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딸을 볼 수 없다는데... 이승으로 내려온 엄마의 결심

조영준 2023. 12. 1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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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42] 영화 <3일의 휴가>

[조영준 기자]

 
 영화 <3일의 휴가> 스틸컷
ⓒ (주)쇼박스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내 먼지가 돼도 개안타. 딸한테 개안타고 한 마디만, 딱 한 마디만 하게 해도."

죽은 지 3년째 되던 날, 복자(김해숙 분)는 3일의 휴가를 받아 이승으로 내려온다. 미국 유명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딸 진주(신민아 분)를 만날 생각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를 따라나선 가이드(강기영)가 지켜야 할 조건으로 말하는 것은 세 가지다. 살아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접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상대를 직접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이쪽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기억만 담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모습만 눈에 담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지키지 못할까?

문제는 딸이 머물고 있는 미국 땅에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던 복자가 자신이 죽기 전에 머물던 김천 고향집으로 보내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리움의 대상이 현재 지내고 있는 장소로 향하게 되는 천상 휴가의 특성상, 지금 고향집에 오게 되었다는 말은 딸 진주 역시 지금 여기에 있다는 뜻과 같다. 처음은 당황스러움, 다음은 복장이 터지는 답답함이다. 꼴을 보아하니 잠깐도 아니고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사주에도 없을 백반집 장사를 하면서, 그것도 자신이 생전에 만들어줬던 음식들로 요리를 하는 딸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사이 진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가족을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이 복잡해지고 마는 것은 서로가 쉽게 떨어질 수 없는 거리에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걸어 다니지도 못했을 무렵부터 받아온 무제한적인 사랑과 보살핌에 대한 부채감이,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해주지 못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미안함이 서로를 놓지 못하게 만든다. 그나마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모든 시간을 알지 못하고 또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대부분이 상대의 모르는 자리를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3일의 휴가>도 비슷한 결을 가진 작품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보편적인 사랑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다.

02.
영화는 단방향의 시선, 그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 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볼 수 없는 딸. 이 불균형한 구조를 통해 영화는 마주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필터를 제거하고 마음과 이야기의 형태 그대로를 인물들이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서로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상대의 현재 모습이나 과거에 대한 인물의 감정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시작에서부터 좋은 직장을 뛰쳐나와 시골집에 처박혀 있는 딸의 현재 모습에 대한 엄마의 울화가 가감 없이 표현될 수 있는 이유다.

여러 지점에서 과거의 회상 장면이 활용되는 것은 옛 기억을 추억하고 되짚어보는 인물의 행위가 반영하기 위함이다. 구조적으로 인물 간의 교류와 경험을 통해 에피소드를 형성할 수 없는 제한성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극 중의 두 화자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는 물리적 설정이 이 선택에 영향을 준다. 이를 조금 더 발전시킨 것이 과거와 현재가 여러 번 교차하는 오버랩의 지점이다. 영화 속 인물이 그러하듯이 우리 또한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그중에는 상대적으로 오래 머물게 되는 기억도 존재한다는 것을 영화는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인물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관계이며, 그 관계는 시간 위에서 발생한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컷
ⓒ (주)쇼박스
03.
영화의 이야기를 '대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극이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딸의 현재와 엄마의 과거로 이루어지는 대화와 정확히 반대로 딸의 과거와 엄마의 현재로 구성되는 대화, 그리고 엄마의 결심으로 인해 두 현재가 만나게 되는 마지막 대화다. 대화가 나열된 순서는 서로 알지 못했던 각자의 자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며 이해하지 못했던 상대의 마음과 입장을 조금씩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딸의 현재와 엄마의 과거, 딸의 과거와 엄마의 현재는 중심 화자에 따라 달라질 뿐, 교환되어도 문제가 없다). 여기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소재는 공통적으로 '외로움'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다. 엄마 복자가 갖는 외로움은 현재와 과거의 존재적 대비로 인해 시작된다. 역시 단일한 방향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존재이기에 눈앞에 보이는 딸과 대화를 하거나 접촉할 수 없다는 설정은 생전에도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과 교차하며 아이러니한 상황을 이끌어낸다. 딸이 자신을 볼 수 없는 현재만큼이나 외롭던 과거의 자리에 대한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그의 바로 곁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나 둘 펼쳐지고 떠올려지는 엄마의 기억 속 자신의 모습은 외로움을 버티고 서 있는 인물이다.

한편 딸 진주의 외로움은 홀로 간직해 온 비밀과도 같은 감정이다. 어린 시절 작은 삼촌의 집에 맡겨져 엄마와 오래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시간과 재혼한 엄마를 만나러 갔던 때에 마주해야 했던 속상하고 슬픈 장면은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 감정을 밖으로 꺼낼 수도 없게 했다. 오래 묵은 외로움이 미움으로 바뀌고, 그 미움은 엄마를 외로움 속에 방치하도록 만드는 기저가 된다. 어느 누구의 외로움이 먼저인지 알지 못한 채, 서글픈 악순환 속에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곧게 자라나 버린 것이다.

04.
"벌주는 거야 나한테.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그마저도 늦어서 차가운 냉동고에 이틀이나 더 있게 만들었어."

지금 진주의 시간이 안고 있는 모든 것은 그래서 그녀의 오롯한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과거가 원인이라면 현재는 그 결과에 가깝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공백을, 그 부재의 자리를 이제와 자신의 온몸으로 채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딸은 엄마의 흔적을 이 시골집에서 어루만지고 또 들이마신다. 언젠가 꿈에서라도 한번 엄마를 마주하리라는 믿음을 안은 채로. 규칙을 위반하면서까지 딸과 직접 마주하고자 하는 복자의 행동은 그래서 안타깝다. 생전에 놓인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무책임과 외면 때문이 아닌 나름의 노력과 인내로 인한 것임을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영화는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기억 속에서 딸이 잊혀진다는 다소 가혹한 페널티를 선언한다. 정확히 언제가 또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는 딸을 만나러 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먼 훗날 딸이 생을 다하고 하늘로 올라오더라도 알아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되돌리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누군가에게 건네는 사과와 위로의 행위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알게 만드는 대목이다. 감정적 이해와 전이의 영역이 규칙과 이치의 당위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법이다.
 
 영화 <3일의 휴가> 스틸컷
ⓒ (주)쇼박스
05.
"나중에 내가 니 이자뿌도 날 차자 온내이."

영화의 중반부 즈음에서 진주는 마을 어르신들께 잔치 국수를 만들어 대접한다. 엄마 복자의 집을 팔지 않는 자신 때문에 마을에 골프장이 들어오지 못한다며 항의를 하던 때다. 이 작품을 다시 생각하면 꼭 그 장면이 떠오른다.

크게 필요한 내용물은 없어 보이지만 나름의 애가 쓰이고, 다소 평범하고 심심해 보이지만 한 끼의 따뜻한 식사가 충분히 가능한 음식이다. 영화 속 어르신들도 그녀가 엄마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국수를 먹고 조금 성나 있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 작품 <3일의 휴가>가 꼭 그렇다. 무해하고 온기로 가득 찬 3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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