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시인의 부활…"눈이 2개인 게 아쉽다" 입소문난 파격 공연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한국문학의 영원한 미궁’ 시인 이상(1910~1937)의 진짜 얼굴을 찾아가는 관객참여형(이머시브) 공연이 화제다.
이상의 가상 장례식을 그린 서울예술단 가무극 ‘꾿빠이, 이상’(작사 오세혁, 연출 오루피나)이 6년만의 두 번째 공연으로 전회차(12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김연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실험적 무대에 옮긴 2017년 초연이 입소문을 타며 2회 연장 공연까지 매진된 바 있다. 당시 예그린어워드 혁신상‧안무상‧무대예술상 3관왕을 차지했고, 오리지널 제작진이 다시 뭉쳐 9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시즌2에 돌입했다.
장례식서 부활한 천재 이상의 영혼
공연은 일본 도쿄에서 숨진 이상의 영혼이 자신의 장례식에서 깨어나 잃어버린 ‘얼굴’을 찾는 과정을 좇았다. 불가해한 천재, 광인, 모던보이, 불온한 사상가, 열렬한 연인, 그리고 본명 김해경….
이상이 남긴 무수한 정체성의 반영처럼, 이상 역할은 3명의 배우가 감각의 이상(이기완), 지성의 이상(이동규), 육체의 이상(김효준)으로 나눠 맡아 표현했다. 시인 김기림(리온), 소설가 박태원(이경민), 연인 금홍(박혜정), 후대의 추종자 서혁민(고석진), 연구가 피터 주(김보근) 등 13인의 증언이 분열된 ‘이상’을 더욱 조각낸다.
관객들도 똑같은 흰 가면에 얼굴을 감춘 채 조의금 봉투를 들고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는 장례식 공간에 조문객으로 참석한다. “나는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수많은 ‘나’가 있는 거요?” 이상의 절규가 바로 옆 관객의 귀에 그대로 와닿는다.
관객 가면 쓰고 조문객으로 참여
“이상의 세계관의 복잡함과 모호함을 잘 전달했다” “배우들이 사방에서 연기해서 눈이 2개인 게 아쉬웠다. 1번 보고 끝내긴 아쉬운 공연” 등 호평이 많다. 초연 때도 여러 번 봤다는 한 관객은 "조문객(관객)들이 쓰고 있던 데드마스크를 벗고 부고를 찢어 허공에 날려버리는 순간 자신을 속박하고 단정 짓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그 감각을 잊지 못해 재관람했다"는 평을 남겼다.
14일 전화로 인터뷰한 오루피나 연출은 “6년 만의 재공연이 저한테도 새롭게 다가왔다”면서 “최근 연출하며 서사를 중시하게 됐는데, ‘꾿빠이, 이상’은 서사보다 관객이 직접 느끼고 보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초연의 DNA와 고민 지점을 되살려냈다”고 말했다.
모호함 그 자체가 이상의 정체성
‘꾿빠이, 이상’은 이상을 섣불리 정의하지 않고 모호한 정체성 그 자체를 그의 정체성으로 인정한다. 이런 해석을 극의 내용과 형식에 고루 담아 관객에게 전하려 한 지점이 돋보인다. 사방을 주황색으로 칠한 공간이, 붉은 레이저 불빛을 천장에서 쏘아 만든 감옥, 이상의 시 세계를 활자의 파동처럼 담아낸 영상 등으로 차례로 물든다. 라이브로 공연되는 배경음악과 배우들의 움직임, 대사가 자아내는 운율감이 관객을 몰입케 한다. 낯설지만 신선하다.
Q : -공간의 주황색이 강렬하다.
“이상의 장례식이란 설정이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는, 관객을 압도하는 공간을 바랐다. 원작 소설 표지의 다홍색에서 착안해 더 위압적이고 변화무쌍한 주황색에 다다랐다.”
Q : -이상을 3명의 배우가 연기한다.
“이상은 멋있고 매력 있고 여자도 많은데, 그가 쓴 글이나 편지를 보면 목숨을 걸듯이 진지하고 조금은 허세스러운 구석이 있다. 유쾌하고 유희적이면서도 집중할 땐 하는 다양한 모습이다. 처음 초연 대본은 한 사람이었는데 작가한테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무용‧가극‧사물 단원 등 서울예술단 배우들의 장기도 살리고 싶었다. 이상 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분석하고, 고증에 치중하기보다는 각 배우의 재능과 해석에 따라 연기하게 했다.”
Q : -주제를 함축하는 장면을 꼽자면.
“배우들이 제각기 책을 높이 들었다가 내리면서 이상이 남긴 글귀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건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장면.”
20대 중반이던 2008년 뮤지컬 ‘록키 호러 쇼’ 연출로 데뷔한 오루피나 연출은 ‘킹아더’, ‘호프’, ‘그림자를 판 사나이’ 등 대극장 공연과 실험극을 오가며 활동해왔다. 그는 ‘꾿빠이, 이상’에 대해 "2017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국내에도 이머시브 공연이란 새로운 시도가 자리 잡던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라며 "요즘엔 이런 도전이 줄어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작품 수는 늘었지만, 다양해졌는가 생각해보면 아닌 쪽에 가깝다. 그래서 관객도 줄어든 것 같다. 창작자들이 더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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