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붕괴 남은 시간 많아야 7년, 또 기회 날렸다
[민정희 기자]
▲ 기후 활동가들이 지난 12일(현지 시각)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열린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화석연료 사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12.13 |
ⓒ 로이터=연합뉴스 |
지난달 30일부터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총회(COP28)가 12월 13일 폐막했다. 이번 총회는 그동안 각국 정부가 1.5℃ 상승 저지를 위해 기울인 노력과 그에 따른 진전을 검토하고 장기목표 달성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전 지구적 이행 점검(Global Stocktake)'과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보상을 지원할 기금 설치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시민사회 내에서는 COP28이 파리기후총회(COP21) 이후 가장 중요한 회의가 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사국들이 폐막 예정일을 하루 넘기면서까지 치열한 논의를 거쳐 합의에 도달한 COP28의 최종 문서는 1.5도 상승을 저지할 이정표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초안 문서에 등장했던 '화석연료 퇴출(phase out of fossil fuels)'은 온데간데없고, '탈화석연료 전환'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종합의문에 대해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end of fossil fuels)'의 시작을 알렸다고 평가했다. 세계 주요 매체들도 유엔기후총회 역사상 처음으로 최종합의문에 온실가스나 이산화탄소가 아닌 '화석연료'가 언급되었다는 사실만으로 COP28은 성공적이고 역사적이라고 평가했다.
구속력도 구체적인 시점도 없어
그러나 '화석연료의 퇴출'이 아닌 '탈화석연료 전환'을 합의문에 포함했다는 것은 석탄과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해수면 상승의 위협을 안고 있는 마셜제도의 대표단은 이 합의문을 두고 '사형선고(death sentence)'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마셜제도와 같은 기후 취약국에 현재 기후 적응 기금이나 손실과 피해 기금 지원이 우선순위이지만, 화석연료 퇴출을 통한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은 취약국의 손실과 피해를 줄이는 동시에 생계권과 생명권을 보장할 핵심 수단이다.
화석연료의 생명 연장이라는 회의 결과는 COP28 개최국 UAE의 국영 석유기업(ADNOC) CEO인 술탄 알 자베르(Sultan Al Jaber)가 올해 초 COP28 의장으로 지명되었을 때 예견되었다. 술탄 알 자베르는 COP28 기간 중 한 인터뷰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해 COP28 의장으로서 적절치 않은 발언을 했다는 비난과 함께 빈축을 샀다(관련기사: 두바이서 날아온 '사망진단서'... 세계 경악시킨 석유공사 CEO https://omn.kr/26qoe).
지난해 이집트에서 개최된 COP27보다 4배 가까운 2456명의 화석연료 로비스트가 COP28에 참석했다는 점도 기후총회에 참석하는 각국 정부 대표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 온 지 30년 이상 경과했지만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된 2020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세계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국제사회의 대응에도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1.1℃ 상승했고, 전 세계에 기후 재난이 만연해졌으며 기후위기에 책임이 많지 않은 작은 도서국과 저소득을 포함한 개도국에서 발생하는 기후 손실과 피해는 급증하고 있다.
▲ 술탄 알자베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가운데)이 13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전체 회의에 앞서 박수를 치고 있다. COP28은 이날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골자로 하는 합의를 도출했다. 2023.12.13 |
ⓒ 연합뉴스 |
하지만 이번 합의는 구속력이나 강제성, 구체적인 시점을 언급할 정도의 긴급함이 보이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지수가 수십 배 이상 강력한 메탄 감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합의문 제28조에는 2030년까지 상당량의 메탄을 감축하자고 되어 있지만 2030년까지 얼마나 줄일 것인지 언급되어 있지 않다.
1.5℃ 목표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에너지 효율 2배 개선"이 합의문에 포함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더 강력해지는 기후재난 상황에서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핵발전과 더불어 감축 용량과 실효성 측면에서 제한적인 탄소 포집과 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이하 CCS) 기술이 감축 수단으로 언급되고 있어 우려된다.
특히 CCS 기술은 화석연료 경제에 기반한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주요 산유국, 석탄 수출국들이 암암리에 화석연료의 채굴과 소비를 지속하기 위해 강조해 온 기술 가운데 하나다.
IPCC 6차 종합보고서의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에 재생에너지보다 CCS와 같은 탄소 제거 기술(CDR)이 더 많이 포함되도록 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9명이나 넘는 정부 대표단을 IPCC 회의에 파견한 전례도 있었다. 그들 대표단의 대다수는 국영 석유기업 관계자들이다.
이번 총회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였던 손실과 피해 기금의 경우, 총회 첫날부터 기금 설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이 기금을 수십 년 전부터 제안해 온 작은 도서국을 비롯한 기후 취약국들의 지지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COP28에서 약속된 기금은 UAE 1억 달러, 독일 1억 달러 등 총 7억 9200만 달러에 그쳤다. 현재 기후 취약국에서 기후재난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과 피해액은 연간 4천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기에 현재까지 약속된 기금만으로는 손실과 피해기금을 운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글로벌 북반구 산업국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큰 만큼 손실과 피해 기금의 상당 부분을 지원해야 한다.
특히 이들 산업국은 글로벌 남반구에서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원 탈취를 통해 쌓은 자본으로 기후위기를 초래했고, 남반구의 수많은 민중들을 기후재난의 위험에 처하도록 했다. 따라서 산업국은 손실과 피해기금은 물론이고 남반구 개도국의 기후 적응을 위한 기금 지원과 역량 강화, 기술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유엔기후총회는 기후위기 책임이 큰 산업국의 배출량 기준 기금 지원 규모를 정하고 강제성을 부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COP28의 합의문은 산업국의 기금 지원이 '자발적(voluntary)'원칙을 따르도록 명시했을 뿐이다. 합의문 전문(前文) 말미에 기후변화 대응 행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기후정의(climate justice)'의 중요성에 주목하자는 표현이 있으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취약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지원하는 재원 조성 등에 기후 정의 원칙 또는 공동의 차별화된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9일(현지 시각) UAE 두바이 엑스코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국 수석대표로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3.12.9 |
ⓒ 환경부 |
한편, 예상은 했지만 COP28에서 보인 한국 정부의 행보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한국 정부는 '코리아 파빌리온(Korea Pavilion)'을 설치해 한국 산업계의 탄소 중립 현황과 탄소 감축 실천 사례 등을 공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코리아 파빌리온을 기업 홍보와 핵발전 전시관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핵발전 3배 확대' 이니셔티브를 주도하는 데 이용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시민사회단체 연대기구, 기후위기비상행동은 IPCC 6차 보고서를 인용해 "핵발전이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이나 비용면에서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며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한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큰 국가로서 그만큼의 책임을 따를 것"을 촉구했다. 한국 정부는 기후 취약국에 지원할 기후기금을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기금에 포함하는 방식이 아니라 ODA와는 별도의 기후기금을 책정하고 지원해야 한다.
COP28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어쩌면 국제 사회는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을 저지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이제 공은 내년 기후총회가 열리는 아제르바이잔으로 넘어갈 것이다. 아제르바이잔 또한 UAE와 같은 석유 수출국인 데에다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라는 평을 듣고 있어서 COP28에서 못다 한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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