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음식을 누가 먹고 싶겠어요?"
[메밀 ]
2023년 국정감사로 확인된 근로복지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음식 배달노동자 산업재해가 지난 4년 동안 7배 증가했다. 산재 사망자 수는 7년 사이 20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급증한 배달노동자는 기업의 노동착취와 수수료 삭감으로 더욱 급하게 달려야 했다. 정부는 배달 노동이 '필수노동'이라 말했지만, 배달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치거나 죽더라도 온갖 혐오 표현과 함께 조롱받기 일쑤다.
배달노동자는 잔업과 야근으로 바쁜 사무실로, 손님을 맞이한 가정집으로, 아픈 자취생의 원룸으로, 아이를 잠재운 맞벌이 부부의 '육퇴'(육아 퇴근) 현장으로 향한다. 타인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시공간을 가로질러 달리는 배달 일의 면면에 대하여 배달노동자 이상진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11월 10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부산 사무실에서 배달노동자 이상진님을 만났다. |
ⓒ 메밀 |
-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부산에서 배달 라이더 일을 하는 이상진입니다. 이 일을 한 지는 2년 반 정도 됐어요. 이 업계 안에서는 우리끼리 급을 나누는 게 좀 있는데, 소위 일반대행업계 기준으로는 중급 정도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웃음)"
- 중급이라고 하셨는데 그 급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들어온 주문 콜을 처리하는 개수예요. 많은 콜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콜을 영리하게 잘 담아야 하거든요. 동선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좋은 콜을 빨리 골라서 여러 개를 묶어 배달하고, 배달하는 사이에도 틈틈이 확인하면서 좋은 콜이 뜨면 재빠르게 선점하고요. 그런데 저같이 잘 못 하는 사람들은 아직 목표치의 절반도 못 채웠으니까 장시간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콜 잘 처리하는 선수들이 퇴근해야 우리 먹을 게 생기는데, 그러면 또 2군 선수들끼리 콜 담기 경쟁을 하죠."
- 짧은 순간에 경쟁적으로 일을 잡고, 시간에 쫓기면서 거리를 달려 건당 배달 수수료를 벌고, 좋은 콜을 잡기 위해 계속 콜 화면을 바라보는 일의 특성상 무의식적이거나 강박적으로 장시간 노동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인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별일 없으면 오전 11시에 일을 시작하는데, 늦으면 자정을 넘길 때도 있으니까 초장시간 노동이죠. 그렇게 긴 시간을 쉬지 않고 일해도 최저시급도 못 가져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 배달 노동의 계약 형태는 일반적인 고용 형태와 달라 노동자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진님은 지금 어떤 형태로 일하고 계시나요?
"저희는 특수고용노동자니까 근로기준법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에요. 그나마 노조법상으로는 인정을 받아서 합법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고 있고요. 저는 일반대행업체를 통해서 배달일을 해요. 배달 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배달의민족(배민), 쿠팡, 요기요 같은 메이저 플랫폼 업체와 플랫폼이 아닌 일반대행업체로 말이죠.
여러 업체가 일반대행업 시장에 난립하고 있고, 서로 권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죠. 상도덕 없는 제로섬 게임이에요. 어느 구역이든 상권의 균형이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배달 수수료 후려치기 경쟁이 시작돼요. 원래는 한 콜이 3300원짜리였는데 업체의 지점장 입맛대로 상점하고 협상해서 3000원이 돼요. 우리 뜻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건당 300원씩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거죠. 시장 교란을 위한 단가 후려치기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다 보니까 10년째 수수료가 제자리인 거예요. 10년간 물가는 오르고 또 올랐는데, 라이더들이 굉장히 힘들죠.
업체의 지점장 중에는 사업소득세나 산재보험료를 대신 처리해 준다고 떼어가 놓고 처리는 안 하고 횡령하는 사람도 있어요. 횡령액이 개인별로 따지면 그렇게 많지 않아 보여도 여러 명이 횡령당한 액수를 모아놓으면 꽤 상당한 액수거든요. 심하면 돈 죄다 떼먹은 뒤에 업체 문을 닫고서 도망가는 일도 있어요. 이번 국정감사 때 장혜영 의원실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니까 이런 일이 특히 부산·경남에 많더라고요."
