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지는 아동친화도시 인증…“도시의 진짜 문제를 찾아라”

문정임 2023. 12. 1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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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지속 가능 꿈꾸는 ‘아동친화도시’(하)]
아이들이 행복한 도시가 되려면
아동 참여·지자체 특색 반영 관건
제주 하원초 1~2학년 어린이들이 지난 3월 이른 봄에 흔히 볼 수 있는 로제타 식물에 대해 배우고 있다. 제주도교육청 제공

2013년 서울 성북구가 우리나라 제1호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은 이후 현재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119개 지방자치단체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로부터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거나 추진 중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시군구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많은 지역이 앞다퉈 아동친화도시 인증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인증 기준이 제도 개선에 집중되면서 아이들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시 공간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이 과정에 아이들을 동참시켜 만족도 높은 아동친화도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아동친화도시가 유행처럼 번지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해 제기되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10년 만에 평가지표를 개정하면서 ‘도시공간’ 항목을 신설했다.

신규 지표는 ‘아동친화적인 공간 계획’과 ‘환경 개선’이다. 놀이·문화공간, 녹색 환경, 거주 환경, 안전 취약 환경을 각각 개선하고, 아동친화적인 공간은 아동 참여를 통해 조성하도록 했다. 아동 참여 절차에 대한 평가도 진행하겠다고 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2013년 첫 아동친화도시 인증 이후 처음 평가 기준 손질에 나선 것은 기존의 지표가 제도 개선에 집중돼 일상에서 아동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도 아동친화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2019년 아동친화도시 조성 조례를 제정하고, 같은 해 아동친화팀을 신설했다. 2020년 아동친화도시 인증 신청을 하는 등 평가 기준에 맞춰 하나씩 단계를 밟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많은 지자체가 아동친화도시 이름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엇비슷하고, 기존에 진행해오던 아동·청소년 사업의 연장 선상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아동친화도시가 성공하려면 유행처럼 기준만 맞춰 인증 받으려 하기보다, 지역 아동의 욕구를 반영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추진 과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4월 월랑초 병설유치원 어린이들이 찾아오는 자연 놀이 수업을 듣고 있다. 제주도교육청 제공


제주의 상황은 어떨까.

2020년 발표된 ‘제주도 아동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아동실태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 결과를 보면, 제주지역 아이들이 가장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시설은 ‘도서관과 문화시설’로 나타났다.

총 750명의 조사 대상 아동(만10~18세) 가운데 응답자의 14.5%가 ‘동네에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없다’, 15.6%는 ‘동네에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8%는 ‘집 근처에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운동장이나 놀이터가 없다’, 3.2%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내가 운동하고 놀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방과 후 머무는 곳’은 48.1%가 ‘집’, 30.8% ‘학원’이었다.

초등학생의 경우 ‘방과후 혼자 있다’고 응답한 아동이 25.3%에 달했다.

‘제주도정이 아동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에 대해선 42.8%가 ‘아동정책 수립 시 아동 의견 반영’이라고 응답했다.

‘아동 정책 수립에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21.9%가 ‘있다’고 답했다.

아동·청소년과 관련한 제주지역의 또 다른 특성은 전국 통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제주도는 아동·청소년을 비롯해 전 연령대 비만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중고생 비만율은 지난해 16.7%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2013년 이후 줄곧 1위를 나타내고 있다.

자살률도 높다. 2019년 청소년(9~24세) 자살자 수가 10만 명당 16.3명으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많았다. 학교 폭력을 당하거나 교우관계, 가정 환경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이 많다는 뜻이다.

제주도는 맞벌이 가구 비율이 높다. 특히 출근시간이 빠른 1차산업 종사자와 퇴근 시간이 늦은 자영업자가 많아 아이들이 일상 불균형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도시 여건은 어떨까.

전국에서 가구당 자동차 등록대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도로포장률은 99.1%에 이른다. 도로연장 대비 가로수 식재율은 1%를 밑돌아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야영장이나 공공도서관, 자연휴양림 등 공공 공간에 설치된 놀이시설은 미미하다.

이는 보행 환경이 열악하고,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릴 공간이 도시 전체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현재 제주도는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도시 환경 조성을 첫째 목표로 아동친화도시 전략 과제를 수립 중이다.

제주도의 아동친화도시 정책이 아이들의 일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세밀한 시행 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여러 지표들은 제주도 아동친화 정책의 방향을 알려준다.

제주도 아동친화팀 관계자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인증 기준을 개정하면서 도시 환경을 어떤 방식으로 개선할지, 아동 참여 비율과 비중은 어느 정도로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며 “제주 아이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내실있게 제주형 아동친화도시 정책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끝<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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