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람은 사랑하되 죄는 미워하라

2023. 12. 1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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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목사
행복한교회 목사·신학박사·17개광역시도악법대응본부 사무총장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의를 추구하다가 놓치기 쉬운 인간 존중 개념을 상기시켜주는 좋은 말이다. 귀한 그릇에 담긴 맛있는 음식물이 상했으면 상한 음식물을 버리고 설거지를 할 뿐이지 그릇까지 내버리는 사람은 없듯, 죄를 미워하는 목적도 그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죄를 떠나 진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운 속성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죄만 미워하고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이 말에는 상당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사랑하느라 자칫 그 사람이 지은 죄까지 두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을 사랑하느라 그 사람이 지은 죄를 죄라고 하지 말라는 주장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신자의 도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창조주의 명백한 명령을 거부하거나 곡해한다면 이는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성경 진리를 상황에 따라 재해석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첨예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생명 윤리와 성 윤리라 할 수 있다. 교리 문제나 이단 문제 등에서는 흑백이 분명해서 잘못된 사상은 즉시 단죄한다. 반면 생명 윤리와 성 윤리에 관해서는 사람의 편리를 따라 판단하고 진영 논리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여타의 죄에 대해서는 합법화 시도를 하지 않지만, 낙태와 의사조력자살, 동성애 등에 대해서는 죄의식 없이 합법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동성애에 관해서는 단순한 합법화를 넘어(현행법으로 동성애는 불법이 아니다) 역차별을 시도하고 있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명제는 “사람은 사랑하되 죄는 미워하라”라는 것이다. 앞에서 예를 든 음식의 경우 아무리 값비싼 도자기에 담겼어도 상한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 또 아기가 아무리 예뻐도 아기의 변까지 예뻐할 수는 없으며 기저귀를 갈고 변을 씻어주어야 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이 죄를 지었다면 그 죄까지 사랑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지은 죄를 깨닫게 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말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정확한 모범을 보여 주셨다. 간음한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여인의 죄를 두둔하는 대신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돌을 내려놓고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그때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사람들은 어차피 다 죄인이고 너를 정죄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이제 편한 마음으로 죄를 짓고 살아라”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심으로써 그녀의 행위가 죄라는 것을 명확히 하심과 동시에 죄의 기저귀를 갈아주시고 죄를 씻어주셨다.

그런데 사실은 죄만 미워하고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죄란 인격체도 아니고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죄는 사람이 지을 때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미워하여 죄를 벌주려면 하는 수 없이 그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줄 수밖에 없다. 아기와 기저귀를 분리하듯 사람에게서 죄를 분리하여 죄만 벌주고 죄만 가두고 죄만 죽일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세상에 그런 방법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하셨다. 죄와 사람을 분리해서 죄만 벌주신 것은 아니고 죄가 없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이다. 세상 법정에서는 한 사람이 지은 죄를 다른 사람에게 담당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그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구약 시대 내내 속죄양이 죄인을 위해 희생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예수님께서 인류의 희생양으로 오셨고 우리 모두의 죄를 대속하셨다. 오늘날 어떤 사건의 피해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피해자가 아니라 희생양이다. 그러므로 피해자를 희생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희생에 대한 물타기이다.

엊그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죄를 사랑하던 한 사람에 관한 재판이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사람을 사랑하더라도 그 사람이 지은 죄에 동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감리교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는 동성애를 두둔하고 동성애자를 축복하기를 반복하던 한 목사에게 출교 결정을 내렸다. 교회 회의에서 출교된 사람은 목사도 아니고 교회 회원도 아니다. 그런데 출교의 목적은 정죄함이 아니라 회개하게 하려는 것이다. 출교된 사람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죄를 뉘우치고 성경적 교회로 돌아오도록 권면하며 기도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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