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둘러싼 두 남자의 폭력, 이 영화의 정의는 어디에?

조영준 2023. 12. 1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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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341] 영화 <언더 유어 베드>

[조영준 기자]

 영화 <언더 유어 베드>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폭력과 온몸에 든 멍자국. 쉴틈도 없이 가해져 오는 성적 가학. 모든 일상을 보고하고 허락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관계에 이르기까지. 영화 <언더 유어 베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폭력적인 남편에게 길들여진 아내의 모습을 전사하며 시작된다. 이는 물렁한 기대를 안고 스크린 앞을 찾은 관객들에 대한 선전 포고와도 같다. 수용자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소설가 오이시 게이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부터 여러 가지 눈길을 끄는 부분이 많다. 일본 감독이 한국의 스태프와 배우를 만나 협업했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연출을 맡은 사부 감독은 일본의 청춘영화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그동안 보여줬던 결과물을 생각하면 폭력과 관음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의 소재도 매칭이 잘 되지 않을뿐더러, 굳이 한국에까지 건너와 연출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최근까지도 일본 업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자신의 작품 모두를 스스로 작업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출해 왔던 것을 뒤집은 선택 역시 이번 작품에서 달라진 점이다. 어쩌면 이번 작업은 감독이 그동안 보내왔던 작업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시도된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이와 같은 작품은 모 아니면 도의 결과물을 내놓곤 한다.

02.
이 작품에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남편의 폭행과 강간으로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여자 예은(이윤우 분)과 그런 그녀를 손에 쥐고 제멋대로 휘두르는 남편 형오(신수항 분), 그리고 숨죽인 채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남자 지훈(이지훈 분)이다. 이들은 각자의 그릇된 사랑과 트라우마로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영화는 그 모습을 방관하며 욕망이라는 어두운 감정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지훈의 기억을 따르며 진행된다. 스무 살, 대학교의 한 수업에서 예은을 만나 잠깐이지만 첫사랑을 간직하게 된 그는 이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9년 후 우연히 만난 예은에게 강하게 이끌리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지훈은 깊이 간직해 두었던 사랑을 구원하기 위해 치밀하게 그 곁을 맴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부를 느끼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예은이 처해있는 폭력적인 일상뿐이다.

예은을 중심으로 한 두 남자 형오와 지훈은 서로 다른 종류의 폭력을 내재한다. 바로 곁에서 자신의 욕망을 일방적이고 직접적으로 쏟아내고 터뜨리는 남편과 달리 지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접근해 온다. 두 사람이 보이는 방식의 차이는 이 영화가 어느 지점에서 서사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영화는 폭력과 관음, 스토킹과 가스라이팅 속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가 존재할 수 있는지, 존재한다면 어느 쪽에 놓여 있는지를 지켜보고자 한다.
 
 영화 <언더 유어 베드>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03.
"24시간, 나는 그녀와 함께 있다. 나는 그녀를 느낀다."

영화는 나름대로 인물들의 서사를 각자의 자리에 제대로 마련하고자 노력한다. (여기에서도 예은의 서사는 다른 두 인물에 비해 소극적이고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 극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르는 부분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에게는 어린 시절 겪었던 가정 폭력의 경험을 심고, 예은을 스토킹 하며 뒤따르는 지훈에게는 구원의 메타포를 씌운다. 자신과는 무관하게 설정되어 있던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날아들던 가정 폭력을 경험한 형오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형의 죽음, 그 어두운 그늘 아래에서 불행한 유년 시절을 지나온 지훈이 예은을 만나 삶의 희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그 간략한 내용이다.

다만 이러한 설정 자체가 영화가 시작부터 끝까지 전사하고 있는 모든 폭력적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훈이라는 인물만 봐도 그렇다. 구원이라 여겨진 존재에게 다가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는 것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몰래 외우고, 집 구석구석 카메라와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 방식이라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전사되고 있는 이와 같은 모든 행위를 범죄라고 말한다.

사부 감독은 이 지점에 대해 어린 시절의 문제로 인해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며, 이들처럼 사회의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제대로 청하지 못한 채 성장한 세 어른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어린 시절의 고난과 성인이 된 이후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자의적이고 쉬운 방식으로 연결시킨 것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여기에 '사랑해서 그랬다',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해 그랬다'는 변명과도 같은 서사를 남겨두는 것은 극 중 형오가 예은에게 가하는 가스라이팅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영화 <언더 유어 베드>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04.
극의 후반부에서 남편인 형오에 대한 심판과 그를 처단하고자 했던 지훈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그 어느 자리에도 처음에 말했던 온전한 탈출구는 놓여 있지 않다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을 지켜주고자 했던, 과거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게 되는 쪽을 미화하며 받아들이는 예은의 모습을 통해 희석되고 만다. 물리적인 폭력에 오래 노출되며 극한의 경험을 한 여자의 입장을 이 두 폭력 사이에 끼워 넣으며 그 역시 상대적인 판단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 속에서 관객들이 찾고자 하는 정의는 어디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다시 한번 모호해진다.

같은 맥락에서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던 지훈의 정체를 옛 기억으로부터 다시 떠올려내는 예은의 모습 또한 (이 부분은 흑백이던 과거의 장면이 기억과 함께 색감을 되찾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이 작품이 자신에게 스스로 내리는 면죄부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틴에이저 로맨스물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이 극의 결정적인 순간에 내놓는 감독의 의중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는 곳곳에서 자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정말로 어떤 이야기를 내놓아야 하는지 정확히 결정하지 못한 채 살색의 장면들만 늘어놓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아쉬움은 '언더 유어 베드'의 의미를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제의 꺼풀이 쌓이는 침대의 아래 공간과 오늘의 시간이 놓이는 침대 위. 지훈과 예은의 과거, 형오와 예은의 현재가 이 두 공간에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는데도 영화는 두 공간을 그저 성폭력과 관음의 자리로만 시각적으로 '자극'하고 있을 뿐이다. 여러 지점에서 아쉬움이 있고 허술함이 남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여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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