발은 2년에 한 번꼴로 바꿔줘야 하는데 의료용품으로 분류돼 있지 않아 비싼 값에 살 수밖에 없다.”
Q : 탈모에 대한 진단도 애매하지 않은가.
A : “탈모는 질환이 맞지만, 몇 단계인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당뇨처럼 수치로 객관화되지 않으니까. 만약 탈모에 대한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면 어느 단계부터 할 것인가? 지금 일부 지자체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탈모 지원을 하는데, 중장년 탈모인에게는 공평한 것인가? 안드로겐 탈모보다 심리적 충격이 큰 원형 탈모에 대한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안드로겐 탈모를 제외할 수 있는가? 또 건강보험 재정이 그 정도로 넉넉한가? 고민할 부분이 많다.”
허 교수는 일단 답을 내놨다. “지금 당장,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라”는 것. 그는 자신도 탈모약을 먹는다고 했다. 그는 “25년 정도 탈모를 연구한 사람 머리가 휑하다면, 누가 나를 믿겠냐”고 반문했다. 이번 주말 찬바람이 분다. 머리가 다시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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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형탈모=면역계인 T임파구가 자기 모발의 일부분을 외부 물질로 잘못 인식해 공격하면서 탈모가 진행되는 자가면역질환.
안드로겐 탈모=안드로겐(남성호르몬) 중 하나인 테스토스테론이 디하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라는 탈모 유발 호르몬으로 변해 모낭을 공격해 생기는 질환. 헤어라인과 정수리 쪽에서 모발이 가늘어진다. 여성형 탈모도 안드로겐 탈모에 속하는데, 주로 정수리에서 진행된다.
siRNA=소간섭(small interfering) RNA의 약자. 특정 단백질의 생산을 억제함으로써 유전자 발현을 방해한다.
JAK 억제제=면역과 염증, 세포 성장을 조절하는 야누스키나아제(Januskinase)를 억제하는 약물. 류머티즘과 아토피 피부염, 궤양성 대장염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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