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선 굶어죽고 한쪽선 버려지고… 음식물 선순환 필요성 절감”
9억3100만t. 유엔환경계획(UNEP)이 2021 ‘음식물 쓰레기 지표 보고서(Food Waste Index)’를 통해 세상에 알린 버려지는 음식물 양이다. 40t짜리 트럭 2300만대를 채울 수 있는 양이자 트럭을 줄지어 세우면 지구를 7바퀴 돌 수 있는 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거대한 양의 음식물 쓰레기가 생명의 터전인 지구를 아프게 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을 온실가스라고 하면 자동차 매연이나 공장의 굴뚝 연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지구 전체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가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버려지는 것이 손실로 끝나지 않고 다시 활용된다면?’ 이 같은 가정을 음식물에 접목해 국내 최초로 ‘푸드 업사이클링’ 기업을 세운 사람이 있다. 민명준(37) 리하베스트(RE:harvest) 대표다. 최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과거 유명 회계법인 컨설턴트로 일하던 시절 얘기를 들려줬다.
“기업 컨설팅 업무를 맡으면서 해외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르완다 출장을 다녀오던 길이었어요. 르완다에선 분명 ‘굶어 죽겠다’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경유지로 들렀던 두바이의 한 식당에선 매일 700㎏씩 음식 부산물을 버리고 있더군요. 마치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선순환.”
번개처럼 튀어 올랐던 통찰이 곧장 실행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민 대표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과정을 하나 더 거치고 나서야 결단이 섰다”고 회상했다. 그가 말한 과정은 내려놓음이었다.
“20대 때부터 10년여를 컨설턴트로 살아오며 쉼 없이 달려왔는데 2017년 덜컥 대장에서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부랴부랴 휴직하고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는데 죽마고우 친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그 친구가 죽기 전 해줬던 말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일만 했으니 이제 원하는 걸 찾아보라는 말이었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업을 꿈꿨던 대학 시절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선순환’이란 단어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결단이 실행으로 옮겨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2019년 국내에선 불모지였던 업사이클링 시장의 문을 열었다. 리사이클링이 사용한 제품을 동일한 가치로 다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업사이클링은 폐기물을 활용해 더 나은 가치의 생산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 산업에선 폐차 후 발생하는 고철을 이용해 새 차를 생산하는 선순환이 자리 잡았지만 식품 산업에서 음식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은 대부분 버려지고 있었다.
민 대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귀한 자원을 헛되이 쓰지 않고 온전하게 활용하면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창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다시 수확하다’는 의미를 담은 기업 리하베스트는 활용 기술이 없어서 버려지던 수백만t의 부산물들을 가공해 새로 활용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초기엔 오해도 많이 받았다. ‘부산물? 음식물 찌꺼기로 음식을 만든다고?’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 대표는 뚝심 있게 설명과 설득을 이어갔다. 핵심은 음식물 찌꺼기와 부산물의 개념 차이를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참기름 들기름 짜고 남은 부산물엔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합니다. 이제는 식탁에서 익숙해진 즉석밥 제품들을 생산할 때 도정을 하고 남은 쌀겨도 쓸모가 많죠. 푸드 업사이클링 개념이 생소하다 보니 식약처 환경부 국세청 등 다양한 정부 부처의 협조도 필요했어요. 각종 규제를 풀기 위해서 식혜 부산물로 먼저 상품을 만들어 쉴새 없이 찾아가고 설명을 반복했습니다. 꼬박 9개월이 걸려 사업 모델 승인이 나왔는데 그때 감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리하베스트가 독자 개발한 보리 기반의 부산물 가루(BSG)는 이미 밀가루 대신 ‘리너지(RE:nerge) 가루’라는 이름으로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다. 식사 대용 제품으로 출시한 ‘리너지바’도 건강식 단백질바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민 대표는 “일반 밀가루보다 식이섬유가 18배, 단백질은 1.4배 많이 함유돼 있고 칼로리는 30% 적어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을 때 리너지가루로 만든 음식이 더 맛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리하베스트가 의미 있게 바꿔 갈 세상은 기업 밖에만 있지 않다. ‘영향력 있는 기업은 존재 전과 후에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민 대표의 철학이 일터에도 녹아있다. 단순한 사회적 기부보다는 장애인을 채용하고 동역하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도 그중 하나다.
리하베스트는 ‘사랑의 새싹’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제품을 검수하고 소분한다. 민 대표는 “여전히 사회적 소외계층이 정당한 노동에서 배제되는 게 현실”이라며 “누구나 차별 없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게 리하베스트의 또 다른 목표”라고 설명했다.
기업을 운영하고 미래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과정엔 상상 이상의 통찰이 필요하다. 크리스천 영쎄오(CEO)로서의 지향점을 묻자 민 대표는 책 한 권을 꺼내 보여줬다. 회사와 가정에서 위기에 직면한 한 주인공이 수도원에 머물며 새로운 삶의 자세를 발견하는 내용을 담은 ‘서번트 리더십’(제임스 C 헌터)이었다.
“리더십의 본질은 ‘사랑’에 있습니다. 그 안에 인내 겸손 존중 정직 헌신 등이 모두 포함돼 있죠. 그 본질을 바탕으로 구성원들과 리하베스트를 운영해가는 게 맡겨진 소명이라 믿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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