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처음, 엄마 기일을 잊고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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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숙 기자]
▲ 엄마의 기일을 잊고 지나갔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수없이 기일을 되뇌고, 준비할 것을 확인했건만 정작 그날에는 그날인 걸 놓쳐버렸다. 가만 내가 어제 무엇을 했더라. 모처럼 생선가게에 들러 장을 보고, 덤으로 받은 조개로 조개탕을 끓여 먹었었다.
엄마는 우릴 보고 뭐라 했을까
한 솥 가득한, 거저 얻은 조개탕에 눈이 멀어 호호거리며 잘도 먹던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엄마는 뭐라 하셨을까? 일주일 전, 과일 선물을 받아 냉장고에 넣을 때도 분명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사상에 올릴 탐스러운 과일을 흐뭇하게 바라본 기억이 선명한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가족 단톡방에 내가 이 사실을 알리니 난리가 났다. 딸들은 '헐~'을 외쳐대고, 남편은 함께 잊어버려 미안하다며 서로를 위로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어쨌거나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엎지른 물이었다. '미쳤어, 미쳤어'를 외치며 하루 종일 종종 거린 후 엄마가 계신 가족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평소보다 좀 더 풍성한 꽃을 사들고 계단을 한발 한발 디뎌 봉안당 3층으로 향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 가득 안고 엄마 앞에 서니, 엄마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늘 하시던 말씀 그대로 '괜찮다, 괜찮다, 괜찮아!'라며 나를 쓰다듬어 주시는 듯했다.
엄마 생전에 생신을 잊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날을 깜빡 잊은 날, 나는 엉엉 울었다. 세 자매 육아와 출근, 살림으로 정신없는 내가, 간병이라는 큰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저리 헤맬 때였다. 엄마가 나의 어깨를 다독이며 오히려 위로해 줄 때 나는 나의 삶이 힘에 부쳐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딸인 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탱하기 힘들 때, 옆에는 늘 엄마가 계셨다.
이번에는 무슨 핑계를 대야 하나? 어디서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야 하나? 봉안당 유리 너머 사진 속 엄마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보고 싶은 얼굴, 듣고 싶은 목소리, 안기고 싶은 그 온기! 꽃송이에 얼굴을 묻고 엄마 체취인양 숨을 들이키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리고 그간의 일들을 떠올리며 보살펴 주신 은덕에 감사하다고 되뇌였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데, 둘째가 다가와 살포시 어깨를 안아 준다. 며칠 전 자기가 할머니께 드린 꽃송이가 잘 있나 물으며 나의 안색을 살폈다. 서로가 기일을 잊은 황당한 마음을 나눈 뒤에도 기막힘이 가라앉지 않았다.
건강한 애도
그러자 자신도 어디서 들은 거라며 둘째가 전해준 말.
"엄마, 가족을 잃은 후 시간이 지나서 '어머, 맞아 오늘이 그날이었지? 깜빡했지 뭐야,'라고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사람은 애도 기간을 잘 보낸 거래. 충분히 슬퍼하고 상실의 마음을 잘 추스른 건강한 사람이래요."
나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둘째의 포옹이 참 따뜻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보듬었다. 어느새 자라 성인이 된 아이들은 이렇게 종종 나의 실수를 보듬는다. 어릴 적 아이들의 잘못에 엄격했던 나는 요즘 얼굴이 자주 붉어진다. 어른 대 어른으로 만나 대화하고, 성찰하고, 때로는 사과하며 공감하는 일이 참 의미가 깊다. 자식은 나를 알알이 잘 영글게 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었나.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엄마 기일을 잊을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매우 컸다는 자각이 든다. 둘째 아이의 건강 문제로 마음 졸였던 지난 며칠이 먼 이야기인 듯 다시 살아났다.
유치원 때부터 시신경 문제로 왼쪽 눈이 좋지 않았던 둘째가 어느 날, 병원에서 돌아온 뒤 '녹내장, 안압, 실명 위기...' 등을 말하며 오열할 때 나는 이미 정신을 잃어버렸나 보다. 그 뒤로 우리 가족 모두 엄청난 마음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이 엄청난 위기 앞에 어떻게 대처를 마련해야 하나? 마음 졸이고 서로의 눈치만 보며 살얼음판을 걸었던 보름 동안이었다. 하루하루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통의 시간
서울 여러 대학 병원을 알아보며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도와달라 얼마나 기도를 드렸는지 모른다. 이럴 수는 없다며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눈물 삼키며 지새운 밤이 며칠이었던가. 아이 앞에서 굳건한 모습을 보이려 마음을 다잡은 날이 얼마나 많았나.
다행히 용기 내어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 사나흘 전이었다. 그리고 긴장이 풀려 정신을 놓은 것인가! 그래서 엄마 기일을 잊었던 걸까. 아무튼 나는 엄마 기일을 10년 만에 잊어버린 못난 딸이 되었다.
엄마는 여전히 그곳에서도 우리 가족만을 생각하시나 보다. 생전에 주신 사랑과 은혜는 아직도 넘쳐 우리에게 힘을 주는데 여전히 그곳에서도 우리 가족의 평안과 무탈을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듯하다. 손주의 건강을 위해 얼마나 이리저리 뛰어다니셨을까?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늘에서 지켜봐 준 엄마 덕이라 믿고 싶다.
▲ 생전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대봉 생전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대봉, 익어갈수록 커지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말랑하니 달콤한 것이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려 웃음짓게 한다. |
ⓒ 한현숙 |
겨울이다. 날이 차다. 속이 허전해 부르르 떨리는 날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스한 국물에, 달짝지근한, 때로는 매콤하게 맛난 먹거리를 앞에 두고 서로의 눈을 어루만졌으면 좋겠다. 이 계절도 사랑으로 채우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늘 감사하리라. 감사할수록 감사할 일이 생긴다는 말을 새기면서 말이다.
오늘을 돌아보는 소박한 희망으로, 주변의 이들을 모두 귀히 여기는 대단한 사랑으로 오늘을 채우리라. 많이 웃고, 좀 더 행복했으면. 우리 곁을 먼저 떠난 소중한 이들은, 우리가 웃는 따스한 얼굴을 아마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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