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한칸, 밥 한공기면 된다" 中 N포세대가 돌파구 찾은 곳
" “자유와 평정을 다시 찾았습니다.” " 1999년생 전직 디자이너였던 베이(貝) 씨는 중국의 SNS인 ‘19러우’에 항저우 서쪽 교외에 자리한 불교 선종 사찰인 경산사(徑山寺)에서 자원봉사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매일 새벽 2~3시부터 큰 스님의 수륙법회를 돕는 일을 시작했다”며 “성수 붓기, 불단에 올릴 음식 준비, 향 피우기, 스님이 낭송할 경전 준비 등을 하다 보면 과거 사정은 그다지 중요치 않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 “사찰에서는 침대 한 칸, 밥 한 공기면 살아갈 수 있어요. 스트레스와 불안은 사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겁니다.” "
선전(深圳)의 한 중소기업 부사장 류(劉·31) 씨는 회사 경영이 어려워진 지난 10월 회사를 그만두고 홍원사(弘源寺)의 상주 자원봉사 생활을 시작했다. 류 씨는 “사찰에서의 정규 생활은 새벽 5시 반부터 저녁 9시까지 촘촘해 꽤 힘들다”며 “불교 신자가 아니고 경전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곳에 온 뒤로 긍정적인 에너지가 강해졌고, 전반적인 건강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렇듯 중국의 MZ세대 사이에 현실에서 벗어나 해탈을 찾으려는 사찰 자원봉사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싱가포르 연합조보가 지난 10일 보도했다. 무의미한 경쟁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네이쥐안(內卷) 현상에 지친 MZ 세대가 불교에서 행복한 삶의 방식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집도, 결혼도, 아이도, 소비도 하지 않겠다는 중국식 ‘N포세대’가 평평하게 드러누워 착취당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탕핑족(躺平族)을 벗어나 불교 사찰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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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급증 사찰 입장객, 절반이 MZ세대
중국 최대 온라인여행사 씨트립은 올해 초 중국 사찰 입장권 판매량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310% 급증했으며 구매자 절반 이상이 주링허우(九零後·90년대생)와 링링허우(2000년대생)라고 자체적으로 집계한 통계를 발표했다.
중국의 쇼트 폼 플랫폼인 샤오훙수(小紅書)에는 사찰 자원봉사를 뜻하는 “#쓰먀오이궁(寺廟義工)”의 해시태그 검색량이 2300만 건을 돌파했다. 중국 젊은이 사이에는 “출근(上班)과 노력(上進) 중에 사찰(上香)을 선택한다”는 중국식 라임(Rhyme)까지 등장했다.
지난 7월 대학을 졸업한 황(黃·25) 씨는 앞서 넉 달 동안 20여 곳에 냈던 구직 서류 모두 깜깜무소식이었다며 연말을 맞아 사찰 자원봉사를 결정했다. 그는 “올해 취업 환경은 너무 어려웠다”며 “이유 없이 절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는 법(無事不登三寶殿)이라는 말처럼 부처님께 나 자신을 봉사해 그에 맞는 보상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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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불교 봉사로 돌파구 모색”
심리 분석가들은 중국 청년이 신을 찾고 부처님을 구하는 현상이 내면의 불안과 혼란을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사찰 자원봉사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자아 치료와 짧은 도피를 모색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광저우(廣州)의 심리학자 웨이즈중(韋志中) 박사는 “중국 젊은이들이 사찰 자원봉사에 몰리는 현상은 자기 봉사를 통해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는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웨이 박사는 “많은 젊은이가 불교 신자는 아니고, 종교적 이념으로 불교를 접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그들은 불교가 가르치는 자비의 영향을 받으면서 수행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스로 성장하며 타인을 돕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출로를 찾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박하면서도 막막한 현실 사회에 혼란스러워하는 중국 MZ세대에게 불교가 완충 작용을 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내려놓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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