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과 말다툼 10시간 뒤 사망…'이 병'이 그만큼 무섭다
20~30대 혈관 건강 사각지대
젊은 고혈압·당뇨병 환자 느는데
당장 불편 없어 적극 관리 안 해
심근경색·뇌졸중 등 합병증 불러
박중근(가명·37)씨는 지난달 퇴근길에 식은땀과 가슴이 타는 듯한 속 쓰림이 심해 병원에 갔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힌 급성 심근경색증이었다. 혈관을 넓히는 응급 수술을 받았다. 박씨는 당시 혈압이 160/100㎜Hg로 고혈압이었다. 정상 혈압은 120/80㎜Hg이다. 혈관 건강도 나빴다. 중성 지방 수치가 310㎎/dL(정상 150㎎/dL 이하)였다. 그간 회사 건강검진을 통해 혈압이 높다는 건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건강 습관을 실천하려고는 했으나 배달 음식과 외식 빈도는 줄지 않았고 신체 활동은 부족했다. 체중은 올해에만 5㎏이 늘어 키 173㎝에 79㎏으로 비만이다.
박씨처럼 혈관 건강이 나쁜 20, 30대가 흔하다. 30대 남성 2명 중 1명, 여성 4명 중 1명은 비만이다. 지난해 고혈압 치료를 받은 30대는 21만5000여 명이다. 20대 고혈압·당뇨병 진료 환자는 10년 새 각각 1.8배, 2.2배 증가했다. 전 연령 평균(고혈압 1.4배, 당뇨병 1.6배)보다 높다.
젊은 세대는 혈관 건강이 악화하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데 무심한 편이다. 여러 지표에서 드러났다. 20대는 식습관이 큰 문제다. 과일·채소를 멀리하고 기름진 음식을 가까이한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22)에 따르면 과일·채소를 500g 이상 섭취하는 20대 남성과 여성은 각각 15%, 9.6%다. 전 연령 평균(남성 33.9%, 여성 29.6%)보다 한참 낮다. 또 20대 남성 3명 중 1명, 여성 2명 중 1명은 지방이나 포화지방을 과잉으로 섭취한다.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윤종찬 교수는 “20, 30대 학생·자영업자는 국가 건강검진이 의무가 아니라서 검진 자체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검진이 있다 해도 바빠서 결과를 잘 안 챙기는 경우가 있다”고 봤다.
20대 당뇨병 진료 10년 새 2.2배 늘어
30대는 고혈압·당뇨·고콜레스테롤혈증이 와도 병을 인지하고 치료하는 사람이 적다. 30대 고혈압 환자 4명 중 3명은 본인에게 고혈압이 있는 줄 모른다. 자각 증상이 있어도 의사에게 진단받지 않았다.
치료율은 더 떨어진다. 고혈압이 있는 30대 5명 중 1명(18.7%)만 꾸준히 치료받는다.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율은 남녀 모두 10%대에 그친다. 당장의 불편함이 없어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바쁘다며 치료를 미루고, 식사와 운동으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생활습관 개선은 필수이나 스트레스와 굳어진 습관 탓에 엄격히 조절하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 문제다.
박정연(가명·여·34)씨는 나쁜(LDL·저밀도지단백) 콜레스테롤이 190㎎/dL로 위험 수준이다. 고LDL 콜레스테롤혈증(LDL 콜레스테롤≥160㎎/dL)에 속한다. 박씨는 외가 쪽에 고혈압·협심증 가족력이 있다. 주 2회 이상 술을 마시고, 흡연자다. 의사가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생활습관을 개선하라고 권했지만 ‘약 먹는 건 부담스럽다’며 망설이고 있다. 윤 교수는 “젊은 환자들은 3~6개월 생활습관 개선 노력을 해본 뒤 후속 조치를 상담해야 한다. 혈압·혈당·콜레스테롤이 여전히 높고 경동맥 초음파에서 동맥경화가 있음을 확인하면 약 복용이 필요함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른 나이부터 혈관이 고생하면 심근경색과 뇌졸중 같은 심각한 합병증 위험이 커진다. 병을 관리하지 않으면 동맥경화성 질환이 생기고 그때가 돼서야 심근경색·뇌졸중이 돌연 덮쳐 온다. 사회활동이 왕성한 40, 50대부터 수십 년을 합병증을 갖고 살아가야 할 수 있다. 돌연사를 부르는 원인이기도 하다.
40대부터 수십 년 중증 합병증 시달려
7년 전 고혈압을 진단받은 45세 남성이 부인과 말다툼 후 집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응급실 도착 10시간 만에 사망했다. 고혈압 때문에 뇌출혈이 발생한 게 원인이었다. 44세 남성은 심정지 상태로 이송됐는데, 30분간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반응하지 않아 사망 선고됐다. 이 환자도 7년 전 고혈압 진단을 받았는데, 평소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전날 두통이 있어 진통제를 먹고 잤는데 다음 날에 일어나지 못했다. 고혈압에 따른 뇌출혈로 뇌압이 증가하면서 구토한 흔적이 있었다. 방 안에 쓰러져 의식 없는 상태로 발견된 36세 여성은 뇌동맥류 파열에 따른 뇌출혈로 확인됐고, 결국 사망했다. 환자는 약 1주일 전부터 두통이 있어 진통제를 복용했으며 발견 전날에는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두통이 심했다고 했다.
2021년 급성 심근경색과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실려 온 30대는 3500여 명, 40대는 1만600여 명이었다. 심근경색증과 뇌졸중이 발생하면 5명 중 1명은 1년 이내에 사망한다. 이른 나이 돌연사는 애초에 고혈압·동맥경화증 등 심혈관 질환이 있었음에도 본인이 질환을 자각하지 못했거나 관리 안 한 경우가 많다. 전조 증상이 나타나도 잘 모르고, 병원 진료를 꺼리다 골든타임을 놓친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으면 경계선에 있는 수치여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질환을 예방할 기회다. 30대에서는 고혈압 전 단계(남성 35.9%, 여성 10.4%)와 당뇨병 전 단계(남성 40.8%, 여성 27.1%)도 많다.
혈관 숫자에서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건 건강식을 안 챙기고 신체 활동이 부족한 것과 관련 깊다. 금연·절주하고 운동하면 중성지방이 확 떨어진다. 다만 높은 LDL 콜레스테롤은 비만보다는 몸의 대사가 좋지 않은 것과 관련 있다. 어릴 때부터 과음·흡연 등으로 체내 콜레스테롤 대사가 변하면 되돌리기 어려워진다. 가족력과도 밀접하다.
가족력이 있으면 심뇌혈관 질환 위험도를 평가해 약 복용을 결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다. 특히 젊은 당뇨 환자는 다른 연령대보다 더 엄격히 조절해야 한다. 당뇨병은 수십 년 후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어서 연령대별 치료 전략이 다르다. 윤 교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높은 혈압·혈당에 오래 노출되는 것이 이른 나이에 심장과 콩팥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지금 관리해야 20년 뒤 후회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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