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관심 싸늘히 식는다… ‘겨울 전쟁’ 살얼음판 우크라

신창호 2023. 12. 1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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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마스 전쟁에 묻힌 우크라전
올해 2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도네츠크 전선 인근 기지를 향해 행군하는 모습. 다시 겨울이 찾아왔지만 전선은 여전히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6일 미국 의회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제출한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안을 부결시켰다.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겉으로는 우크라이나 지원이 절실하다며 공화당의 반대에 저항하고 있지만 지난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미국으로 초청해 상하원 합동연설까지 하게 했던 때보다는 상당히 소극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2월 초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1년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으로 인해 점점 더 국제사회로부터 ‘잊혀 가는’ 형국이다. 전쟁 초기 폭주할 정도였던 미국과 서방의 무기지원은 끊기기 일보 직전이고 전황도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아무리 지원해도 나아진 게 없다

외신들은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앞으로 우크라이나와 더 거리를 둘 공산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바로 내년 11월로 예정된 대선 때문이다. ‘두 개의 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피로감이 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데 적극적이거나 전향적인 자세를 더 이상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 정치권과 유권자들은 “그동안 온갖 무기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미국의 이익이 개선된 게 있느냐”는 식의 냉정한 계산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0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과 함께 실시한 미국인 유권자 1004명 대상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미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재정 지원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48%에 달했다. 적절하게 지원한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7%밖에 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에 반대하는 쪽이 대세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과 미국인의 관심권에서 멀어지는 데는 지난 10월 7일 터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제출한 1050억 달러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이스라엘 공동 지원안을 두 개로 쪼갠 다음 이스라엘 지원안만 통과시켰다.

지금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보다 이스라엘에 더 큰 관심을 쏟는다. 중동 정세 격화가 불러일으킬 파장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력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 또 아무리 지원해도 우크라이나 전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판단 이 두 가지 때문이다.

서방 국가 사이에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막대한 안보비용 지출에도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요원하며,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돕는 민주주의 진영의 정치·경제적 비용 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상당한 후폭풍을 맞고 있다. EU를 주도해 온 독일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이 뚝 끊기자 최악의 경제난을 겪으며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역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네덜란드와 슬로바키아 등은 극우 정당의 득세로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마저 암울해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얼마 전에는 EU 회원국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국인 불가리아와 헝가리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두 개의 전쟁’ 구조 속에서 평화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갈수록 힘을 얻는 모양새다. 만약 평화협상이 열린다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불가침조약 체결 및 전쟁 배상금 확약 등을 전제로 빼앗긴 영토를 포기하는 굴욕적인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대반격 실패에 내부 분열 양상도

장기화된 전쟁 속에 우크라이나 국민과 병사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 등에 집중적인 탄도미사일 공격을 가해 추위와 공포를 무기화했다.

전황은 올해 초 상황에서 한 발짝도 좋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대대적인 ‘겨울 공세’를 장담했던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장악한 돈바스 지역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남부 헤르손주도 탈환하지 못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최근 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이 점령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6월 시작한 대반격 작전은 러시아군의 견고한 방어에 막혀 좌절됐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1일 BBC 인터뷰에서 대반격 작전에 대해 “희망은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며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사람들은 때때로 실수한다. 평생 A학점만 받을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자신들이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봤었다고 털어놨다. 다만 “2년 동안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은 이미 큰 승리”라고 자평했다.

러시아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사상자는 최소 23만명으로 추정되고, 우크라이나군은 개전 이후 러시아군의 인명 손실을 약 33만명으로 평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도부의 분열 양상도 목격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목표 달성을 위해 ‘중단 없는 전진’을 강조하고 있지만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은 냉정한 상황 인식을 기초로 ‘전략적 방어태세로의 전환’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전쟁 초기 90%를 기록했던 젤렌스키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40%대로 곤두박질쳤다. 대반격 작전 실패와 전쟁 장기화에 따른 우크라이나 국민의 불만이 젤렌스키 대통령으로 향하는 형국이다. 서방의 군사지원과 자금줄마저 가로막히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더욱 위태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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