- 배달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계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소위 '라이더법'이라고도 부르는,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이 몇 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어요. 이번 국회에서는 통과가 안 될 거고, 여야 거대 양당 모두 라이더법 관련해서는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어요. 스페인 같은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라이더법에 상응하는 법을 마련해서 플랫폼 노동이 급속히 증가하는 것에 대처하더라고요. 당연히 한국도 필요해요. 산업안전과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하고, 화물연대의 요구로 안전운임제를 도입했던 것처럼 안전배달료 같은 안전망도 필요해요. 라이더들은 수수료만으로 먹고사니까 어떻게든 콜을 한 개라도 더 처리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결국 사고로 이어집니다. 지금 전 업종을 통틀어 산재율 1위 업체가 배민이잖아요."
▲ 배달 장소에 도착 후 무게 중심이 이상해 확인해 보니 반이 접혀있던 피자. 3만 여원을 변상한 후 새로 만든 피자를 배달하고 이날 일은 접었다. |
ⓒ 이상진 |
"혹한기에는 그냥 밖에 있기만 해도 추운데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추워요. 눈 오는 지역은 사고 위험이 크고요. 폭염기에는 그래도 좀 시원할 것 같죠? 헬멧이며 각종 장비를 차고 있어 열이 안 빠져나가니까 몸 곳곳에 두드러기가 나고 탈모와 두통도 옵니다. 토시를 껴도 땀띠 같은 피부질환은 기본이고 자외선에 화상을 입어요. 그리고 오토바이는 이륜차니까 손과 발이 긴장의 연속이에요. 커브를 돌거나 후진할 때는 순간적으로 팔다리에 하중이 몇 배로 실리거든요. 자려고 누우면 경련이 많이 일어나요.
가장 크게 괴로움을 느끼는 부분은 늘 시간에 쫓긴다는 거예요. 분초를 다투는 압박감에 도로 위를 달리는 긴장감이 더해져 소화 불량을 달고 사는 사람도 있어요. 물건이 조금 늦었다거나 좀 식었다는 이유로 고객한테 환불 요구를 받는다거나 문간에서 막 싫은 소리를 들어도 서비스업이니까 참아야죠. 상점에서도 배달 현황을 지켜보다 전화해요. "기사님, 어디 있어요? 기사님 왜 빨리 안 가세요." 저는 이 일 하고 나서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막 벌렁벌렁해요. 그런 재촉 전화 받고 나면 더 가속하고, 신호도 어기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가슴을 졸이면서 음식을 배달했는데 국물이 샜다고 클레임을 받으면 뭐랄까, 참 허탈해요. 다른 콜들을 묶어 배달할 때, 첫 번째 배달이 지연되면 계속 밀리잖아요. 음식이 식으면 안 되니까 마음이 급한데, 퇴근 시간대에는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데에만 10분이 걸릴 때도 있거든요. 그러면 그게 그럴 일이 아닌데도 순간적으로 엘리베이터 다 부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어요.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집중이 흐트러지고 그러다 보면 사고가 나기도 쉽거든요. 그럴 때는 무조건 오토바이를 세우고 쉬어야 해요. 마음이 너무 상해서 안 되겠다 싶을 땐 멈추고 그날은 일을 접기도 하고요."
- 배달노동을 피상적으로 볼 때는 라이더 개개인에게 선택과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당 수수료와 시간으로 노동자를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네요.
"맞아요. 우리가 작업중지권 이야기할 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노동자의 현장 통제권이잖아요. 일하다가 위험을 느끼는 때, 예를 들어 혹한에 길이 빙판이라 계속 배달하다가는 죽을 것 같을 때는 멈출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라이더유니온에서도 기후 실업급여를 주장하는 거거든요. 기상청에서 폭염특보, 한파특보를 내면 배달 앱과 연동되어서 배달 주문이 중단되도록 하는 시스템 같은 게 필요해요. 라이더들에게는 최소한의 일시적 실업급여를 보장하고요. 배달노동자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긴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홍수가 나서 물이 무릎 위로 철벅거리는데도 배달을 시키는 사람이 있고, 그럼 돈 한 푼 벌겠다고 그걸 또 억지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남이 보면 왜 그러나 싶겠지만 하루 일당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비 온다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고스란히 '0원'이니까 쏟아지는 폭우 속으로 자꾸만 나가게 되는 거예요.
이미 배달은 '필수노동'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공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데, 국가나 지자체가 이들이 생명을 걸고 길 위로 나서지 않도록 시스템을 고민해야죠. 기후위기 시대에 심화할 수밖에 없는 문제고 당면한 과제라고 봐요. 대책이 없으면 그런 일이 더 많이 벌어질 거예요. 피 묻은 음식을 누가 먹고 싶겠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메밀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12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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