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랭하게 말 한마디 없이 골프 진행한 사연 [정현권의 감성골프]
유일한 경쟁자였던 다른 동반자가 OB구역 근처로 날린 공을 찾느라 아직 두 번째 샷을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멀리서 공을 찾았다며 두 번째 샷으로 절묘하게 핀 근처에서 버디 찬스를 잡았다.
순간 첫 상금을 노리던 동반자 얼굴이 변하면서 불신의 눈초리로 상황을 주시했다. 원구가 맞는지 경쟁자에게 재차 확인했다.
결국 둘 다 버디에 실패하고 상금은 자연 다음 홀로 이월됐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싸한 침묵이 돌았다.
상금을 한 번도 건지지 못한 동반자는 사그라지지 않은 석연찮은 마음, 공을 찾은 동반자는 의심 받았다는 억울한 마음에 퍼트를 놓친 것 같았다. 캐디마저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면서 묘한 분위기가 전반 내내 흘렀다.
공에 마크를 하지 않고 경기를 진행한 결과이다. 친한 사람끼리는 공 브랜드와 번호, 그리고 마크를 동반자들에게 잘 공지하지 않는다. 그냥 티잉 구역에 올라 티샷을 한다.
내기가 붙었을 때는 자기 공에 마크하고 동반자에게 공개해야 미연에 불상사를 없앤다. 프로대회에선 이를 확실히 하지 않고 진행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벌타투성이에 자칫 실격까지 당한다. 2022년 윤이나 선수도 미리 공개했으면 투 벌타로 끝날 일을 침묵하고 진행했다가 3년간 출전 정지라는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티샷을 하기 전 티잉 구역에 올라 공 브랜드와 번호, 그리고 마크 모양까지 알린다면 골프 정신에 충실한 골퍼이다. 잠정구를 치겠다고 말하면서 원구와 다르게 마크한 공을 사용한다면 철저하게 골프를 배운 사람이다.
원구와 비슷한 방향으로 날아갔을 때 발견된 공이 원구인지 잠정구인지 쉽게 식별하려고 미리 마크를 다르게 한 것이다. 마크를 같은 형태로 했다면 원구인지 잠정구인지에 따라 2타 정도 차이가 난다.
두 공 모두 마크를 하지 않았다면 발견된 공이 앞 팀이 치고 잃어버린 공일 수도 있다. 타이틀리스트 1번 공이라면 동반자의 원구도 잠정구도 아닌 다른 사람 분실구(로스트 볼)일 가능성도 있다.
두 공 모두 까만 점 4개를 찍었다면 찾은 공은 잠정구, 원구는 분실구로 처리한다. 이때는 골퍼에게 불리하게 규칙을 적용한다.
같은 브랜드, 같은 번호 공을 사용하면 반드시 다르게 마크하는 게 현명하다. 새로 골프공 한 박스를 열었다면 집에서 미리 몇 개를 골라 다른 모양으로 마크해서 골프장에 나온다. 아니면 번호를 섞어서 사용한다.
마크는 다른 동반자 공과 구분해서 오구플레이를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오구는 스트로크플레이에서 2벌타, 매치플레이에서는 해당 홀에서 무조건 패한 것으로 처리한다.
공을 찾더라도 쉽게 식별해 바뀌지 않도록 한다. 친선 골프에선 별문제 삼지 않지만 실력을 늘리고 동반자를 배려하기 위해서라도 마크 습관을 가지면 좋다.
골프공 마크는 개성에 따라 다르다. 심플하게 점 하나만 찍거나 아니면 둘 셋 넷까지 늘려나간다. 라이너를 사용해서 세 줄을 긋는 사람도 있는데 공을 여러 개 마크하다 보면 이것도 노동이다.
캘러웨이는 트리플 트랙이라는 세 줄(삼선) 공을 출시했다. 볼빅은 V-포커스라인은 5선까지 시도했는데 가운데 굵은 선 양쪽에 두께가 서로 다른 2선을 배치했다.
공을 빌려서 사용할 게 아니라면 본인만의 개성을 살린 마크도 해볼 만하다. 캐릭터를 살린 볼 마크는 소소한 재미와 활력을 준다.
줄, 점, 리본, 하트, 이니셜, 캐릭터 등 다양한 형태로 본인 취향에 따라 마크한다. 골프공 스탬프를 사용해 쉽게 처리해도 된다.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마크한 공을 사용하면 애정이 깃들어 플레이에 신중하게 임하는 효과도 있다.
고수들은 세컨드 샷을 마치고 카트로 이동하는 여유 동안 마크를 한다. 18번홀까지 정신없이 치고 뛰어다니는 초보는 마크할 시간이 따로 없어 골프장에 오기 전에 미리 해놓는 게 낫다.
필자의 한 동반자는 OB구역에 공을 찾으러 갔다가 누군가 홀인원 기념 마크를 한 공을 주웠다. 다음 홀에서 그 공으로 홀인원을 하는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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