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 프랑스, 잉글랜드선수가 카페와 펍으로 달려간 이유 ③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김식 2023. 12. 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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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시즌에 앞서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널은 프리시즌 캠프가 있는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선수단은 2주 동안 격렬한 훈련을 소화했다. 프리시즌 마지막 날 벵거는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선수들을 칭찬하며, ‘자유 시간’을 부여했다. 이에 2주 동안 이어진 금주로 술이 고팠던 잉글랜드 선수들은 근처 펍으로 달려간다.  

아스널에서 15년을 뛰었던 미드필더 레이 팔러는 후에 인터뷰를 통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혔다. 팔러와 4명의 동료는 미리 점 찍었던 펍에서 생맥주 35파인트(pint, 1파인트는 568ml)를 한꺼번에 주문했다고 한다. 첫 2파인트를 원샷 하듯이 마신 선수들은 결국 한 명당 7파인트를 마신 끝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 술집을 찾아 나선 아스널의 잉글랜드 선수들은 근처 카페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던 프랑스 선수들을 목격했다. 당시 클럽에는 벵거의 영향으로 패트릭 비에이라, 엠마누엘 프티, 질 그리망디 등 여러 명의 프랑스 선수가 소속돼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팔러는 “올해 우리가 리그에서 어떻게 우승할 수 있을까? 우리(잉글랜드인)는 모두 술에 취해 있고 그들(프랑스인)은 모두 담배를 피우고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팔러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혁신적인 변화를 도입한 벵거의 아스널은 당시 프리미어리그의 절대 강자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승점 1점 차이로 제치고 1997~98시즌 우승했다. 게다가 아스날은 FA 컵마저 석권해 더블을 기록하게 된다. 아스날 홈페이지


벵거가 아스널에 오기 전, 클럽을 8시즌 동안 지휘했던 감독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지 그레이엄이었다. 그는 젊은 선수를 잘 키웠고, 선수 영입에도 탁월했다. 당시 리그 최고의 수비진을 구축했던 아스널은 1부리그 우승 2번, FA 컵, UEFA 컵 위너스 컵 등에서 우승하며 연달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레이엄은 훈련과 경기에서 열심히 할 것을 요구했을 뿐, 경기장 밖 선수들의 행동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이에 주장 토니 아담스는 화요일에 술을 마시는 ‘화요일 클럽’을 만든다. 수요일에 훈련이 없었기 때문에, 화요일이 선택된 것이다. 영국 축구계에는 “Win or Lose, We Booze(이기든 지든, 술을 마신다)”는 모토가 있을 정도로, 선수들과 음주는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화요일 클럽은 이런 시대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아스널 선수단의 대부분이 이 음주 클럽에 참여했다.

아스널과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았던 토니 아담스가 데이비드 베컴을 상대로 태클하는 모습(왼쪽). 오른쪽은 아스널의 홈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앞에 세워진 아담스의 동상. 아담스는 아스널에서만 23년을 뛴 원 클럽 맨이었지만,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음주 운전으로 인해 감옥에서 58일을 보낸 적도 있는 아담스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96년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났다. 이후 새 감독 벵거와 함께 그는 우승 트로피를 여러 개 들어 올렸다. 아담스 인스타그램

1996년 10월 벵거가 아스날 감독이 되자, 팬들은 그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다. 더군다나 외국인 감독이 성공할 수 없다는 역사와 믿음이 잉글랜드 축구계에는 있었기 때문에, 팬들은 더욱더 불안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벵거가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감독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벵거는 학구적으로 축구에 접근했다. 이에 영국 언론은 그에게 "Le Professeur(교수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스포츠 과학, 의학 및 생리학 등에 관심이 많았던 벵거는 클럽 문화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훈련과 경기 준비에 새로운 접근법을 가진 벵거는 화요일 클럽을 중단시켰다. 그는 클럽의 골칫거리였던 음주 문화를 바꾸기 위해, 선수에게 허용된 음주량을 서서히 줄였다. 결국 2004년 선수들의 음주 모임은 전면 금지됐다. 또한 벵거는 사회적으로 담배를 용납하던 시절은 끝났다며, 선수는 자신의 명성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96년 아스날 감독으로 부임한 벵거의 모습. 벵거가 잉글랜드 축구에 남긴 위대한 유산 중 하나가 ‘균형 잡힌 식단’의 보급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90년대에는 경기력을 최적화하기 위한 엄격한 식단 조절이 없었기 때문이다. 벵거에 의해 아스날 선수단에는 ‘붉은색 육류(red meat)’대신 닭고기 요리가 지급됐고, 정크푸드의 소비도 줄어들었다. 아스날 홈페이지

한편 프랑스 선수들의 담배 사랑은 그들의 문화에서 유래했다. 프랑스는 “유럽의 굴뚝(Europe's chimney)”이라고 불릴 정도로 담배 문화가 발달한 국가다. 이 나라에 담배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포르투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장 니코(Jean Nicot)였다.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nicotine)이 바로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후 프랑스 상류사회에는 ‘코담배(snuff)’가 유행했고, 중하위 계층과 농민들에게 인기를 얻은 것은 ‘파이프용 담배(smoking tobacco)’였다.

프랑스 정부는 1976년 대중교통에서 흡연을 제한한 데 이어, 더 강력한 흡연 금지법을 연이어 도입했다. 이로 인해 흡연 인구가 줄어들었지만, 2015년 프랑스 성인의 흡연자 비율은 32%로 여전히 높게 나왔다. 또한 여행 웹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프랑스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흡연을 많이 하는 국가라고 한다.  

이들의 유별난 니코틴 사랑을 반영하듯 흡연을 즐겼던 프랑스 축구 선수는 꽤 많았다.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칸토나, 파팽 같은 슈퍼스타를 가진 프랑스가 1990, 1994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을 의미)”를 상징하는 다비드 지놀라도 흡연자였다.

1994 미국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역적으로 몰린 지놀라는 프랑스를 도망치듯이 떠나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수밖에 없었다. 이 후 지놀라가 담배를 입에 물자, 잉글랜드 선수들은 프랑스만큼 흡연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놀라는 동료 선수들이 기름으로 튀긴 ‘피쉬 앤 칩스’ 같은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먹는 것에 더 놀랐다고 한다. PSG 트위터 

맨유는 1998 월드컵과 2000 유로에서 프랑스에 우승을 안긴 골키퍼 파비앵 바르테즈를 영입했다. 엄격한 규율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던 퍼거슨 감독은 이례적으로 바르테즈의 흡연을 눈감아 줬다. 퍼거슨은 영국축구에서 음주를 흡연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여겼고, 단기적으로도 음주가 선수에게 훨씬 더 해롭다고 믿었기 때문이다.UEFA 홈페이지

폴 스콜스에 의하면 맨유 동료였던 로랑 블랑과 바르테즈는 매일 아침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전까지는 훈련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네디 지단은 2002년 유럽연합의 금연 대사로 활약했으나, 2006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전에 앞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목격됐다. 프랭크 리베리는 한술 더 떠 유럽 밤 문화의 성지인 이비자에서 담배와 마리화나를 피우는 장면까지 보여줬다.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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