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가슴에 품고 살 편지 하나

2023. 12. 16.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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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을 때다.

내게는 그 가운데 하나가 아내의 편지다.

어찌 그럴 수 있는지. 때로 미안합니다.

아내의 이런 정성스러운 편지와 달리 내 편지는 고작 몇 줄일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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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을 때다. 그의 호주머니에서 유품 셋이 발견됐다. 링컨의 이름을 수 놓은 손수건 한 장, 시골 소녀가 보내준 주머니칼, 그리고 링컨을 칭찬하는 기사의 신문 한 조각이었다. 내가 만약 뇌졸중으로라도 쓰러진다면 유품은 무엇일까를 헤아려 보았다. 내게는 그 가운데 하나가 아내의 편지다.

“기억합니다. 열등감이 나를 얽어매어 거북이 몸처럼 웅크린 채 내 속에 숨어 있었던 때를….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내가 있음을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을 때 재능 있다며, 할 수 있다며 잡아끌던 당신의 손을 붙들고 한 발 한 발 의심하며 발걸음 내딛던 순간을, 못 하겠다 도망치며 손길 뿌리칠 때도 한결같은 지원 거두지 않고 기다려주던 당신.

작은 성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내 일처럼 기뻐해 주며 덤벙대는 내가 저지르는 수많은 실수를 말없이 뒤치다꺼리해주면서도 생색 한 번 내지 않던 당신. 갱년기의 팽창한 자아가 혼자 자란 듯 잘난 척하며 당신의 수고를 망각할 때도 당신은 여전히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때로 신기합니다. 어찌 그럴 수 있는지…. 때로 미안합니다. 어찌 그런지….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줘서 길게 오래 살아주십시오. 받은 은혜보다 갚을 은혜가 더 많습니다. 길게 오래 살겠습니다. 그래서 착하고 선한 당신을 즐기며 더 닮고 싶습니다. 5월 15일 나의 스승이자 영원한 멘토인 송길원에게 아내 김향숙 드립니다.”

아내의 이런 정성스러운 편지와 달리 내 편지는 고작 몇 줄일 때가 많았다. ‘착한 향숙이를 더 많이 인정하기’ ‘작은 말의 덫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밥 잘 챙겨 먹어 걱정 안 끼치기’ ‘더 많이 소소한 표현으로 다가서기’ ‘저녁에는 환한 미소로 들어서기’ ‘잠들기 전 당신을 위해 기도하다 잠들기.’

언제나 우리가 이런 세월만을 보냈겠는가. 서로 ‘다른 것’ 때문에 좌절하고 한숨짓고 포기하고픈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MBTI로 말하면 우리 둘은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다. 성격 유형만이 아니다. 싸우면서 닮는다고 아내는 장모님의 고집스러운 모습 그대로이고 나는 내 아버지의 그 몹쓸(?) 성질을 빼닮았다. 그놈의 유전자는 왜 그리도 모질고 질긴지. 그러다 버럭성질이 됐고 서로 쪼잔이와 삐질이로 살았다. 오죽하면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을까.

이런 나를 수렁에서 건져낸 것은 언제나 아내의 편지였다. 아내는 말보다 글을 쓴다. 푹 내지르는 말보다 발효의 시간을 거친 편지가 나를 돌아보게 했다. 글 속에 담긴 변함없는 존경의 표현이 나를 흔들었다. 편지 끝에 내가 내린 다짐이 있었다. ‘배신 때리지 말자!’ 내 인생 8할은 아내의 편지가 준 선물이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서둘러 편지를 쓴다. 이번에는 내 편지가 길어야 한다. 기왕이면 명문으로.

“여보, 당신이 내게는 신비인 거 알아? 40년을 줄기차게 연구하고 연구했는데도 여전히 당신을 모르겠다는…. 나에게 상상력과 탐구심을 가져다준 당신, 정말 고마워요. 서로 다른 우리가 여태 헤어지지 않고 산 것 자체가 예술이 아닐까? 나는 어느 날 메리 올리버의 시가 당신과 나의 마음임을 알았어요.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다/ 평생 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 평생 나는 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죽음이 찾아오면’ 중에서)” 명문은 고사하고 길이를 고민한다. 나의 ‘커튼콜’이다.

추신: 여보, 사과할 것이 하나 있어. 언젠가 덤벙대는 당신이 여행길에서 내 무좀약으로 양치질했던 일. 그날 홀로 잠 못 자며 통쾌해 했던. 이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무좀 다 나았어. 그리고 약속할게. 앞으로 칫솔 바꾸어 썼다고 시비 걸지 않을게. 나, 하나 됨의 ‘신비’에 눈 떴거든. ‘No Rain, No Flowers(비를 맞아야 꽃이 핀다).’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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