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삽니다, 이 방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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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기자]
나는 느린 편이다. 모든 것이 다 느린 건 아닌데, 뭔가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느리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나는 밥도 천천히 먹는다.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사람들은 보통 5번도 제대로 안 씹는 것 같은데 나는 30~50번은 씹고 넘겨야 소화가 된다. 어릴 때부터 위가 약해서 유난히 잘 체했던 나는 항상 손 따는 도구를 갖고 다녔다. (지금도 여행용 파우치 안에는 손 따는 도구가 들어 있다.)
음식을 오래 씹어 넘기느라 먹는 속도가 느린 나는 수학여행이나 극기훈련 같은 단체활동이 참 힘들었다. 급식판에 잔뜩 담겨진 밥을 빨리 먹어야 할 때면 국에 절반의 밥을 말아 그걸 반찬 삼아 나머지 밥을 후루룩 먹곤 했다. 하지만 국에 말아진 밥도 잘 넘기지 못해서 결국은 많이 남겼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그러니까 그렇게 말랐지"라고 말하곤 했다.
어른이 되어도 나의 위는 튼튼해 지지 않았다. 나는 사회초년생 때 남자가 대부분인 회사에 다녔는데, 처음 부서 사람들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그들의 먹는 속도에 어찌나 놀랐는지(아마 그들도 나의 속도에 놀랐겠지?). 아니 여기는 군대인가? 싶었다. 살짝 과장해서 난 아직 숟가락도 들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벌써 다 먹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이니까 나를 배려한다며 내가 먹을 때까지 다들 기다리겠다는 말을 듣고는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렇게 나는 첫날부터 밥을 많이 남겼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내가 항상 밥을 남기니까 아예 처음부터 자기한테 좀 덜어 달라는 사람도 생겨났다. "어차피 남길 거잖아~" 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입을 꼬집어 주고 싶었다. '저기요! 저도 1인분 다 먹을 수 있거든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나의 일용할 양식을 기꺼이 덜어주고 있을 뿐.
시간이 더 흐른 뒤, 친해진 여자 동료들과 따로 점심을 먹게 되고 나서야 나는 내 몫의 1인분을 제대로 먹게 되었다. 물론 여자라고해서 모두 나처럼 천천히 밥을 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말하기보다는 주로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으며, 열심히 먹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먹는 속도를 맞추게 되었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누군가는 밥 먹는데 30분을 쓰고, 누군가는 1시간을 쓴다면 어떨까? 남들보다 느리게 먹는 나는 나머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설거지하며 영상 보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이었다. 한번에 2개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할 때 나는 태블릿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유튜브 영상을 본다. 빨래를 개거나 다림질을 해야 할 때도 보고 싶었던 영상들을 시청하는데, 주로 한 곳에 서있거나 앉아서 단순한 동작을 하는 설거지나 빨래 개기 같은 건 눈과 귀를 사용할 수 있으니 영상을 보고, 청소나 요리, 화장을 할 때면 이리 저리 이동을 하거나 눈을 떼기 어렵기 때문에 귀로만 듣는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를 듣는다.
그러면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매일 일정 분량의 독서와 취미 활동(미드나 영화 감상), 교양 쌓기(유튜브로 강의 보기)를 할 수 있다.
▲ 나만의 To do list 매일 해야 할 일을 적고 체크한다 |
ⓒ 김은성 |
내가 리스트를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내 삶에서 중요한 가치(예를 들면 건강, 경제적 능력, 나의 일, 행복한 가족, 자기계발 등)를 선정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각 영역별 목표를 정한다.(예를 들어 '나의 일' 영역의 목표는 작가, 상담사, 강사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세부적으로 목록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목록을 내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그날 그날의 실행여부를 O, X로 체크하는 것인데,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실행력에 있어서 정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미니멀 라이프 미션 타이틀 사람들과 함께 하루에 하나씩 비우기 인증을 하는 모임 |
ⓒ 김은성 |
퇴사를 하고 나니 집은 하루 종일 내가 머무는 보금자리였고, 나의 가족이 편안하게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집에 본격적으로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손대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나의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기 시작한 집정리는, 들인 노력에 비하면 그다지 티가 나지도 않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하루에 물건 하나씩 비우기.
나는 매일 하루에 물건 하나씩을 비운다는 원칙을 세우고,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최대한 심플하게 정리하려고 했다.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 1월부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오픈채팅방에서 매일의 비움을 인증했다(관련 기사: '미니멀라이프' 도전하실 분? 순식간에 22명이 모였다).
그렇게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제는 아침 15분이면 집정리가 끝나는 것은 물론 언제 어느 때에 손님이 갑자기 찾아와도 반갑게 맞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요즘 나는 집청소와 정리 정돈에 소비하던 시간을 아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먹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실행하는 것도 모두 남들보다 느리지만 나는 오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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