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로 산 1년, 일본 라멘집에서 온기를 얻었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삿포로 역에서 기차로 무려 다섯 시간을 달렸습니다. 홋카이도는 남한 영토의 80%에 달하는 거대한 섬입니다. 그러니 북쪽으로 향하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했죠.
기차 창밖의 풍경은 몇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시내를 벗어나니 눈이 쌓인 넓은 들판이 보였습니다. 침엽수림도 자주 보였습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보라가 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역이 왓카나이 역이었습니다. 일본 최북단의 기차역입니다. 역에 내리자마자 최북단 기차역 표지판을 만났습니다.
▲ 일본 최북단역 표지판 |
ⓒ Widerstand |
버스는 그렇게 40여 분을 달립니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해안 도로에 접어들었습니다. 벌써부터 바깥에는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 일본 최북단 |
ⓒ Widerstand |
사할린은 19세기 초반부터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권이 맞붙는 지역이었습니다. 한때는 일본과 러시아의 공동 지배지였죠. 러시아가 단독 지배한 적도 있지만, 러일전쟁 이후에는 사할린 남부가 일본령이 되었습니다.
사할린 섬 전역이 러시아 영토가 된 것은 2차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그러니 소야 곶이 일본 최북단이 된 것도 1945년부터의 일이죠.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저는 이 곳이 어느 거대한 섬의 끝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봤던 모든 땅끝처럼,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었거든요.
돌이켜보면 대륙의 끝이란 늘 이런 것이었습니다. 깐야꾸마리에서, 희망봉에서, 또 호카 곶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이곳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한쪽 끝이라는 사실도 제게는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 마미야 린조 동상 |
ⓒ Widerstand |
바로 옆에는 마미야 린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1808년부터 막부의 밀정으로 사할린 섬을 탐사해,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사할린이 섬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탐험가입니다.
이런 추위 속에서는 어쩐지 오래전 탐험가들이 걸었을 길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저는 기차와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온 길을, 지도도 방향도 없이 걸었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 극북의 신사 |
ⓒ Widerstand |
각자 주변을 둘러보던 여행객들은 하나둘 버스 대합실로 몰려듭니다. 버스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대합실은 곧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버스가 들어옵니다. 시내로 향하는 길, 벌써 해는 지고 있습니다. 북쪽이라 겨울에는 해가 아주 짧은 데다가, 도쿄보다 한참 동쪽에 있는 홋카이도에서는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집니다. 오후 4시만 넘어도 주변은 어두워지죠.
다시 왓카나이 시내에 돌아오니 이미 길은 한밤중처럼 어두웠습니다. 겨우 불을 켠 작은 라멘집에 들어갔습니다.
▲ 왓카나이 역 |
ⓒ Widerstand |
세계일주 여행에서 일반적으로 일본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기항지 정도가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하지만 저는 북에서 남으로, 일본에는 조금 더 오래 있어볼까 합니다.
탐험가의 흔적을 상상하게 되는 혹한 속에서, 저는 세계일주의 마지막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작은 라멘집의 온기를 품고, 남쪽으로 향해 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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