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에서 이정후까지, KBO리그의 달라진 위상
[이준목 기자]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최근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파격적인 대우로 입단이 확정되면서 덩달아 KBO리그의 달라진 위상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12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은 구단 공식 계정에 "이정후 선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온 걸 환영합니다"라고 영어와 한글로 적은 환영 문구를 동시에 게재하며 이정후의 입단을 알렸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를 영입하기 위하여 계약 기간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약 1490억 원), 2027시즌 종료 후 옵트 아웃 조항이 포함된 계약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이정후는 KBO리그에서 7시즌 동안 통산 타율 .340을 기록하며 국내 최고의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22시즌엔 타율 .349, 23홈런, 113타점, 193안타, 출루율 .421, 장타율 0.575를 기록하며 타격 5관왕(타율·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과 함께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다. 부친인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1994년 MVP)에 이어 사상 최초의 부자 MVP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무엇보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국제대회를 제외하면 한국 밖에서는 뛰어본 일이 없던 이정후가, 세계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데 1억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이정후는 데뷔 이래 한번도 시즌 타율이 3할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으며, 외야수로서의 수비능력도 평균 이상으로 통한다. 올해는 발목 부상 여파로 86경기만 출전했지만 타율 .318 6홈런 45타점 6도루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이미 몇 년전부터 이정후의 이러한 컨택트능력과 다재다능한 호타준족을 빅리그에서도 통할수 있다고 높이 평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이는 KBO리그의 위상을 메이저리그에서도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KBO리그 출신 선수 메이저리그 직행은 꿈같은 상상에 불과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직후 초창기에는 해외 진출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먼나라 이야기였고, 프로야구 1세대 에이스 최동원과 선동열은 미국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병역 문제와 국내리그 국내리그 활성화라는 논리에 막혀 해외 도전은 허락되지 않았다.
1990년대들어 '코리안특급' 박찬호를 시작으로 아마 유망주들이 미국 구단과 일찌감치 마이너 계약을 맺고 현지에서 성장하여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리는 식으로 해외진출의 물꼬를 텄다. 최희섭, 김병현, 서재응, 조진호, 김선우 등이 모두 고교를 졸업하거나 대학재학 도중 미국으로 건나가 메이저리거로 성장했다. 추신수(SSG)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하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신시내티 레즈를 거치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로 성장했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 3000만 달러의 FA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KBO리그 출신 선수들에게 여전히 메이저리그의 벽은 높았다. 1990년대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리그를 평정한 선동열, 이종범, 이승엽, 이병규, 이대호, 김태균, 오승환 같은 슈퍼스타들마저 미국보다는 일본리그 진출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해야 했다. 이상훈과 구대성, 임창용 등이 용감하게 미국무대에 도전했지만 대부분 짧은 기간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락가락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남기지는 못하고 다시 국내로 돌아와야 했다. 이는 KBO리그 수준에 대한 폄하와 선입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고정관념을 최초로 극복한 사례가 류현진이었다. 한화 에이스이자 한국야구의 간판투수로 활약했던 류현진은 2012시즌을 마치고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로 등극하면서 LA 다저스와 6년 3600만 달러라는 당시로는 대박 계약을 맺었다. 류현진은 이후 10년간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했고, 이는 KBO 리그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류현진 이후 KBO리그 출신 선수의 빅리그행도 활발해졌다. 강정호(피츠버그),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 김현수(볼티모어), 황재균(샌프란시스코), 윤석민(볼티모어),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양현종(텍사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등이 연이어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이대호(시애틀)와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은 일본을 거쳐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뤘다.
류현진과 김하성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개인상을 수상하며 스타급 선수로 인정받았다. 이대호, 오승환, 강정호, 김현수, 김광현 등도 비록 활약한 시기가 짧기는 했지만 나름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물론 모든 선수가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으나 KBO 출신들이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이는 국내 선수만이 아니라 외국인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KBO무대에서 외국인 선수로 활약했던 에릭 테임즈, 메릴 켈리, 조시 린드블럼, 브룩스 레일리 등은 본래 미국무대에서는 비주류 선수였으나, KBO리그를 평정한 이후 그 성과를 인정받아 메이저리그까지 복귀한 '역수출 신화'의 성공사례다. 지난 시즌 NC 다이노스에서 KBO리그 MVP를 석권했던 에릭 페디는 지난 14일 페디와 2년 1500만 달러(한화 약 197억원)의 계약을 체결하며 금의환향하기도 했다.
류현진 이후 정확히 10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이정후는, 당시 3600만 달러였던 류현진의 최고 몸값 기록을 단숨에 3배 가까이 경신했다. 메이저리그에 역수출된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도 KBO 출신으로는 최고기록이다.
심지어 KBO리그보다 한수위로 꼽히는 일본 출신의 메이저리거 스즈키 세이야(5년 8500만 달러) 요시다 마사타카(5년 9천만 달러), 센가 코다이(5년 7500만 달러)도 모두 능가했다. 철저한 비즈니스 논리가 적용되는 메이저리그에서 높은 몸값은 곧 안정된 팀내 위상과 출전 기회의 보증수표이기도 하다.
이정후의 화려한 빅리그 직행은 향후 미국 진출을 꿈꾸는 KBO 현역 선수들과 아마 유망주들에게도 큰 영향을 남길 전망이다. 현재도 여러 국내 유망주들이 고교 졸업 이후 미국으로 일찍 건너가 박찬호나 추신수처럼 마이너리그에서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메이저리그의 꿈을 키우는 선수들이 있다. 현역 중에서는 최지만, 박효준, 배지환 등이 이런 루트를 밟아 메이저리그까지 오르는 데 성공한 사례다. 물론 힘든 길을 감수하며 용기있게 걷겠다는 그들의 도전정신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KBO리그의 수준이 낮게 평가받으며 아무리 한국에서 잘해도 메이저리그에서 주목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팬들의 사랑과 높은 연봉을 받아가면서도 차근차근 성장하여 메이저리그의 꿈까지 노크할수 있는 시대가 됐다.
아직 성장해야 할 시기의 유망주들이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전정신만 내세워 낯선 미국무대에 도전했다가 좌절을 맛보고 국내로 다시 돌아오거나 아 예 빛을 못 보고 사그라진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한국야구도 한때 유망주의 무분별한 유출로 골머리를 앓으며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정후가 국내에서도 최고의 선수로 자리잡을 수 있다면, 앞으로는 그 뒤를 이을 많은 유망주들도 '이정후 모델'을 본받으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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