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험연극 전설 '리빙시어터' 한국에 떴다…연극 '로제타'에 담긴 뜻은
1890년 10월 13일, 스물 다섯 살의 미국 여의사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조선 제물포항에 발을 디뎠다. 그는 남자 의사에게 몸을 보일 수 없어 병원에 가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던 조선 여성 환자들을 찾아 손을 내밀었다. 화상을 입은 아이에게는 자신의 피부를 떼 이식 수술을 해줬다. 조선 땅에서 머문 44년 동안 그는 의과 대학을 세우고 한글 점자를 만들고 장애인을 교육했다.
지난 8~9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선보인 ‘로제타’는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의 삶을 그린 연극이다. 브로드웨이 상업 연극에 맞서 반전, 여성 해방, 인종차별 반대 등 진보적 메시지를 내세운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 운동’의 시초이자 미국 최초 아방가르드실험 극단인 ‘리빙시어터’가 한국 극단 극공작소 마방진과 공동 제작했다.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활동 중인 김정한(요제프 케이)이 극작과 연출, 연주를 맡았다. 지난 1월 광주와 서울에서 시범 공연을 선보인 뒤 이번에 이틀간 본공연을 올렸다.
연극 ‘로제타’에는 리빙시어터의 실험주의적 스타일이 녹아있다. 리빙시어터에 50년간 몸담아 왔던 배우 토마스 워커를 비롯한 3명의 미국 배우와 5명의 한국 배우가 모두 배역 구분 없이 돌아가면서 로제타를 연기하고, 동시에 로제타의 남편 윌리엄 홀과 제자 박에스더 등 주변 인물들을 연기한다. ‘모든 배우가 똑같이 중요하다’는 리빙시어터의 철학이 담긴 연출이다.
로제타 역의 배우가 계속 바뀌지만 대사는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자막 없이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가며 쓰지만 한국 배우들의 해설을 적절히 곁들여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연출가도 무대에 오르는 리빙시어터의 전통에 따라 김정한 연출은 무대에서 기타와 건반을 연주한다.
로제타의 남편 윌리엄 홀이 평양에서 선교 중 발진티푸스에 걸려 죽는 장면에서는 7명의 배우들이 윌리엄을 천천히 에워싸면서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병마가 덮쳐오는 순간의 공포감을 표현했다. 로제타의 둘째 딸 에디스가 풍토병으로 사망하는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로제타’를 공동 창작·제작한 리빙시어터는 1947년 배우 줄리언 벡·주디스 말리나 부부가 설립한 극단이다. 파격적인 형식과 개혁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들로 당시 세계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 명배우들이 거쳐 갔으며, 1960년대 미국 전위극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을 받는다.
김정한 연출은 “인류애를 실천한 로제타의 삶은 리빙시어터의 철학과 맞닿아있다”면서 “미국과 유럽에서의 투어 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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