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밥 먹이겠다" 숨진 기간제 교사, 학부모 협박 사실이었다
지난 1월 사망한 서울의 사립초 기간제 교사가 학부모에게 “다시는 교단에 서지 못하게 하겠다”등의 폭언을 듣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교육청은 15일 상명대학교사범대학부속초등학교(상명대부속초) 기간제 교사 사망사건의 민원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사건은 앞서 지난 7월 24일 서이초 교사 사망 기자회견에 들어온 고인의 아버지가 “억울한 내 딸도 함께 조사해달라”며 조사를 호소해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은 “학부모의 과도한 항의와 협박성 발언으로 고인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 것은 사실로 인정되고,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 결국 사망에 이른 것으로 판단했다”며 “유가족은 학부모의 폭언에 대해 형사 고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청은 고인의 휴대전화 조사 결과, 고인이 업무 시간 외에도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고 했다. 고인은 주말과 퇴근 후 저녁 시간에도 학부모 요구와 민원을 개인 휴대전화, 문자로 직접 받으며 하나하나 응대해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상명대부속초는 당시 담임 교사들의 개인 연락처가 학부모들에게 공개된 상태였다. 교육청은 “유가족은 이로 인해 담임인 고인이 항의성 민원에 직접 노출돼 갈등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고인은 2022년 6월 자신이 담임으로 있던 학급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해 학생 학부모로부터 ‘경찰에 신고하겠다’ ‘콩밥을 먹이겠다’ ‘다시는 교단에 못 서게 하겠다’ 등 폭언을 듣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 이후 고인은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우울에피소드 진단을 받고 올해 1월까지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교육청은 “병원 측은 질병과 사망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유가족 측은 산업 재해 신청 및 폭언을 한 학부모에 대한 형사 고발 여부를 검토 중이다. 교육청 측은 “유가족은 고인이 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됐고, 학교 측의 방관과 지원 시스템의 부재 속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이 가중돼 끝내 업무상 질병을 얻었으며, 해당 질병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먼저 산업재해 요양급여신청서를 접수할 계획이고, 이를 통해 상명대부속초 근무 당시 재해 발생 경위 등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가 보다 분명히 밝혀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특정 학부모의 폭언성 항의에 대해서도 형사 고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고인 일기장 속엔 ‘포기하지마, 넌 유능한 초등교사다’
한편 이날 유가족 측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교육청과 별도로 입장문을 발표하며 고인의 일기장과 진료기록부 등을 공개했다. 유가족 측은 “고인은 입사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질병이 없었으며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며 “학교 측은 담임교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학부모들에게 공개하고, 근무시간이나 근무일 구분 없이 고인이 일일이 학부모들의 항의성 민원과 요구를 받아 직접 처리하도록 함으로써 재해 상황을 조성하고 악화시켰다”고 했다.
유가족 측이 공개한 진료기록부에는 고인과의 생전 상담한 내용이 적혀 있다. ‘학교에 너무 화가 나고…’‘스스로 너무 비인간적이라 느껴지고 다음날 너무 죽고싶고…’ ‘인계해줄 땐 애들 순하다고 들었는데…알려주지 않은 선생님들에 대한 서운함’ ‘학폭 관련 환모(학부모)들의 빗발치는 전화에 매우 힘들었고…’ ‘하루에 6시간 이상씩 보호자들과 통화해야 하는 stressful한 상황이었다고 함’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유가족 측 법률대리인은 “유가족은 무엇보다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그는“고인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했으며 누구보다 교단에 서기를 소망했다”며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현실, 지금도 많은 교사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직시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했다.
유가족 측은 고인의 일기 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다. ‘나는 강하고 선한 사람이다’ ‘네 잘못이 아니다’ ‘포기하지마, 넌 유능한 초등교사다’ ‘내일 00초 면접에 가야겠다. 기회가 있음에 늘 감사드린다’ 등의 내용이다. 유가족 측은 “고인에게는 다른 기회가, 가족과 떡국을 먹을 새해 첫날이, 봄날이 다시 오지 않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런 날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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