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노부부의 마당개 호두, 쇠목줄 벗던 날 [개st하우스]

이성훈,전병준 2023. 12. 1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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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부부의 마당 개로 살아가던 3살 사모예드 호두가 구조자인 동물단체 하이 조영수 대표와 교감하는 모습. 전병준 기자

“어르신, 마당 개가 새끼를 4마리나 낳았네요?” (동물단체 하이, 조영수 대표)
“1년에 두세 번씩 그래. 더 낳기 전에 어미랑 다 갖다 치우려고.” (경기도 파주, 70대 견주)

지난달 30일, 영하 9도의 강추위가 덮친 경기도 파주의 한 마을. 단독주택 앞마당에서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을 가리키는 신조어) 어미 개 한마리가 꽁꽁 언 물그릇을 물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목이 마른 4마리 새끼들을 위해 얼음을 깨려는 모양입니다. 잘그락잘그락. 어미 개가 힘을 쓰자 1m 남짓한 쇠사슬이 부딪쳐 시끄러운 소리를 냅니다.

동물단체 조영수 대표가 출산한 마당 개를 살펴보는 모습. 조 대표는 견주를 찾아가 반복되는 번식을 예방하도록 중성화 시술을 당부했다. 구청에 신청하면 최대 40만원의 중성화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성훈 기자


엄동설한에 추운 마당에 쇠사슬로 묶인 마당 개 가족. 안쓰러워 보이지만 그나마 이 가족은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몇 달 전 태어난 동배들은 마을을 떠돌다 유기동물로 신고돼 보호소로 잡혀갔으니까요. 지금쯤은 대부분 안락사됐을 겁니다. 사실 매년 발생하는 10만 마리 넘는 유기동물 중 60%는 이런 마당 개의 새끼들입니다. 의도적 유기라기보다는 방치견에 가깝지만 모두 유기견으로 분류됩니다.

동물단체 하이의 조영수 대표는 마당 개들의 대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치된 마당 개들을 돕고 돌보는 게 조 대표의 일이거든요. 무거운 쇠사슬 대신 가볍고 긴 와이어줄을 달아주고, 중성화 수술을 받아 번식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견주를 설득합니다. 중성화야말로 번식의 악순환을 끊어 유기동물 60% 이상을 예방하는 사회적 해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조 대표가 중성화 수술을 받도록 도운 마당 개는 70여 마리.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 쓰이는 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중성화 캠페인 도중 견주가 치매로 쓰러지면서 홀로 마당에 남겨진 30㎏의 대형 사모예드 호두입니다. 직접 쇠목줄을 벗겨주고 동물병원에 안고 갔던 호두가 시보호소로 끌려가는 상황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조 대표는 사비를 들여 현재 호두를 위탁보호처에 맡긴 상태입니다. 조 대표는 “구조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태 호두에게 가족을 이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마당 개 호두에게 행복한 견생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유기견 8만 마리…80%는 시골 잡종인 이유는?

조 대표는 1년 전 서울 노원구 재개발지대에서 서울시가 의뢰한 유기견 예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동물단체 하이와 동물구조119, 한국성서대 등이 참여해 중성화를 지원하는 서울시 프로젝트. 타깃은 마당 개였습니다. 짧은 쇠줄에 묶여 사는 수백 마리의 마당 개는 유기동물이 늘어나는 주요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동물단체들은 마당 개 중성화만 제대로 해도 연간 발생하는 유기동물 11만 마리의 60%가량은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당 개만 관리해도 유기동물이 3분의 1로 줄어든다니. 사실일까요?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보호시스템(APMS) 통계에 따르면 연평균 유기동물 11만여 마리 가운데 유기견은 8만 마리쯤이고 이중 대략 80%가 진도 믹스견입니다. 추측하건대 시골 마당 개가 낳은 새끼들입니다. 개는 임신기간이 60일에 불과해 한 마리의 마당개는 연간 20마리 넘는 새끼를 낳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 시골 마당 개만 잘 관리해도 유기견의 상당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 동물자유연대가 분석한 최근 2년간 유기견 견종 추이. 약 80%는 비품종견으로 대부분 방치된 마당 개, 떠돌이 개의 새끼가 보호소에 잡혀온 경우로 추정된다. 전병준 기자


그래서 시작된 게 2017년 서울시의 마당 개 중성화 프로젝트입니다. 서울시가 예산을 제공하고 동물단체가 견주들을 설득해 마당 개들을 동물병원으로 후송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견주들을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초창기 마당 개 중성화에 동의한 견주는 200가구 가운데 50여 곳에 불과했습니다. 조 대표는 “주민 다수는 중성화 수술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며 거부했다”면서 “견주를 설득하기 위해 10번 넘게 방문한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끈질긴 노력 덕분에 견주 132명으로부터 시술 동의를 얻어 최종적으로는 74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마쳤습니다.

지난해 동물단체 하이와 한국성서대가 서울시 용역사업으로 시행한 '2022년 정비구역 등 유기견 예방활동 추진사업' 현장 모습. 주민들을 설득해 마당 개 동물 등록, 기초 검진, 중성화수술, 예방접종을 지원하고, 무거운 쇠목줄을 가벼운 와이어로 대체하는 환경개선 작업을 병행했다. 서울시 제공


마당 개 중성화하세요…최대 40만원 지원

견주들의 관리 소홀로 방치된 마당개의 번식이 연 8만 마리에 달하는 유기견 발생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최근 정부도 방치견 중성화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3월부터 농촌 지역에서 키우는 실외 사육견(마당 개)을 중성화하면 최대 40만원의 수술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지난해에만 2000마리에 달하는 실외견에게 중성화 수술을 지원했습니다.

