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레전드가 왔다, 포항 스틸러스 사령탑에 박태하 감독
[이준목 기자]
레전드가 떠났지만 또다른 레전드가 왔다. 김기동 감독을 떠나보낸 포항 스틸러스가 박태하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포항 구단은 지난 12월 15일 박태하 감독을 구단의 13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시즌까지 5년간 팀을 이끌어온 김기동 전 감독이 FC서울의 신임 사령탑으로 선딤되면서 포항은 곧바로 박 감독을 대안으로 영입했다. 박 감독의 계약기간은 2년이다. 코치 시절이던 2007년을 마지막으로 포항을 떠난 이후 무려 16년만의 스틸야드 복귀다.
박태하 감독은 포항의 '원클럽맨' 출신 레전드다. 199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신인 포항제철 아톰즈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이래 2001년 은퇴할 때까지 오직 포항의 검빨 스트라이프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했으며 포항 아톰즈와 스틸러스까지의 구단명 변천사를 모두 함께한 '성골 중의 성골'이다.
입단 당시에는 무명 선수에 가까웠지만 쟁쟁한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포항제철에서 전천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당당히 주전 자리를 쟁취했고 주장까지 역임했다. 국가대표에도 승선하여 A매치 11경기(7골)에 출전했다.
박태하 감독이 선수로 활약한 기간동안 포항은 K리그 우승 1회(1992), FA컵 우승 1회(1996), AFC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1996-97, 1997-98) 등의 화려한 성적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박 감독은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한 9시즌 동안 K리그 통산 261경기 46골 37도움을 기록했다. 또한 은퇴 후에도 포항에 남아 스카우트와 코치로 활약했고, 2007년에는 브라질 출신의 세르지오 파리아스와 감독을 보좌하여 당시 6강PO 체제에서 '5번시드의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내며 코치로서 또 한번의 우승을 함께했다.
이러한 기여도를 인정받아 박태하 감독은 포항 구단이 지난 2013년에 창단 40주년 기념으로 발표한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 13인' 중 한 명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13인의 면면을 보면 그야말로 화려한데 포항의 창립자인 고 박태준 전 회장을 비롯하여 초대 감독 한홍기, 이회택, 최순호, 황선홍, 홍명보, 김기동, 라데 등 하나같이 한국축구에 한 획을 그은 기라성같은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박 감독은 2007년을 끝으로 성인 국가대표팀 코치로 자리를 옮기며 처음으로 포항을 떠나게 됐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허정무호의 코치로 사상 최초의 원정 16강에 기여했으며, 그 뒤를 이은 조광래호에서도 수석코치로 활약하며 2011년 아시안컵 3위를 함께 했다. 조광래 감독이 경질된 이후에는 K리그로 돌아와 후배인 최용수 감독이 있는 FC 서울에서 수석코치를 맡으며 2012년 팀의 우승에 기여하는 등, 코치로 가는 팀에서 좋은 성과를 올렸다.
본격적인 감독 경력은 중국에서 시작했다. 2015년부터 중국 2부 리그인 갑급 리그의 옌볜 푸더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박 감독은 사령탑 부임 첫해 옌벤을 갑급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중국은 막대한 황사머니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외국인 선수와 명장을 무더기로 영입하던 시절이었고, 박 감독은 비록 승격과 강등을 오가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지원과 한정된 전력 속에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축구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박 감독은 옌벤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중국 축구협회의 러브콜을 받아 여자축구 2진 대표팀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박태하 감독은 2020년부터 국내로 돌아와 올해까지 프로축구연맹의 기술위원장을 역임하며 행정가로 활동해왔다. 박 감독은 기술위원장을 지내던 시절에도 몇몇 구단에서 감독직을 제의받았으나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기술위원장을 그만두자마자 친정팀 포항에서 감독직 제의가 왔고 박 감독은 운명처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박태하 감독은 '포항 명예의 전당 13인'중 한홍기-이회택-최순호-황선홍-김기동에 이어 역대 6번째로 친정팀의 사령탑을 맡은 레전드가 됐다. 이중 군복무 시절을 제외하고 한번도 팀을 옮긴 적이 없는 원클럽맨 감독은 박 감독이 사상 최초다.
박 감독의 선임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사실 경력 면에서는 감독을 맡기에 충분한 인물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성공을 거둔 실적이 있고 해외리그와 행정가까지 다양한 경험도 풍부하다. 이미 포항 이전에 여러 팀에서 감독 물망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능력은 검증된 셈이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전임자와의 비교와 포항의 달라진 팀사정이다. 역시 포항 레전드 출신인 전임 김기동 감독은 한정된 전력과 자원 속에서도 매년 꾸준히 리그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으며 FA컵 우승과 K리그 준우승(2023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2021년)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포항은 박태하 감독의 선수나 코치 시절때와는 달리 더 이상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넘쳐나는 스타군단과는 거리가 멀다. '화수분'으로 불리우는 탄탄한 유스 육성 시스템, 스틸타카로 대표되는 패스축구와 조직력은 강점으로 꼽히지만, 상위권 빅클럽에 비하면 투자와 지원이 부족하고 2010년대 이후로는 공들여 키워낸 선수와 감독을 다른 팀에 빼앗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난 시즌 김기동 감독 체제에서 울산에 이어 리그 2위를 차지했던 포항으로서는, 다음 시즌 성적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박 감독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K리그 감독직은 처음인 데다, 중국 시절 이후 4년간이나 현장 공백이 있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스틸야드는 선수 못지않게 '감독의 산실'로도 명성이 높다. 구단 레전드 출신인 황선홍과 김기동 감독은 포항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구단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에서만 리그, FA컵, ACL을 모두 휩쓸며 지도자 인생의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과 울산의 K리그 2연패를 이끈 홍명보 감독도 포항 레전드 출신이며 이밖에도 이회택, 최순호, 박경훈 등이 모두 프로와 대표팀 감독 등을 역임한바 있다. 포항은 실제로 지금까지 구단 출신 레전드를 감독으로 선임한 '순혈주의' 정책에서 아직까지 크게 실패한 사례가 없다.
다만 큰 성과를 남긴 전임자 다음에 부임했던 후임 감독은 고전한다는 징크스도 있다. 2010년 파리아스 감독 후임으로 부임한 레모스 감독, 2016년 황선홍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했던 최진철 감독은 모두 성적부진으로 한 시즌을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조기경질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박태하 감독이 과연 '제2의 황선홍 혹은 김기동'이 될지, 아니면 '제2의 레모스 혹은 최진철'이 될지 다음 시즌 포항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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