서울시의 재개발지역 중성화 사업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년 200여 가구를 선정해 개 사육실태를 조사하고, 중성화와 동물등록 및 사육환경 개선을 돕는 식입니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관계자는 “가장 어려운 것은 주민 설득”이라며 “중성화 외에도 예방접종, 심장질환 치료비 지원 등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중성화 사업이 공공사업이 되기까지는 동물단체들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동물구조119는 지난 5년간 서울, 경기 등 지자체와 협업해 200마리 이상의 마당개를 중성화했습니다. 동물구조119 임영기 대표는 “이제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구호는 힘을 잃었다. 대신 ‘방치 말고 중성화하자’고 방향을 틀어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임 대표는 “시보호소에 입소한 유기동물의 80%는 마당개나 떠돌이개 등 방치된 개가 낳은 강아지들”이라며 “성견들을 중성화하지 않으면 새끼들만 잡혀 안락사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가엾은 마당개, 호두를 품은 제보자

중성화 사업 도중 조 대표는 2살 사모예드 호두를 만났습니다. 비록 마당 개로 살아왔지만 호두는 낯선 조 대표의 손등을 핥을 만큼 사회성이 뛰어나고, 보호장비 없이도 치료용 주사를 맞는 착한 견공이라고 합니다.

견주인 70대 노부부는 2년 전 지인으로부터 생후 3개월의 작은 호두를 선물받았다고 합니다. 비록 기초생활수급자로 형편은 어려웠지만 부부는 매일 호두를 산책시키고, 매달 구충제도 사먹이며 정성껏 돌봤습니다. 호두의 견종은 북극 썰매견으로 알려진 대형 사모예드. 호두는 생후 12개월이 되자 체중 30㎏에 달하는 대형견으로 자랐습니다. 대형견을 감당할 수 없던 노부부는 호두를 마당에 묶어 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당 개에서 구조자의 품에 안기기까지, 사모예드 호두의 지난 1년의 모습. 구조자 제공


그러던 중 노부부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합니다. 홀로 빈집에 남겨진 호두는 유기동물보호소로 이송될 예정이었습니다. 절차상 안락사를 피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하지만 호두를 포기할 수 없던 조 대표는 직접 구조하기로 합니다. 조 대표가 운영하는 동물단체 하이는 후원자 100여명의 영세한 단체. 직영 보호소가 없었기 때문에 조 대표는 매달 수십만 원의 사비를 들여 호두를 돌봐야 했습니다. 호두는 지난해 9월 이후 위탁처에서 지내며 견생2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당개에서 반려견으로…호두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지난달 30일, 국민일보는 경기도 파주의 위탁처에서 호두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호두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행동전문가 미애쌤과 윤이쌤이 동행했습니다. 위탁처 대문을 열자 호두와 10여 마리의 위탁견들이 취재진을 반겼습니다. 호두는 사람을 좋아하는 온화한 견공이더군요. 자신을 구조하고 돌봐준 조 대표를 알아보고는 30㎏의 거구가 마치 작은 강아지처럼 품에 파고들었습니다.

다만 호두는 보호자와의 산책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보호자와 걸음을 맞추지 못하고, 길고양이 등 흥미 요소를 발견하면 흥분해서 달려 나가더군요. 워낙 거구에 힘이 강한 견종이라 체구가 작은 조 대표는 끌려가다 넘어질 정도였습니다. 13년차 전문가 미애쌤은 “호두는 보호자와 함께 걷는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다”면서 “침착하게 걷는 연습부터 해나가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미애쌤은 목줄 대신 호두의 목걸이를 잡고 산책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하면 돌진하려는 호두를 제어하기 훨씬 수월합니다.

호두가 전문가 도움으로 보호자와 걸음을 맞추는 행동교육을 받고 있다. 전병준 기자


이날 솔루션은 두 가지로 진행됐습니다. 먼저 호두가 돌진하려고 뒷다리에 힘을 주면 미애쌤은 즉시 보행 방향을 틀어 돌진을 저지했습니다. 호두가 미애쌤 곁에 앉거나 차분하게 걸으면 바로 간식으로 보상했습니다. 30분 정도 반복하자 호두가 호흡을 진정하고 돌진을 멈추더군요. 이후 미애쌤은 목줄을 활용한 산책을 진행했습니다. 호두가 돌진하지 않도록 뒷다리를 허리에 고정한 교육용 매듭을 활용했습니다. 호두는 곧 매듭에 익숙해졌어요. 안전한 산책 성공입니다. 미애쌤은 “호두는 사회성이 우수하므로 교육을 반복할 개인 임시보호자만 만나면 금세 산책을 잘할 수 있다”고 총평했습니다.

마당개에서 반려견으로 거듭나려는 3살 사모예드, 호두의 입양자 혹은 임시보호자를 모집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기사 하단을 참고해주세요.

■마당개에서 반려견으로, 사모예드 호두의 임보자를 모집합니다
-3살 사모예드, 중성화 암컷, 30㎏
-사람을 좋아하고 개와의 사회성이 뛰어남
-산책 교육을 받아야 함 (전문가의 무료 교육 지원)

■호두의 산책교육을 함께할 임시보호자를 모집합니다.
-행동전문가의 교육 및 후원 사료를 제공합니다
-임시보호 신청자는 아래 링크를 작성해주세요: https://url.kr/2hv9qx

■호두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25번째 견공입니다(99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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